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삶은 어떤 속도로 걷느냐의 문제

by 설안
이 글은 걷는 사람의 기록, 다섯 번째 이야기다.
일의 속도와 삶의 리듬 사이에서 나에게 맞는 하루의 속도를 다시 감각하게 된 기록.


커피 업계에서 일하며 고정적이지 않은 스케줄로 지내다 보니, 하루의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픈과 마감, 때로는 그 사이의 시간대까지. 근무 형태가 달라질 때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다양한 형태의 근무를 경험하며, 어떤 곳에서는 오픈·미들·마감으로 나뉜 하루를 살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여러 지점을 오가며 여러 길을 살아내는 사람처럼 일하기도 했다. 이른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는 날도 있었고,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하루가 열리는 날도 있었기에, 처음에는 이 변화들이 낯설고 버거웠다. 하루를 일으키는 리듬과 수면 패턴을 잡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시간의 얼굴을 반복해서 통과하며, 나는 점차 나에게 맞는 하루의 흐름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오픈 근무를 하는 날에는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고요 속에서 몸을 깨우는 시간이 있었고, 출근 전 카페에 들러 피로를 깨우거나 잠시 눈을 감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어떤 얼굴로 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반대로 마감 근무를 하는 날에는 늦은 오후에 출근해 처음 마주하는 손님들의 얼굴 속에서 조금은 느긋한 하루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고정되지 않은 다양한 삶의 속도를 경험한 덕분에, 나는 어떤 시간의 얼굴과 온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고요한 이른 아침, 그리고 하루가 한 번 숨을 고르는 오후의 시간. 유독 이 두 구간이 마음에 남았다.


점차 나의 삶의 방향과 속도는 근무 시간과 상관없이 일정한 흐름을 갖기 시작했다. 오픈 근무를 하는 날에는 퇴근 후 남은 빛의 시간을 천천히 즐겼고, 마감 근무를 하는 날에는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서 오전의 빛을 느끼며 출근길을 걸었다. 하루는 늘 다른 모습으로 시작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일이 몰릴 때에는 마음이 원하는 삶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빠르게 제공해야 하고 속도를 내야 할 순간들이 반복되면, 시간은 어느새 1.5배속으로 흘러가 있었다. 그럴수록 삶이 체감 없이 지나가지 않도록,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시간만큼은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추려 애썼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알맞은 삶의 속도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 조금 느리지만 여유를 잃지 않는 속도. 보지 못했던 것을 바라보고, 흘려보냈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 오픈 근무를 마친 날에는 퇴근 후 남은 빛을 천천히 즐기기 위해 공원으로 걸었고, 마감 근무를 하는 날에는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서 오전의 빛을 느끼며 출근길을 걸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삶을 1배속이 아니라 0.8배속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얻었다.


그렇게 걷는 시간은 삶을 조금 더 내 쪽으로 끌어당겨 주었다. 빠르게 제공하고 속도를 내야 하는 일의 세계와 달리, 걸음 위에서는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속도를 선택할 수 있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충분한 체력이 쌓였을 때는 다시 박차를 가하기도 하면서.


그 과정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속도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그 흐름 위에 내가 분명히 서 있는가 하는 문제라는 것을. 삶을 세세히 느끼고 싶다는 소망,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천천히 걷는 시간 속에서 더욱 또렷해졌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때로는 가슴이 벅차도록 뛰어보고, 그 뒤에는 반드시 천천히 걸으며 그 시간들을 다시 바라보는 일. 속도를 조절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멈추거나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감각하는 일에 가깝다는 것을.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다시 힘을 내기 위해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각자의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어떤 속도로 하루를 걷고 있을까. 조금만 늦춰도 괜찮은 구간을 억지로 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아직 충분히 숨 쉴 수 있는데 스스로를 너무 재촉하고 있지는 않은지. 삶은 결국 누가 더 멀리 갔는지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오늘을 제대로 통과하고 있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어느 곳에서 어떤 속도로 흐르고 있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길 바란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가 당신의 삶에 장면들을 채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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