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에서 삶을 이해하는 법
이 글은 걷는 사람의 기록, 그 첫 번째 이야기다. 삶의 속도를 잃지 않기 위해 선택한 가장 느린 방식에서 이 기록은 시작되었다.
나는 걷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그 말은 운동을 시작했다는 뜻도, 특별한 목표가 생겼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삶이 자꾸 나를 앞질러 갈 때,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선택한 가장 느린 방식이었다.
커피 업계에서 오래 일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실내에서 보냈다. 바쁘게 움직였지만 마음은 늘
제자리에 머물렀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사용한 자리 뒤에, 온전히 나를 마주할 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퇴근 후에도 생각은 멈추지 않았고, 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특별한 이유 없이 집을 나서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없었고, 속도도 정하지 않았다. 그저 발이 닿는 대로 걷는 시간이 필요했다.
걷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책상 앞에서는 해결되지 않던 질문들이 길 위에서는 조금씩 풀렸다. 감정은 속도를 늦추자 모양을 드러냈고, 마음은 걸음에 맞춰 정리되었다.
걷는 동안 떠오른 문장들을 메모로 남기기 시작했고, 그 기록은 어느새 수백 개가 되었다.
산책은 나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시간이었다.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결과를 만들어낼 필요도 없었다. 다만 오늘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이었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일과 관계 앞에서도 조금 다른 태도를 갖게 되었다. 즉각적인 반응보다 한 박자 늦게 생각하는 법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나만의 속도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 최선을 다하되 무리하지 않는 걸음이 삶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은 언제나 예상대로 흐르지 않는다.
때로는 산을 오르듯 험난해 그저 나아가는 것밖에는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오르고 나면, 내려오며 삶을 면밀히 바라볼 시간이 주어진다.
삶의 모든 것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떤 마음으로 걷느냐는 선택할 수 있다.
걷기는 나에게 그 선택의 기준이 되어주었다.
너무 앞서가지도, 완전히 멈추지도 않는 속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거리.
이 글은 걷는 동안 축적된 기록에서 시작되었다.
일상의 산책길에서, 긴 길 위에서, 그리고 사람 사이를 거닐며 마주한 감정과 질문들.
앞으로 이곳에 그런 기록들을 차분히 풀어내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각자의 속도로 삶을 다시 걸어볼 수 있는 작은 여백이 남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도, 그 연습을 위해 길 위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