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걷는 사람의 기록, 여섯 번째 이야기다.
내 속도를 지키는 일이 곧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배운 시간에 대하여.
내 속도를 지키는 일은,
모두를 만족시키려 애쓰지 않는 일이었다.
제주 관광지 안의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속도를 재촉받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단체 손님들이 갑작스럽게 몰려와
다양한 음료를 주문하시고는
“버스 시간이 있어서요.
10분 안에 나와야 해요.”
라고 말할 때가 많았다.
커피를 소개하고 손님들과 소통하며 공간과 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분명했다.
하지만 관광지라는 환경은 그 마음을 종종 시험했다.
그래서 가능한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 나갔다.
미리 전화로 단체 방문을 알려주실 수 있도록
가이드 분들의 연락처를 받기도 했고, 메뉴를 통일해 주시면 더 맛있고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는
안내도 덧붙였다. 현실 속에서 지킬 수 있는 선을 찾기 위한 나름의 해결 방식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리 준비해도 환경이, 시간표가, 사람의 흐름이 나를 앞질러 가는 날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더 잘했어야 했나’
‘방향을 바꿔야 하나’
라는 질문 앞에 서곤 했다.
복잡한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출근 전,
아침 햇살을 맞으며 집 앞 바닷가를 걷고
쉬는 날이면 긴 산책을 떠나 올레길을 걸었다.
걸음이 이어지는 동안,
그 질문들은 조금씩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어제의 일과 관계를 떠올리며, 다음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마음속에서 조용히 가늠해 보았다.
그 물음 끝에 나는 깨닫는다.
삶이라는 길 위에서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산책을 나설 때도, 등산을 준비할 때도 추위와 더위에 대비하고 길을 미리 살펴보지만 날씨는 시시각각 변하고 예상치 못한 우회로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변수를 껴안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준비하되, 통제할 수 없는 순간까지 내 책임으로 끌어안지 않아도 된다는 것.
걷다 보면 바람이 거세게 불 때는 잠시 멈춰 서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길이 험해지면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조정하면 된다.
그 모든 판단은
앞으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모든 상황을 해결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모든 기대를 만족시키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다했다면 그 이후의 힘듦은 의연하게 지나가도 된다는 것.
걷기는 나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
버티는 법이 아니라, 넘어가지 않는 법을.
오늘도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길을 걷는다.
환경이 나를 재촉해도 내 걸음만큼은
나에게 남겨두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