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걷는 사람의 기록, 세 번째 이야기다.
혼자 걷는 시간을 지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다시 배우게 된 감각의 기록.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멀리 길을 내다보듯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나는 걷기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커피 업계에서 오래 일하며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익숙해졌고, 웃는 얼굴로 응대하며 적당한 거리에서 친절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관계를 잘 맺는다는 뜻과는 달랐다.
친절은 때로 감사로 돌아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한 것이 되어 선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거나, 상대의 기분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은 쉽게 지쳐갔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친절하려 애썼다.
카페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고, 커피 한 잔으로 온기를 건네는 곳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다정함에 위로받아 온 사람이었기에, 그 태도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관계에서 언제 가장 지치는 걸까.
상대의 마음을 가늠하기 어려워졌을 때일까,
아니면 분명 가까웠던 사이가 어느 순간 한없이 멀게 느껴질 때일까.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예전의 나는 결이 맞는 사람이라 느껴지면 빠르게 가까워지고 싶어 애가 탔고, 조금이라도 어긋난다고 느껴지면 조급한 판단으로 거리를 끊어내곤 했다. 너무 애쓰거나, 잔뜩 기대하거나, 혹은 나를 지키겠다는 이유로 단번에 선을 긋는 방식으로 서투른 날들을 지나왔다.
그러나 한참을 걸어도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길이 있고, 때로는 길을 잘못 들었음에도 더 빠르게 가는 길이어서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기도 하는 것처럼,
사람 간의 거리는, 우리가 나아가는 길은 오로지 마음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이처럼 걷다 보면 몸이 먼저 알려주는 순간들이 있다.
숨이 가빠질 때는 자연스레 속도를 늦추고, 몸이 굳을 때는 잠시 멈춰 스트레칭을 한다.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걷기를 통해 나는 관계를 잘 맺는 법보다 관계 안에서 서로의 거리를 먼저 확인하는 법을 배웠다. 어떻게 다가갈지를 고민하기보다, 그 사람이 지금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의 거리를 살피고 내가 나아가야 하는 거리만큼만 살며시 다가가는 일.
그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관계를 오래 이어가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같은 팀원에서 한 명이 팀장이 되면서 역할이 달라지자 책임에 따라 지켜야 할 선이 분명해졌고, 그 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잠시 멀어졌던 시간도 있었지만,
속도를 늦추고 서로의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의 이유에 귀 기울였을 때 대화는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길을 걸을 때도 잠시 앞서가거나 뒤처지는 순간이 생겼다 하여 그게 곧 끝을 의미하지 않듯, 관계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속도로 걷다 보면 다시 나란히 걷게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하고, 각자의 길을 가다 다시 마주치게 되기도 한다.
걷기는 나에게 관계를 단정 짓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지금의 거리만으로 모든 의미를 판단하지 않는 일.
조금 쉬었다 가도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살피는 일.
그렇게 나는 관계 앞에서 조금 숨을 고르고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에도 지금의 어려움이 길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기에, 순간의 마음으로 관계를 결정하지 않게 되었다.
걷기를 통해 배운 이 모든 감각은
이제 내 삶의 많은 관계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다.
나는 오늘도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간격을 살피며 천천히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