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혼자 걷는 시간을 대하는 법

관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하여

by 설안
이 글은 걷는 사람의 기록, 일곱 번째 이야기다. 관계에 지친 마음이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혼자 걷는 시간에 대하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실망은 어느 순간 가슴에 터널을 만든다. 말들이 오가고, 표정이 겹쳐 지나간 뒤 남는 울림. 그 공허 앞에서 우리는 종종 깊은 허무 속으로 잠겨 버리고 싶어진다.


마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고통이 남긴 외로움이 사무칠 때 살기 위해 외면을 선택하는 순간들이 있다. 터널을 지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의 빛도 들이치지 않는 어둠을 택하는 일은 나약함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과 몸의 체력이 떨어져 숨을 몰아쉬면서도 길을 나섰던 날들이 있었다.
바스러진 모래처럼 형체를 이룰 수 없는 나날 속에서도, 한 줌의 모래를 일으켜 세워 마음속 터널을 껴안은 채 빛으로 몸을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밝아오는 아침의 빛을 빌려 밝은 낯빛으로 길 위에 서서 햇살이 얼굴을 스칠 때면, 바스러진 모래를 씻어내는 바람처럼 나는 다시 빚어지고, 잠잠해진 빛이 스며든 터널을 마주한다. 흐트러졌던 생각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 동안, 천천히 나의 터널을 걷는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천천히 문을 닫고,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 길게 뻗은 고른 땅 위를 걷는다. 괜히 발을 쿵쿵 구르며 땅의 촉감을 느껴본다. 나의 삶도 단단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언젠가 다시 정체를 알 수 없는 터널이 삶으로 찾아오겠지만, 터널을 품고 있으면서도 언제든 빛으로 몸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을 혼자 걸어왔던 시간은 내게 가르쳐 주었다. 일에서의 나, 관계 속에서의 나는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전부가 아니며, 설령 나의 한 부분이 소실되더라도 존재 전체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것 또한.


관계가 어그러질 때, 자신을 놓아버리는 대신 그 길을 벗어나야 할 때도 있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잠시 돌아서거나, 다른 길로 우회하는 선택을 하듯이.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결정이다. 내 안의 숨을 고르고, 마음을 정비하는 일. 텅 빈 마음을 억지로 채우지 않고, 아픈 감정을 서둘러 봉합하지 않은 채 빛이 사라진 길도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은 조용히 알려 주었다.


혼자 걷는 시간은 외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와 나 사이, 그리고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기 위해 나를 정비하는 시간임을 이제는 안다. 우리는 어떤 관계와 역할을 넘어 평생 나와의 관계를 함께 걸어가야 하니까.


주어진 시간들을 통과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의 손을 붙든다. 삶에 면밀히 연결된 마음들을 조심스럽게 건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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