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농사

귀하게 귀하게 키워놨더니...

by 서혜림

결혼한 지 어느덧 9년.


초반 2년은 정말 많이 부딪히고 또 대화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잘 싸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서로 상처받는 말을 하지 않고 조심하게 되었다. 이제는 다투더라도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일찍이 포기할 건 과감히 포기하니 더 편해졌다.



지금 나는 40대다. 주변 어른들이 말하길 60대가 되었을 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자식'이라고 한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녀를 여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다는 것이었다.



남편과는 이제 싸울 만큼 싸워서인지 웬만한 일에는 무덤덤하다. 하지만 자식은 다르다. 늘 마음이 아프고 신경 쓰인다. 죽을 때까지 '부모'라는 자리는 쉽게 놓을 수 없는 것 같다.



60대가 되고 보니 가장 부러운 것


60대가 되면 가장 부러운 게 뭘까?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한 자식을 둔 부모가 제일 부럽다"


반대로 자식이 마흔이 넘도록 늘 부모를 탓하고 "엄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거야"라며 원망한다면, 그건 정말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은 나이에 3~40대 성인 자녀의 경제적, 정서적 짐까지 떠안는 현실의 무게는 상상이상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 부모님들 사이에선 이런 말이 자주 들린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나 봐.. 다 내 탓이지 뭐.."

예전엔 남편 험담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젠 자식에 대한 한숨이 더 많아진 것이다.




우리 엄마, 아빠


아빠는 원래 사업과는 젼혀 맞지 않는 분이었다. 젊은 시절 보건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엄마는 그 월급으로는 아이들 키우기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가게를 열자고 하셨고, 아빠는 그런 엄마의 말을 따라 결국 사업을 시작하셨다.


하지만 사업체를 운영할 성향이 아니셨던 아빠는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버티셨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셨다. 결국 몸을 망가뜨렸다.


아빠는 어느 날 쓰러지셨고, 뇌출혈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하신 뒤, 엄마는 밤낮없이 아빠 곁을 지키며 간호하셨다. 요양병원에서 엄마는 간호를 너무 열심히 하셔서 유명했다.

그렇게 2년을 병원에서 보내시고, 결국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엄마는 삼 남매를 키우느라 늘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셨다. 아침이면 도시락 세 개를 바쁘게 싸고, 부랴부랴 가게 문을 여셨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오면 또다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쉴 틈도 없이 분주한 하루가 반복됐다. 엄마는 늘 강해 보였고 나에겐 슈퍼맨 같았다. 식사도 마음 편하게 못하셨다. 혹시 손님이 올지 모른다며, 밥을 입에 밀어 넣고는 금세 다시 가게로 달려가셨다.


그렇게 숨 돌릴 틈도 없이 살아가셨지만, 운동만큼은 절대 거르지 않으셨다. 나중에 자식들한테 짐 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지금 엄마는 여전히 건강하시고, 파크골프를 즐기며 사신다.




자식에게 쏟아부은 돈은 페이백이 될까?


주변에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에게 한 달에 100만 원 넘는 사교육비를 쓰는 엄마가 있다. 젊을 때 악착같이 돈을 모은 덕분에 집도 여러 채 사놓았다고 한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의지가 정말 뜨거운 분이다. 볼 때마다 그 열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남편 월급으로 교육비 감당이 안되어, 사놓은 집을 하나씩 팔아 교육비로 쓰고 있다고 한다. 곁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솔직히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이제 겨우 아이는 7살이다. 언젠가 크고 나서 자신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엄마를 보며 어떤 마음이 들까? 나는 문득 그런 상황이 두렵게 느껴진다.


오히려 넉넉하게 뒷바라지해 주고, 돈이 부족하다면 돈을 쥐여주는 부모의 자녀가 나중에 부모를 원망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더 이상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고, 심지어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엄마 때문"이라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20년, 30년 세월 동안 쌓여온 관계의 방식이 그렇게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되돌리는 건 정말 어렵다.


심지어 60이 된 아들이, 80이 넘은 부모를 원망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1950~60년대에 태어난 부모 세대는 "우리는 힘들게 컸지만, 내 자식만큼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몸이 부서져라 일하며, 자식 교육과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분들이 참 많다. 이런 헌신이 반드시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 씁쓸하다.


친정 엄마는 요즘도 여전히 장가가지 않은 남동생을 위해 돈을 모으고 계신다. "그래도 집 사는 데 좀 보태줘야지.." 하시며 말이다. 남동생은 결혼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성실히 직장을 다니며 스스로 잘 살아가고 있다.

돈 필요 없다고 해도 엄마 마음은 또 다른가 보다.


"그래도 줘야지... 줘야지..." 어쩔 수 없나 보다.


삼 남매 중 부모님 돈을 가장 많인 쓴 사람은 나다. 그 때문일까, 나는 욕구 조절이 잘 안 되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안 하는 것에 가깝다. 어릴 적 나는 정말 떼를 많이 썼다. 내가 원하는 건 손에 꼭 쥐어야 직성이 풀렸다. 부모님은 결국 내 고집을 꺽지 못하고 들어주셨다.


그러다 인생의 귀인을 만났다. 나의 잘못된 점들을 하나하나 짚어주며 "사람 돼라"라고 말해준 분을 만났다.

나는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방식부터 조금씩 바꿔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오히려 엄마에게 부족한 건 없는지 살피는 딸이 되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계속 노력하고 있다.




자식농사 잘 짓는 법


"없다.. 없다.. 하면 있는 자식 나오고, 있다.. 있다.. 하면 없는 자식 나온다"


부모는 자식 앞에서 너무 강한 척하면 안된다. 현금지급기처럼, 필요할 때마다 돈을 주는 역할을 하면 자식은 늘 기대는 존재로 자라게 된다. 부모의 도움이 당연함이 되고, 고마움은 사라진다.


반면 자식이 부모를 안쓰럽게 여기고 "여행이라도 모시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려면 때론 없는 척, 약한 척도 필요하다. 너무 잘해주는 부모보다 적당히 부족함이 보이는 부모에게 오히려 마음을 쓰는 자식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모들


작은 이모는 늘 돈이 없어서 우리 집에 돈을 빌리러 오기도 했다. 그리고 밤낮없이 일하며 빌린 돈을 차곡차곡 갚아나가며 자식 셋을 정말 어렵게 키우셨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작은 이모를 부러워하고 있다. 자식 셋이 모두 사회적으로 잘 자리 잡았고, 결혼도 참 좋은 배우자와 했다.


작은 이모와 함께 있으면, 틈만 나면 자식들한테 전화가 온다. 나도 참 부럽다. 내 아이들이 커서 나한테 이렇게 할까?


반면, 큰 이모는 상황이 다르다. 큰 이모부가 돈을 잘 벌어, 자식 둘은 어릴 적부터 호강하며 자랐다. 항상 좋은 옷, 맛있는 외식, 넉넉한 용돈...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다 해주셨다. 하지만 지금 큰 이모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요즘 많이 힘들어하시고 우울감도 깊어 보인다.


이모들의 삶을 보면서 느낀다.


"자식은 없다 없다 하며 키워야 한다"


부모가 너무 다 해줄수록 자식은 감사보다는 '당연함'에 익숙해진다. 반대로, 부족함 속에서 자란 자식은 오히려 부모를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저절로 배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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