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걷는 사람의 기록, 네 번째 이야기다.
자꾸 멈추고 싶어지는 날들 속에서 멈춤 또한
길 위의 일부임을 배우게 된 감각의 기록.
일어나 양치를 하고 물을 마시는 일만큼이나, 이제 산책은 내게 당연한 삶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지만 어느 날은 짓눌리는 감각에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날이 있다. 눈꺼풀조차 밀어 올리기 힘든 날, 불을 켜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그런 날. 마치 고래에게 삼켜진 물고기처럼 빛 한 줌도 허락되지 않는 동굴에 있는 기분이 들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멍한 상태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런 날엔
‘그래도 일어났다는 내가 대견하기는커녕,
이렇게까지 루틴을 지켜야 하겠니?’
라는 솔직한 마음이 밀려온다.
걷다 보면 산뜻해진 마음으로 돌아올 나의 모습을 알면서도, 이토록 몸을 일으키는 일조차 어렵고 산책길에 나서는 것조차 엄두도 나지 않는 날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일단 욕실에 들어선다. 입만 헹구어도 좋고, 퉁퉁 부은 얼굴만 확인해도 좋으니. 그렇게 거울 앞에 서 있다 보면 자연스레 세수를 하거나 양치를 하게 되고, 점차 정신이 또렷해진다. 마음이 복잡할 때 신발 끈을 묶고 무작정 길을 나서 걷다 보면 몸은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듯, 몸이 산책을 하기 위해서 무작정 욕실로 들어가 무엇이라도 씻어내고 비워내는 것이다.
그렇게 양치를 하고, 마음이 내키면 샤워를 한다. 물을 맞고 서 있다 보면 몸이 스르르 풀리며, 짓눌릴 만큼 삼켜진 건 의외로 마음이 아니라 몸이었음을 알게 된다. 고래가 먹이를 삼키기 위해 큰 입을 벌리며 물살을 일으키듯, 씻어내는 일은 무거운 마음을 열어 내게 필요한 바람과 빛을 한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분의 흐름을 바꾸는 물살이 된다.
물론 무거운 마음에 지는 날들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씻고 길을 나서는 이유는, 산책을 하며 길어 올려지는 마음들과 풍경 앞에 멈춰 서서 새롭게 깨닫는 마음들뿐만 아니라, 잠시 멈추었을 때 멈추어진 그 자리에서 온전히 쉬는 법을,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나의 삶을 들어주고 들여다보는 마음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삶은 우리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의욕이 사라지고,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날도 있으며, 걷기가 언제나 나를 앞으로 데려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길을 나서야만 머무르고 싶은 장면 앞에 멈춰 설 수 있고, 나아갈 수 있고, 때로는 돌아설 수도 있다는 것을 길이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멈춰 서서 주변의 소리와 풍경을 깊이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삶의 숨결이 온도와 냄새와 색채를 모두 담은 채 기억된다는 걸 세세히 느끼게 된다.
내게 이 길 위에서의 산책은 내 안의 신호를 잘 느끼며 멈춰서 머물러야 할 때를 알려주었고, 더 나아가도 좋을 때를 가만히 짚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멈춤은 끝이 아니라, 삶 곳곳의 장면들을 지금의 순간으로 더 잘 느끼기 위한 ‘일시 정지’ 임을 깨닫게 되었다. 잘 멈추는 것. 때로는 언제나 다시 길 위에 설 수 있게 만드는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많은 날의 산책에서 배웠다.
나아감과 멈춤,
뿌리를 내리는 일과 자라나는 일.
그것은 모두 길 위에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몸을 일으켜 길 앞에 선다.
더 잘 멈추기 위해서, 나를 잘 거닐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