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매일의 산책이 나를 지켜주던 날들

흔들리지 않기 위해 계속했던 가장 사소한 반복

by 설안
이 글은 걷는 사람의 기록, 두 번째 이야기다.
삶이 쉽게 흔들리던 시기에
나를 다시 제 자리에 붙잡아 두었던
가장 조용한 반복에 대한 기록이다.


삶이 흔들리거나 불안할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를 하나만 꼽자면 나는 산책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하루에 한 번, 집 근처를 걷는 일.
대단한 결심도, 특별한 계획도 아니었다.


커피 업계에서 오래 일해오며
내 하루는 늘 사람으로 가득했다.
수많은 주문과 요청,

표정과 말투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했다.


어떤 날은
“덕분에 잘 머물다 가요”라는

다정한 말 한마디에 하루를 버텼고,
어떤 날은
“많이 사는데 서비스 없어요? 융통성이 없네요”라는 말에 그날의 마음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는 얼굴 뒤로

마음을 숨기는 법을 배워갔다.
휘청이는 감정을 애써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조차 흐릿해졌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으면서도
어딘가 떠 있는 것 같은 느낌.
멀리서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낯선 감각이 들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집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마음이 더 가라앉을 것 같아서
특별한 목적지 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저 집에 있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동네를 걸었다.


산책은 그때부터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나의 리듬이 되었다.

어지러운 마음들 속에서도
‘지금 이만큼은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

흔들리는 순간이 와도 일상이 완전히 뿌리째 뽑히지 않도록 나를 바닥에 단단히 붙드는 감각이
산책 안에 있었다.

그렇게 점점 더

나는 걷는 시간을 늘려갔다.
걸어서 출근하기도 했고,
휴일에는 서울 둘레길 같은
긴 길을 몇 시간씩 걷기도 했다.

그 시간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았지만,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나를 지켜주었다.


오늘도 밖에 나왔다는 사실.
오늘도 내 몸을 움직였다는 감각.
오늘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최소한의 증거처럼.
일상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산책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복잡한 날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날에도
걷는 일만큼은 계속했다.

그 반복 덕분에 삶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걷는 동안
나는 나를 설득하지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그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삶을 버티게 하는 건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대단하지 않은 반복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해내지 못한 날에도 계속할 수 있는 일 하나.
나에게는 그게 산책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자주 흔들린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너질 때 돌아갈 수 있는 자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집 앞길, 익숙한 골목,
늘 같은 속도로 걷던 그 길.
매일의 산책은 그렇게 나를 지켜주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하루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살아 있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전 01화1. 나는 걷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