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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Oct 16. 2023

라뗀 말이야.

feat. 아들 학교에 가다.


알람이 시끄럽게 울려댄다.

이 시간에 내가 알람을 맞춰놨던가. 무슨 알람이지.

갸우뚱거리며 바라본 폰에 글자가 떠있다.


'아들 학교 급식참관'


오 마이 갓.

아들이 꼭  와야 된다 신신당부를 했는 데!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5분이다.

아무리 집 바로 앞인 학교라지만 11시 20분까지 라면 자신이 없다. 집어던지듯 폰을 내려놓고 황급히 거울 앞에 섰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굳게 각오했다.

그냥... 화장하지 말고 가자.

초등 자녀가 있는 엄마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민낯으로 아이 학교에 가는 것은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아이가 실망하는 모습이 계속 떠올라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는 꼭 이럴 때 꼭대기까지 갔다 오더라.


오랜만에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달려볼까 하는 마음과 달리 자꾸 숨이 차올라 헉헉거렸다. 아마도 걷는 모습도 뛰는 모습도 아닌 뒤뚱이는 모습이었겠지.


급식소에 도착하여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니 많은 엄마들이 이미 앉아 급식소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지각은 나뿐이로구나.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자 어깨를 쪼그라들었다.

최대한 민첩한 척 빈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은 보통 1명당 2개, 이런 식으로 개수가 정해지는 반찬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더 먹길 희망할 때의 선생님의 해결방법이나 대화방식까지 디테일한 설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급식소가 운영되는 방법이나 부수적인 몇 가지의 설명을 더 듣고 나자 직접 아이가 되어 급식소를 이용해 보는 시간이 왔다. 엄마들이 차례로 줄을 섰다. 그나저나 요즘에 급식참관 수업도 있다니 신기하네.


'밥 먹자!'


오늘 내가 학교를 방문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와 함께 급식을 경험하는 줄 오해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급식소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때만 해도 아이랑 같이 먹는 게 아니라면 신청하지 말걸 그랬다며 가벼운 후회를 했는 데...


급식소에 가득 찬 음식 냄새는 내 침샘을 자극했다.

본래 나는 급식을 참 좋아한다. 학생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들이 기피하는 그 병원밥까지도. 어쩌면 직업특성상 끼니를 거르는 게 일상이 되어버려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들의 줄에 합류했다. 왠지 급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아기자기한 의자가 귀여웠고 샛노란 색깔이 내 마음에 설렘을 건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순간, 진짜 아이처럼 떼를 쓴다거나 엉뚱한 요구를 해볼까 했지만 역시나 내게 그런 용기는 없었다.아무 말 없이 얌전히 밥을 받아와 자리에 앉았다.




식판을 보니 사진을 안 찍을 수 없었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양의 닭볶음탕과 김치, 계란말이, 배 두쪽이 있었고 내가 코를 박고 먹을 만큼 좋아하는 미역국옆엔 평소의 내 양의 반도 안 될 것 같은 밥 한 주걱이 있었다.




사실, 일반성인의 한 끼로 충분했다. 여분의 밥과 반찬도 옆에 비치되어 있었고. 그저 나는 다 작아 보였다. 의자도. 식판도. 음식도 내 눈엔 아들 크기로 보였을 뿐.


아들의 점심시간을 상상하며 먹는 밥이 왜 그렇게도 즐거웠던 걸까. 같이 먹은 것도 아닌데.

그냥 아이의 생활을 몰래 엿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좋을 까. 역시 나는 고슴도치 엄마였나 봐.


밥을 먹고 식판정리까지 다 끝내고 나오니 그제야 아까는 급해서 보지 못 한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늘 모래에 할 때마다 그려서 했는 데... 아이들 땅따먹기 땅 크기로 싸울 일은 없겠네.


놀이 교육이 하나의 교육으로 자리 잡힌 지도 꽤 되었다. 심지어 지금은 놀이교육이 단순히 교육 방식 중 하나가 아닌 꽤 영향력이 있는 입지라 우리 때와는 작은 디테일부터 전체적인 학교분위기마저 다르다.


괜스레 부러워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대칭까지 학습할 수 있는 운동장이라니.

어린 시절 보도블럭에 돌로 그림을 그려서 선생님한테 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왜 갑자기 떠오른 건지.


그렇게 이유 모를 아쉬움을 뒤로 교문으로 향하는 데 이전엔 작은 모래터였던 철봉놀이터가 그새 바뀌어있었다. 이번 방학 때 계속 공사한다고 했던  게 이거였구나.



알록달록 이쁘긴 한데, 이건 별로 부럽지 않았다.

작고 소중했던 모래 터였는 데...

아이들이 모래 만지며 놀 수 있는 곳이 점점 없어진다는 게 조금 속상했다. 그냥 나랑 공유할 추억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초등시절의 나와 지금의 초등인 네가 연결지점이 없어질까 봐 겁났던 걸까.


예전에 신랑이 했던 공감하지 못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자고로, 애들은 흙도 퍼먹으면서 커야 되는 거야."

왜 지금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싶을 까.


교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데 왜 내 마음은 아직도 들떠있는 건지. 오랜만에 먹어본 낯선 학교에서의 급식은 초등시절의 나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괜스레 반가웠고 신기했다.

뜻밖의 밥 한 끼에 잃어버린 일기 한 페이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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