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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Feb 20. 2024

바람길

살다 보면

  오래전 ‘황금신부’라는 드라마가 방송되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여인이 아픈 남편을 보살피고 시댁의 떡집 일을 배우며 열심히 사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여배우가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정말 베트남 여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오래된 드라마이지만 잊히지 않는 대사가 있다.

베트남에서는 ‘태풍이 불 때는 문을 열어놓아라’는 속담이 있단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태풍이 온다고 하면 문을 닫든가 창문에 신문지나 테이프를 붙인다. 일기예보도 강풍이 예상되면 창문을 닫으라고 말한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환기를 시키거나 더울 때 맞바람이 치는 것이 좋다고 마주 보는 문을 열기도 한다. 아마 이런 이치로 태풍이 불 때도 문을 열어 놓으면 바람이 들어와서 나가는 바람길이 되리라는  뜻에서 나온 속담인 것같다


 그러나 이 속담이 모든 사람에게 말 그대로 해석되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큰일을 만날 때 마음속에 품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민을 터놓거나 해서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비유하자면  인생의 태풍 때 마음의 바람길을 만들어 힘든 문제들에서 빠져나가게끔 하라는 뜻일 것이다. 물론  그 바람길은 사람마다

방법이 다를 것이다


 베트남의 속담에서만 의미를 찾을 것이 아니다. 섬지방의 돌담을 보면 도시의 담과 다르게 구멍이 나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그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도록 쌓은 것이다. 바람길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시멘트나 흙으로 돌들을 붙여놓지 않아도 돌담은 무너지지 않는다. 게다가 돌담을 똑바로 쌓기보다 둥글게 쌓아야 무너지지 않는단다. 바람의 저항을 덜 받기 위해서 인 듯싶다.


 나의 삶에도 크고 작은 바람을 맞으며 여기까지 왔다. 어찌어찌 견디면서 왔지만 내 마음에 바람길을 냈더라면 덜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을 때 나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위의 형제들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튼튼한 마음의 벽을 세우고 씩씩한 척 사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결혼을 해서 시집살이를 견디면서도 참고 사는 것이 미덕이라며 섭섭함을 가슴에 쌓아놓고만 살았었다. 살면서 억울하고 힘든 일이 이뿐이었을까 마는 별 표현 없이 살았던 것이 마냥 잘 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끔 나와 관계없는 사건을 접하거나 들으면 비슷했던 옛날의 내 상황이 불현듯 떠오르며 새삼 화가 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분노로 어떤 때는 헛웃음으로 그 기억을 마무리한다. 앞으로도 이런저런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바람들과 부딪혀 무너지느니 바람을 내 보낼 마음의 바람길을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돌담은 반듯하고 예쁜 돌을 쌓으면 구멍이 생기지 않는다. 못나고 삐뚤어진 돌로 쌓은 돌담 구멍이 바람을 내 보내기에는 더 적합하고 건강하고 오래간다. 오늘 하루도 못난 돌은 바람길 한 구멍을 가슴에 담 집을 나선다.

뜻하지 않은 상처를 받더라도 흘려보내리라.

                                                                                 

                                       사진ㅡ박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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