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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Feb 10. 2024

 평생 인연

  우수수!


무지막지하게 떨어진다. 날개도 없는 것들이..

주식도,  비트코인, 꽃잎도 아니다.

머리카락이다.  

빗물에 지푸라기 쓸려나가듯, 샤워기만 닿으면 후루룩 빠져서 하수구에 흉측하게 몰려있다. 빠지는 것은 머리칼뿐만 아니다. 눈물도 쑥 빠진다. 도대체 원인이 뭘까? 그치겠지 하며 두어 달 반을 기다리는 동안 표시 나게 빠져 보이는지 주위에서 걱정들을 한다. 가뜩이나 유전적으로  적은 머리숱이 두어 달 반이 지나도록  빠지니 거울을 보면 초라해 보이고 볼품없는 아줌마의 모습이다.


아는 이의 남편이 피부과 원장님이어서 창피를 무릅쓰고 갔다. 선생님도 심각해 보이는지

" 병적으로 빠지네요"  하며 약을 주신다.

 혹 이식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뒷머리도 별로 없어 안된단다. 어찌나 실망스러운지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약을 한 달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 울며 다시 병원에 갔다. 좀  기다려보라고 하신다. 코로나백신 부작용인가 싶어 물어보니 가능성이 있단다.


거금을 들여 가발을 샀다.

가발을 앞에 놓고 또 펑펑.

사람들은 '가발 쓰면 되지'라고 하지만 탈모가  나에게는 질병이었다. 그리고 한 달 반이 더 지나,  약 복용 후  달 반쯤 되자 의사 선생님 말처럼  기적처럼 이마 위에 잔머리가 솔솔 나기 시작한다. 새싹 나오올라오는 머리카락을 유리그릇처럼  조심조심 다루었다.


두피주사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놀랄 정도로 효과가 좋다. 거의 6개월을  치료받으니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 이제 됐다고 '안녕히 계세요' 인사까지 하고 왔는데, 웬 일?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은 후  두어 달 지나니 또 탈모가 시작된다. 키우며  잡아먹은 자식 놈만 배반 때리는 줄 알았더니 제법 돈 먹은  머리카락의 배신이라니! 그러나  이번에는 전처럼  절망적이지는 않다. 그래! 나에게는 00  피부과가 있으니까..

다시 또 치료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효과는

만족스러웠다.  1년  넘도록 남편 아닌 다른 남자에게 듬성듬성한 머리를 내민다는 게 영 쑥스러웠지만 내 코가 석자이니 어쩌겠는가?


나 같은 탈모는 유전성과 노화로 약을 평생 먹는 수밖에 없다. ㅇㅇ시딜을 2분의 1을 먹다가 이제는 4분의 1로 먹고 있다. 4분의 1로 쪼개니 크기는 깨알만 하다. 이 약이 나에게는 '신약'인 셈이다. 숱 많은 이에 비하면 적지만 친구들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고 신기해한다. 오랜만에 본 이는 내가 어딘가 달라졌다고 얼굴을 뜯어보더니  

"아하! 머리"  

의사입장에서도 기분 좋은 일이다.  "치료받으며 머리가 나지 않아 골치 아픈 환자가 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라고 하니  선생님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수긍을 하시는 표정이다


 머리가 풍성해지며 마음도 넉넉해진다. 사람들은 여자 외모의 많은 부분이  머리발이라는데 내 생각은 90퍼센트다. 머리컷을 하러 소개받은 미장원을 다녀와서 소개해 준 이에게 농담할 여유도  생겼다. 앞모습은 원래 이뻤고 미용실에서 뒷머리 컷도 예쁘게 해 줘서 이제 앞뒤 모두 예뻐졌다고.


의사 선생님에게  인생에서 성공한 것, 기적이라면  머리숱이 많아진 것이라고 하니 웃으신다.

성공이 별거인가? 자신의 약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 아닌가? 또한 기적은 신이  직접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을 통해서도 일어난다.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리면 잡히는 게 있고,  흘러내리는 머리에 예쁜 핀을 꽂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신기하다.  가족 외에 깨알만 한  약이  평생의 인연으로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손 잡고 쭉ㅡ같이 가보자꾸나.


*사진은 아시겠지만 전지현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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