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그릴 것인가’는 창작 과정에서 필수적인 질문이다. 이에 대한 답을 작품의 테마나 모티프라고 이야기한다. 창작의 동기와 작품의 중심이 되는 것들은 작가의 나침반이자 관객의 이정표로 기능한다. 20세기의 위대한 화가 중 하나인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 1887. 7. 7~1985. 3. 28) 또한 몽환적인 초현실주의 속에서 표현한 주제가 있었다.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은 샤갈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 창조 원천이었던 ‘성서’를 주제로 작품세계를 펼친다.
Marc Chagall, Moïse, 1956, S.29, Color lithograph, 63 x 42 cm, © Marc Chagall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신화는 종교이자 문화다. 믿음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사회적 정체성을 지닌 이야기로 전해진다. 특히 구약성서는 민족의 역사를 서술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서사를 품고있다. 샤갈은 구약시대의 왕과 선지자들을 그림에 담아냈다. 그는 앙브루와즈 볼라즈에게 성서의 삽화 의뢰를 받아 10년 동안 성서 연작을 그렸는데, “성서는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성서를 영감의 보고로 삼아 작업에 매진했다.
샤갈은 거칠면서 몽환적인 표현으로 성서의 인물을 그려낸다. 모세, 다윗왕 등 구약시대 인물들의 이야기를 캔버스에 담아낸다. 인물들은 샤갈 특유의 화풍으로 독특한 모습으로 연출된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섰을 때 머리에서 빛이 났다는 모세의 모습은 머리에서 솟아나는 빛의 기둥과 함께 묘사된다. 다윗왕은 <푸른 다윗왕>에서 왕관을 쓰고 하프를 켜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샤갈 특유의 화풍에서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인다.
Marc Chagall , Le Roi David en Bleu, Oil on Canvas, 1967, 65 × 81 cm, Private Collection, © Marc Chagall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러시아의 유대인 마을인 비텝스크(Ві́цебск)에서 태어난 샤갈은 종교적 환경에서 성장했다. 유대인의 정체성이 확고했던 샤갈은 성서 판화에서 종종 자기 삶을 작품세계에 투영했다. <푸른 다윗왕>에서 다윗왕이 날아다니는 마을은 샤갈의 대표작인 <나와 마을>에서도 등장한 고향 비텝스크다. <강기슭에서의 부활> 또한 샤갈의 고향 마을이 등장하며, 당시 2차세계대전 중 나치독일에 의해 탄압받던 유대인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샤갈의 상황은 성서와 역사로부터 다시 한번 반복되었다.
Marc Chagall, David et Bethsabée 0/1 (d'après la lithographie M.230), 1973 Tapisserie basse lisse en laine et coton 0/1, 247 x 404 cm, Private Collection, © Marc Chagall en collaboration avec Yvette Cauquil-Princ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의 묘미는 단연 대형 태피스트리다. <다윗과 밧 세바>와 <모세>는 4m가 넘는 대형 태피스트리로 이번 전시를 통해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샤갈 특유의 강렬한 질감은 태피스트리의 직조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표현된다. 작품 앞에 놓인 벤치를 이용한다면 작품의 아우라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Marc Chagall, Vers l'autre Clarté, 1985, M.1050, Color lithograph, 63 x 48 cm, © Marc Chagall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샤갈은 마지막 작품인 <또 다른 빛을 향해>에서 죽음을 준비한다. 종교와 영적 세계를 표현하던 샤갈에게 죽음은 어둡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현실의 세계를 아름다운 빛으로 채우던 샤갈은 육체 너머의 세계를 또 다른 빛이라고 표현했다. 그림 앞에 선 샤갈은 자기 등에 날개를 달고,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으로 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은 샤갈이 성서라는 모티프를 구현하는 방식, 그리고 삶을 작품에 투영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샤갈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영성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