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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Oct 26. 2023

식탁의 왈츠

살다보면...


 “으악!”

조용한 일요일 오후 나의 갑작스러운 비명에 남편이 방에서 뛰쳐나온다.

나는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수돗물을 틀고 눈을 씻어낸다. 잠시 거울을 보니 토끼눈은 양반이다. 그야말로 눈알 빠지겠다는 상스러운 말이 생각난다.

사건은 라면을 끓이다 일어났다. 수프를 뜯은 것을 깜박 잊고 다시 수프를 뜯고자 손스냅을 이용해 봉지를 터는 순간 매운 수프가루가 눈을 덮친 것이다.


“빨리 시동 걸어!” 행동이 느린 남편에게 소리쳤다.

‘아! 응급실은 왜? 꼭? 병원이 문을 닫은 시간 아니면 주말에 가게 되는 거야?’

평소 건강하지만 응급실 이용을 간혹 하는 일이 생기는데 목숨을 다투는 일이 아니기에  혼자 씩씩하게 간다. 새벽에도 택시를 타고 가거나 남편에 집에 있어도 말하지 않고 119를 조용히 불러 혼자 간 적도 있다. 나중에 남편이 믿지 않길래 119 출동문자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날은 눈이 안 보이니 어쩔 수 없이 남편차를 타고 갈 수밖에..... 눈을 감고 선글라스를 끼고 장님처럼 더듬으며 응급실에 도착하니 코로나 시국이라  추운 밖에서 대기를 하고 들어갔다.


나를 눕히고 당직 의사는 식염수를 눈에 들이붓고, 나는 개그맨 이경규 씨처럼 눈동자를 상하좌우로 굴리며 눈을 씻어냈다. 치료 후 집에 오니 싸구려 쌍꺼풀 수술을 한 것처럼 눈두덩은 부어있고 눈은 여전히 토끼가 친구 하자며 올 지경이다. 그나마 저녁이 되니 좀 가라앉고 다음 날 동네 안과를 가지 않을 정도로 눈은 진정이 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뒤로 국물요리를 먹을 때면 이상하게 한 방울이 눈에 튀는 겁니다. 그래서 약한 비명을 지르며 눈을 씻거나 깜박거려 눈물을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가만 관찰하니 눈에 안 튀면 굴, 아니면 옷깃에라도 튀어있는 빨간 국물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콧등 치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매운 국수를 빨아들일 때는 차라리 눈을 감아야 되고 짬뽕이나 육개장처럼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꼭 윗옷을 세탁해야 된다. 침을 삼키다 제 침에 사래가 걸려 기침을 하거나 음식물이 가슴이나 배에 떨어지는 게 늙는 징조라고 중년의 여인들이 말한다.


아! 드디어 그 징조가 얼마 전부터 나에게도 시작이 된 것이다. 늙어가며 성질이 급해져서 더한 것인지 흘리고, 튀고, 기침까지. 왈츠도 아닌 삼박자를 식탁에서 추는 격이다. 삼박자를 식탁에서 하니 가끔 같이 식사하는 아들은 타박을 준다.     

며느리 앞에서는 더 민망하다. 조심하면 더하다. 사실 식사흐름도 끊긴다. 면박을 받을 때는 ‘너도 늙어봐라’ 속으로 투덜거리지만 나도 젊었을 때 그랬을 것이다.

 

시아버님이 친척 결혼식 피로연에서 음식을 드시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돌아가셨기에  남편이 먹다가 사래가 걸리거나 기침을 하면 순간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남편은 한 번에 많은 양을 입에 넣다 보니 실수가 잦다. 그래서 누가 찹쌀떡을 줘도 절대 남편에게 주지 않는다. 왈츠도 아닌 삼박자를 식탁에서 추는 나이가 되어버린 남편과 나. 생각하면 서글프다.


 곧 추석이고 아들 내외와 한 식탁에서 명절 음식을 먹어야 한다. 실수해서 면박받지 않기 위해, 식사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손주 입같이 작게 벌려 오물거려야 되지 않을까 싶다. 뭘 그렇게 까지 눈치 보느냐 고 하겠지만 부모님과 같이 하는 식사 자리를 즐겁고 우아한 시간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이유이다.


화려한 무도복을 입고 미끄러지듯 추는 4분의 3박자 왈츠는 못 출망정 최소한 식탁의 몸치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올해는 6일이나 추석연휴가 주어지니

이박삼일 정도는 우리 집에서 놀겠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몇 끼를 우아함을 갖추고 같이 먹어야 되는 거야?

                  2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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