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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Nov 01. 2023

엽기  닭

살다보면...

     언니가 닭의 목을 내려친다. 순간 닭의 목은 잘린다. 그리고 목도 없는 닭이 몸통만으로 피를 흘리고  퍼덕거리며 마당을 돌아다닌다.


꿈이  아니다.

실제 엽기영화의 한 장면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어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 오랜 시간이 지난 일임에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 중의 하나이다.


3월쯤 되면 초등학교 앞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장사가 있다. 바로 병아리 장사이다. 나도 곧잘 병아리를 사고는 했지만 며칠 못 가 병아리는 축 늘어지며 죽어버리고는 했다. 미숙아를 데리고 와서 제대로 돌보지 못한 셈이다. 어느 날 언니가 시장에 가서 병아리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왔다. 보는 순간 다른 병아리와는 달리 요즘 말로 포스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롱다리이고 털의 색깔도 고운 연 노란빛이 아닌 희끄무레한 털을 가지고 있는 병아리였다. 학교를 갔다 오면 열심히 모이를 주기는 했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놈은 생각과는 달리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잘 자라준 정도가 아니라 점점 커 가며 무늬만 닭이었지 거의 개 수준이었다.


자랄수록 사나워지면서 친구들이 오면 물듯이 달려드는 바람에 친구들은 마당을 들어서자마자 마루로 뛰어 올라가야만 했다. 게다가 대문을 열어 놓으면 나갔다가 해가 질 때쯤 바람났던 개가 집을 찾아오듯 슬그머니 들어오는 일도 있었다. 또 남의 집 장독대를 헤집고 다녀 동네 꼬마들이 이놈을 잡으려다 장독을 깨먹는 일도 생겼다. 이런 말썽꾸러기 같던 병아리가 어느 듯 중닭이 되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경로당에서 닭장을 얻어오셨기에 우리는 닭을 두어 마리 더 사서 닭을 키우게 되었다. 삭막한 시멘트 마당에 갑자기 시골마당처럼 닭장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알도 잘 낳지 못하고 닭똥냄새도 괴롭고 사료주기에도 귀찮아질 무렵 닭 한 마리를 잡아먹게 된 것이다. 그때 집안일 도와주던 금순 언니라고 있었는데 그 언니가  빨래판과 칼을 준비하고 병아리 때부터 키워 온 성질 사나운 닭을 잡았다. 그리고 닭을 내려친 순간 목은 빨래판에 남아있고 몸통은 마당을 돌아다니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목이 잘린 채 돌아다니는 닭! 그것도 피를 흘리며······


그것을 본 나는 숨이 멎는 공포에 비명을 지르며 마루로 뛰어 올라갔고 그 후에 일이 처리될 때까지 마당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얼마 후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든 상황이 끝나있었다. 닭은 저녁상에 올라왔을 것이고 내가 그것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생각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충격으로 잠시 기억이 상실되지 않은 이상 그 끔찍한 장면을 보고서 먹었을 리는 없다. 오랜만에 만난 동네 단짝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 친구에게 닭 잡던 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친구 하는 말이

 “나도 그때 같이 있었어.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나보다 더 겁이 많은 친구는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는지 몸서리를 친다.

아마 그 친구도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그 광경을 같이 본 모양이다.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리면 미꾸라지가 엉켜 꿈틀거리는 것을 본 뒤로 친구는 절대 추어탕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가을만 되면 엄마가 추어탕 만드는 과정을 수 없이 봐왔지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단연코 추어탕이다. 게다가 닭 잡던 날의 충격적인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별 거부감 없이 닭요리를 먹고 있다. 내가 둔한 것일까? 아니면 괴기스러운 그 장면조차도 추억이라는 이름에 묻혀 그냥 해프닝 정도의 기억으로 순화된 것일까?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을뿐더러 그때는 악몽 같았던 기억도 지금 생각하면 웃음부터 나온다. 아마 살아오는 동안 힘들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제법 단련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


닭을 잡던 금순 언니는 몇 년 후 우리 집을 떠나 독립하였고 그 뒤로 소식을 모르고 많은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도망 다니던 닭을 잡아 끝까지 요리로 마감하여 상에 올린 언니의 용맹함은 아직도 경이로운 전설처럼 친구와 나에게 기억되고 있다. 가끔 꿈으로라도 찾아가고픈 그 시절,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오늘 밤은 칼을 든 언니와 목 잘린 닭이 내 꿈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ㅡ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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