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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Feb 07. 2024

기깔나지예?


"지하야, 진짜 웬만하면 여긴 가지 마라 하는 데 없어?"

"재수 씨, 거기 가봤어? 어떻디? 먹을 만 하디?"


예전부터 주위사람들이 내게 물어보는 곳은 맛집이 아닌 맛똥집이다.


미각이 예민하지 못한 나는 어떤 음식이든 웬만하면 아주 맛있게 잘 먹는다. 지인들은 처음엔 내가 맛있다 하는 곳을 못 믿더니 이후엔 발전해서 내가 맛이 없다 하는 곳을 믿고 거르게 되었다.


그만큼 내 미각은 요리에 있어 참 넉넉한 인심을 가졌다고나 할까. 문제는 남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남자는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요리의 황금손을 가진 어머님 밑에서 맛있는 음식만 먹고 자라서 그런가 미각도 후각도 기가 막힌다. (참고로 시아버지가 나를 들이기 전까지는 외식을 거의 한 적이 없으시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못하다며... 어머님이 못하는 음식도 없기도 하고.)


남편은 음식점에서 이거 소스 맛있다며 내가 들뜨기라도 하면 여기 뭐가 들어간 것 같네, 뭐가 들어갔네, 마치 요리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빙의해 이야기를 한다. 그걸 옆에서 사장님이 듣고 놀래주니 더 그런 걸까. 어쨌건 우리 집 주방에서의 내 입지는 아주 좁다.


요리도 하면 는다는 말은 다 뻥이다. 나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정성 들여 찌개를 끓이고는 했다. 메인만 하나 있으면 된다는 남편의 이야기덕에 그 '메인'에 착실하게 시간과 정성을 투자했다. 그런데 맛본 남편이 김을 가져오거나 라면을 먹어도 되냐며 정중하게 물어올 때면 정말 놀부마누라처럼 주걱이라도 휘두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신혼 때의 새댁놀이는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만 내고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남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배달음식과 라면, 햄과 일상을 이루었다. 그를 위한 요리도 못해지만 마지막 양심인양 인스턴트 그만 먹으라는 잔소리만 허공에 해댔다.


"나는 그냥 행복하게 즐길 거 즐기고 갈 때 되면 갈래."


철없는 남편의 한마디에 그를 돌아봤다.

세상 행복한 미소로 라면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래, 나도 모르겠다.'



가족의 식사에 대한 고민이 없는 속 편한 아내이자 엄마가 몇이나 될까. 늘 찝찝하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시간들이 흘렀다. 그러다 세미나 참여로 인해 서울 갈 일이 있었다.


아이들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남양주 아가씨집으로 향했다.

남편을 데려가기 위해 아가씨에게 아이들을 부탁했고, 기왕 그 먼 곳까지 가는 데 시부모님을 모셔가면 시부모님도 아가씨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린 밤늦게 일이 끝난 늦은 저녁에 출발했고 자정을 넘기고 시곗바늘이 1시를 가리키기 직전 아가씨의 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출근하는 애들 고모부가 있기에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주무시라했건만 집은 환하게 불을 켜고 있었다. 그리고 집안의 불빛보다  먼저 우릴 반긴 건 4층의 아가씨집으로 향하는 계단 2층쯤부터 코로 흘러들어오는 김치찌개냄새였다. 김치찌개 냄새가 아가씨 집에서 나는 건지도 모르고 우린 냄새 좋다며 계단을 올랐다.


아가씨 집에 들어서야 그 정체가 김치찌개가 아닌 김치찜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우리 남편이 인스턴트를 밝히는 어린이 입맛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아가씨의 김치찜은 어머님집에서나 볼 수 있던 엄청난 양이었지만 피곤하셨던 시부모님의 잠자리를 확인하고서 나와 신랑이 순식간에 다 해치워버렸다.


신랑은 연신 맛있음을 눈빛으로, 표정으로, 소리로, 땀으로 온갖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발산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아가씨, 어떻게 집에서 이런 걸해요? 어떻게 한 거예요? 진짜 너무 맛있어요."


"아녜요, 새언니. 이거 엄마 김치 맛있어서 그래요. 이거 쉬운데? 새언니도 집에서 할 수 있어요. 그냥 잡뼈사서 피 빼고 김치랑 오래 끊이면 돼요. 그게 단데? 엄마김치 똑같으니까 새언니도 이렇게 할 수 있어요. 다 김치 맛이라."


"진짜? 아냐, 집에서 이런 거 해 먹는 거 아니야."


내 말에 아가씨가 너무나도 가벼운 말투로 설명했다. 별거 아닌데 민망하다는 듯이.


그에 남편이 반응했다가 날 쳐다보더니 말을 묘하게 바꿨다.


"왜, 들어보니까 나도 할 수 있겠는 데? 한번 시도해 볼까?"


"새언니, 진짜 별거 없어요. 한 번 도전해 봐요. 새언니 시간 있을 때. 이게 어렵진 않고 좀 오래 끓여야 맛있긴 하거든요."


"알겠어요, 아가씨. 도전할 때 도움청할게요."


"그래, 그래. 한번 해보고 맛있으면 또 해 먹고 하면 되지. 여보 파이팅!"


1박 2일의 시간을 보내고서 목포로 돌아왔을 때, 잡뼈를 파는 곳부터 수배했다. 그리고 드디어 시간적 여유가 발생한 이벤트 같은 하루가 왔다.


'그래, 오늘이다. 오늘이 도전하기 딱 좋은 날씨군.'


냉큼 며칠 전 수배했던 잡뼈를 사 왔다.

아가씨 말대로 피도 미리 빼고 한번 삶았다.

가볍게 삶은 뼈를 먼저 넣어둔 묵은 지 위로 차곡차곡 쌓고

그 위로 묵은지 이불을 덮었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 레시피를 뒤져 소스도 물도 넣었다. 아가씨 말대로 시간과 정성을 다 때려 넣어 끓이고 또 끓였다.


몇 시간을 들뜬 채 냄비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을 까.


남편의 차가 아파트로 들어왔다는 알림음이 들리지 마자 커다란 은색 원기둥의 (아가씨의 그것과 비슷한 걸 샀었다.) 냄비에서 일반 냄비로 뼈와 김치를 보기 좋게 담아 다시 불을 켰다.


밥을 퍼고 몇 가지의 반찬도 접시에 담아내었다.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엄청난 호응을 했다.


우리 두 사람의 오두방정에 아이들도 엄청난 관심의 눈빛을 나의 냄비로 쏟아내고 있었다. 이제 김치를 곧잘 먹는 첫째에게 고기와 김치를. 아직은 매운 걸 어려워하는 둘째에겐 고기를 줬다.


"엄마. 나는 그냥 고기하고 반찬 먹을래."

"엄마 진짜 맛있어. 역시 엄마의 사랑이야!"


두 아이의 반응이 애매하게 엇갈렸다.

왜지?


자연스레 내 시선은 남편을 향했다.

남편이 허겁지겁 너무 열심히 먹고 있었다.


'세현이는 매워서 그런가? 그래도 다들  잘 먹네.'


나는 오늘의 내 요리가 결혼 이후 최대의 성공작이라 확신했다. 설거지를 하기 전까진...


저녁식사가 끝나고 은색 원기둥 냄비에서 남은 고기와 김치를 (한 번 더 먹을 양이 있었다.) 일반 냄비에 옮겼다.


국물까지 옮기고 나자 그제야 바닥의 시꺼먼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지.


밑에 깔려있던 김치가 내 저승에서 온 그을음처럼 까맣게 타있었다. 이렇게 태워먹은 음식을 가족들에게 준 건가...

그래서 약간 탄 내가 난 거였구나.

나는 불향이 입혀졌나 보다 생각했던 게...


"여보. 김치찜 어땠어?"

"맛있었어. 진짜 맛있더라. 다음에 또 해줘."

"진짜..? 근데... 그거 사실 밑에 다 탔더라..."

"아... 괜찮아. 그래도 고기는 탄맛 별로 안 베였더라."

"뭐? 탄맛이 났어?"

"아냐, 진짜 맛있었어."

"아니, 솔직하게 말해야 다음부터 같은 실수를 안 하지. 말해봐 봐."


"... 김치랑 국물에서 탄맛이 좀 많이 나긴 했어. 근데 진짜 맛있었어. 그게 조금 아쉬웠던 거뿐이지, 진짜 맛있었어. 안 탔으면 진짜 최고였을 듯."


하아... 그래서 세현이가 김치가 이상하다고 했구나... 못 먹겠다고 했는 데...


"다음에는 진짜 안 태우고 맛있게 해 줄게. 탄 지 몰랐어."

"아냐, 잘했어. 진짜 맛있었어. 고마워."


진짜 비주얼은 그럴듯했단 말이다.

그 원기둥 냄비가 너무 깊어서 내가 아래까지 관리할 수 없었던 걸까. 탄 건 꿈에도 몰랐는 데, 그렇다고 하기엔 냄비상태가...


나중에 남편에게 이야기를 들었는 데,

지나고 나서 얘기지만 이미 집에 들어올 때 냄새에서부터 탄내가 났다고 한다.


진짜 난 후각과 미각에 문제가 있는 걸까...


그걸 다 알고서도 그렇게 먹은 남편에게 참 미안하고 감사했다. 그런데 그 어떤 감정보다 벅차 오른 감정은 역시 그가 짠하다는 감정이었다.


신혼 때 나의 노력을 외면했던 남편을 두고두고 남들에게 이르며 서운함을 토로해 왔었다. 나에게 밥을 못 얻어먹는 이유라며. 그래서 그는 다시없을 기회라 생각하고 모든 걸 인내하고 참은 건 아닐까.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없다는 걸 맹신하는 나다.

그런 나의 신념에 가장 크게 맞서는 게 요리일 줄이야.

어쨌거나 남편을 위해서라도 꼭 한 번 내가 넘어야 하는 장애물이다. 하루빨리 시작선에 서야겠지만 우선은 내 기준의 해야 할 일이 많아 늘 내년으로 미루고 있다.


진짜 2026년에는 남편을 위해 요리학원 등록을 각오해 본다.


뭐... 예전에는 비주얼부터 손대고 싶지 않았는 데, 이번에 비주얼은 그래도 그럭저럭 기깔 나지않나.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나름의 성장이라고 억지 부리며 가능성 있다 최면 걸어보자.


기다려, 남편

먹음직한 비주얼에 진짜 맛있는 요리를 몇 년 안에 꼭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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