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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Mar 25. 2019

우리는 먼저 제네바로 갔다

막심과 라뒤레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 스위스(라틴어로 헬베티아이다). 초콜릿과 하이디의 나라. 동화 같은 스위스에서 역사상 많은 위인이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그들이 알프스에서 받은 값진 영향과 도움을 살펴보기 위해 2017년 연말연시 열흘 동안의 꿈속으로 돌아간다. 제네바 공항에 내려 처음 찾은 곳은 막심 레스토랑이다.


날씨 좋은 남프랑스 코트다쥐르를 뒤로 하고 드디어 스위스로 간다. 니스에서 제네바까지 기차로 가려면 이탈리아 밀라노를 거쳐야 한다. 거의 하루를 허비하는 것보다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우리로 치면 시골인 코트다쥐르 공항에서, 내 여권을 가지고 EU 가입국이 아닌 스위스로 비자 없이 갈 수 있는지 시비가 붙었다. 내가 그동안 프랑스보다 스위스를 더 많이 드나들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항공사 책임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우리나라가 여권 파워, 곧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 수로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1위라고 한다. 독일이나 일본보다 앞선다. 


1939년 전쟁이 임박했을 무렵 많은 이민자들 틈에 끼여 미국에 들어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식 이름을 바꿀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웃어넘겼다. 실제로 보리스 토마솁스키(Boris Thomashefsky)의 성은 나중에 토머스가 되었고, 야코프 게르쇼비츠(Jacob Gershowitz)의 성은 거슈윈이, 솔로몬 시테른(Solomon Stern)의 성은 스턴이 되었다.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 작곡가 조지 거슈윈,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의 선조가 20세기 초 미국에 왔을 때 이야기이다.


만일 내 나라에 무슨 일이 나서 돌아가지 못하면 나는 어떻게 될까? 실제로 톰 행크스가 나온 <터미널>이라는 영화가 가상 국가 크로코지아 사람이 뉴욕에 왔다가 고국에서 터진 내전 때문에 국제 미아가 되는 이야기이다. 어디 그뿐인가? 돌연변이 인간을 다룬 엑스맨 시리즈와 수퍼 히어로들의 활약을 그린 어벤저스 따위도 사실은 이방인에 대한 것이다. 나를 잠시 이방인, 유사 난민으로 붙잡았던 니스와 작별이다.


반면 제네바는 예로부터 망명자의 도시이다. 여기서 피아니스트 H와 만나기로 했다. 뮌헨에서 활동 중인 H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다. 나이는 열 살 아래이지만 서로 통하는 사이이다. 생일이 같아서일까?

2007년 라인 폭포 앞에서

우리는 2004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처음 만났다. 현지에서 쇼팽의 협주곡을 녹음하는 그를 잡지사 기자이던 내가 취재하러 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이다. 바로 그 도시에서 한스 작스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유적을 거닐며 H와 친해졌다. 

2004년 당시 기록

다음 해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시 만났다. 당시 유망주 가운데 하나였던 H를 알리기 위해 기획사가 마음이 맞는 나를 취재차 초대한 콘서트였다. 토론토 심포니와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3번을 연주하기 전후, 우리는 토론토 한복판 공원묘지를 거닐었고 나이아가라 폭포의 웅장함에 감탄했다.

최근의 슈만 음반

H는 국내 연주가 있을 때마다 만났고, 나도 유럽에 나갈 때면 미리 근황을 물었다. 예전에 함께 스위스에 왔을 때 샤프하우젠의 라인 폭포도 함께 갔다. 오래도록 음악 관련 일을 해왔지만, H는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음악가 친구이다. 종종 다른 연주자들과 일로 만나도 지속적인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 이유는 대개가 나에게 뭔가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해줄 것이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가와는 우정을 나누지 못했다. H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나를 그냥 따르기 때문에 나도 그냥 좋아한다. 그저 내가 유럽에 간다고 하고 자기가 스케줄이 비니까 뮌헨에서 제네바까지 와준 것이다. 그 대가는 신나게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H가 조금 먼저 호텔에 도착했다가 다시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 짐을 풀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나는 제네바에 온 것이 너무 오래전이라 별 기억이 남지 않았지만, H는 비교적 최근에 왔던 모양이다. 내가 정한 행선지로 먼저 앞장선다. 바로 파리 막심 레스토랑의 제네바 지점이었다. 이미 파리 막심 박물관의 엘렌 씨가 제네바 지점이 문을 닫고 당분간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발길을 옮겼다.

휴업 중인 제네바 막심 레스토랑. 파리와 똑같은 간판 서체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

내가 막심에 집착한 이유는 바로 이 제네바 지점이 스트라빈스키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부터 제네바 막심에 대해 알았던 것은 아니다. 그저 제네바 시내 어느 식당쯤으로 알고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다. 미국 음악학자 리처드 태러스킨이 1996년에 펴낸 《스트라빈스키와 러시아 전통Stravinsky and the Russian Traditions》은 스트라빈스키 연구의 중요한 성과로 꼽힌다. 두 권 합쳐 1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머리에 베기엔 불편할 만큼 두껍다.

벽돌이 아니라 블록이지만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다

문제는 이 책이 국내에 많지 않다는 점이다. 더욱이 대학 도서관을 마음대로 드나들 형편도 아니라 꼭 구입해 보고 싶었다. 값이 문제가 아니었다. 해외 사이트를 봐도 모두 현지 배송만 가능할 뿐 국제 배송을 해주는 곳이 없었다. N이 은인이다. N은 내 중고등학교 후배이다. 주변에 클래식 듣는 친구가 얼마 없지만 N이 그중 하나이다. 돈 잘 버는 변호사 일을 때려치우고 지금은 ‘월급쟁이’ 로스쿨 교수를 하고 있다. 나와 친할 수밖에 없다.


N은 내 고민을 듣고는 바로 해외 중고 서적 전문 사이트를 알려준다. 몇 군데를 뒤진 결과 아주 상태 좋고 가격은 더 황송한 책을 배송받았다. 그야말로 내가 알고 싶던 것이 전부 여기에 들었다. 태러스킨은 어디에서 이런 옛날 사진을 구했는지, 스트라빈스키의 앨범을 통째로 열람한 듯하다. 물론 요즘에는 인터넷과 SNS에 이런 사진이 차고 넘치지만 책이 나온 20년 전에는 전부 발품을 팔았어야 했을 것이다. 여기서 제네바 식당이 어디였는지 알려준다. 바로 막심이었다.


스트라빈스키는 1914년 제네바 막심에서 스위스 친구인 지휘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와 종종 식사를 했다. 그때 헝가리 민속 악기 침발롬 소리를 듣고는 신작 발레 <결혼Les Noces>에 그 악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라츠 알라다르가 연주하는 침발롬 소리가 러시아 악기 후슬리와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알라다르 라츠 연주이다

침발롬과 우리나라 국악에 쓰는 양금은 거의 같은 악기이다. 줄을 채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원리는 피아노와도 같다. 헝가리 명인 라츠 알라다르(Rácz Aladár, 1886-1958)는 당대의 유명 인사로 생상스는 그의 연주를 듣고 ‘침발롬의 리스트 페렌츠’(헝가리는 우리처럼 성을 이름 앞에 쓴다)라고 했다.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던 라츠는 1938년부터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가르쳤다. 이때 그가 민속 음악을 연주하면서도 계속 교수직을 유지하도록 지지했던 사람이 바로 버르토크 벨라와 그의 아내 파스토리 디타이다.

그 결과 오늘날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하는 민속악기가 되었다

라츠는 막심에서 자신의 연주를 듣고 관심을 가진 스트라빈스키에게 침발롬을 가르쳐주었다.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민속악기 후슬리(Gusli)와 비슷한 침발롬이, 러시아 전통 혼례를 보여줄 발레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후슬리는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에도 나온다. 침발롬이 채로 치는 데 비해 후슬리는 손으로 뜯는 악기라는 점만 달랐다.

그 유명한 서곡이 끝나고 막이 오르면 후슬리 악사가 노래한다. 엿장수 판처럼 어깨에 맨 악기가 후슬리인데, 연주는 오케스트라 하프가 대신한다.

<루슬란과 류드밀라>는 스트라빈스키에게 특별한 작품이다. 이고리의 아버지 표도르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황실 극장 제일의 베이스였다. 스트라빈스키는 아버지가 출연했던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공연을 똑똑히 기억한다. 오페라 초연 50주년 기념일은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아버지가 부른 파를라프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평생 극장 냄새와 자신이 앉았던 자리까지 잊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날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든 이유가 있었다. 휴식 시간 중에 복도로 나왔을 때 어머니는 스트라빈스키에게 손짓으로 흰머리 노신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렴, 저분이 차이콥스키 씨야.” 어깨가 벌어지고 뚱뚱한 그의 모습은 평생 스트라빈스키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 작곡가를 러시아 5인조 작곡가 이상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다. 차이콥스키는 막 자신의 ‘비창’ 교향곡 초연을 지휘한 뒤였다. 2주쯤 지나 스트라빈스키는 어머니를 따라 콜레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차이콥스키를 추모하는 음악회에 갔다.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드 4세에게 답장을 쓰는 자포로제 코사크인

일랴 레핀은 걸작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드 4세에게 답장을 쓰는 자포로제 코사크인>이라는 그림의 모델 가운데 하나로 표도르 스트라빈스키를 세웠다. 나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옛 부르크 극장> 속에서 새끼손톱만 한 브람스의 얼굴을 찾는 것보다, 이 큰 그림(203 cm × 358 cm)에서 표도르가 누구인지 가늠하는 것이 더 어려웠지만, 그가 이 그림 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코자크’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돈 코자크 합창단이다. 세르게이 자로프가 이끄는 남성 합창단은 레드 아미 코러스와 더불어 독보적인 러시아 합창을 들려주었다. 코사크 군대 장교 자로프가 전우들과 만든 이 앙상블은 카라얀이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을 녹음할 때 초대받았을 만큼 대단했다. 이들이 돈 강 유역에 살았다고 해서 ‘돈 코사크’인 것이다. 

관군의 미인계에 빠져 붙잡혀 처형된 돈 코사크의 우두머리 스텐카 라진

러시아 민요를 좋아하는 사람은 돈 코사크 합창단이 부르는 ‘스텐카 라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역시 러시아 차르에 대항해 일어섰던 코사크 지도자를 기리는 노래이다. 스텐카 라진만큼 유명한 코사크가 이반 마제파이다. 귀부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현행범으로 잡힌 마제파를 남편인 귀족이 발가벗긴 채로 말에 묶어 쫓아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마제파가 코사크인들에게 발견되어 그들의 지도자가 되는 이야기는 바이런이 시로 썼고, 그 시를 읽은 제리코와 들라크루아가 그림으로 그렸다.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마제파. 말에 묶여 추방된다

마지막으로 리스트가 교향시로 작곡해 마제파라는 이름을 기렸다. 

초월기교 연습곡 제4번을 교향시로 편곡했다

러시아의 푸시킨이 쓴 서사시 《폴타바》는 마제파가 이끄는 우크라이나 코사크가 스웨덴과 연합해 표트르 대제에 맞섰던 대북방 전쟁 시기를 그린다. 차이콥스키가 이 이야기를 가지고 오페라 <마제파>를 썼다.

차이콥스키의 <마제파>. 이 분의 곡은 잘 안 알려진 것 또한 모두 좋다. 소련 말을 배웠어야 하는데..
레핀의 그림 가운데 노란 모자가 표도르 스트라빈스키. 옆은 피카소가 그린 그의 아들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마지막으로 기억할 코사크가 ‘타라스 불바Taras Bulba’이다. 러시아 문호 니콜라이 고골이 쓴 《타라스 불바》는 우리에게는 ‘대장 부리바’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졌다. 율 브리너와 토니 커티스가 주연한 영화도 생생하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사용되는 배경이 바로 레핀의 그림이고, 국내에 번역된 소설의 표지에도 레핀의 그림이 쓰였다. 

아 또 보고 싶다! 무모한 벼랑 넘기

자포로지 코사크들이 튀르크 술탄의 위협 편지를 받고는, 콧웃음을 치며 답장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아버지 스트라빈스키는 주인공 타라스 불바의 뒤편에 노란 모자를 쓴 코사크로 나온다. 썩 호탕해 보이지는 않지만 아들의 모습이 녹아 있다.


레핀과 아버지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그의 친구 림스키코프사코프는 옛 시대에 속한 인물들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에게 음악을 금했던 아버지와, 결국 음악을 가르쳤지만 후계자로 삼지 않은 아버지 친구 림스키코프사코프 대신, 차이콥스키라는 그들의 라이벌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5인조 작곡가를 모두 그린 레핀이 차이콥스키의 초상화만 남기지 않은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스트라빈스키 또한 옛 사람인 레핀의 모델이 될 기회가 없었지만 그럴 이유도 없었다. 대신에 그는 피카소의 모델이 되었다. 아니 모델이 아니라 주인공이었다. 현대 미술 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유명한 논문 「아방가르드와 키치」에서, 러시아 농부가 레핀의 전쟁 그림에서 받는 느낌과 수준 높은 감식가가 피카소의 예술에서 받는 느낌을 비교한 것이 나의 무릎을 치게 했다.

레핀의 그림을 쓴 <타라스 불바>의 표지와 그린버그의 논문을 담은 귀한 평론선(절판)

그러면 아버지 스트라빈스키 표도르가 <루슬란과 류드밀라>에서 열연한 파를라프는 누구일까? 이 뚱뚱한 주정뱅이 배역은 어쩌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친구였던 또 한 사람의 5인조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를 떠올리게 한다.

레핀이 그린 만년의 무소륵스키

파를라프는 주인공 루슬란의 연적이다. 사실 연적이라기엔 서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원래 류드밀라와 정혼한 쪽이 루슬란이었을뿐더러, 파를라프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어 물러나려다 마녀의 부추김으로 다시 류드밀라에게 흑심을 품는다. 결국 마지막에 검은 속을 들키고 도망가는 악역이다. 그러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 때문에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러시아 밖에서는 유명한 서곡 외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지만, 글린카의 위대한 작품은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없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가운데 ‘카탈로그의 노래’를 따른 ‘파를라프의 론도’는 종종 녹음되는 유머러스한 노래이다. 

 표도르 스트라빈스키와 표도르 샬리아핀을 잇는 일다르 압드라자코프가 부른다

후슬리는 <루슬란과 루드밀라>의 그 유명한 서곡이 끝나고 바로 나온다. 음유시인이 앞으로 닥칠 난관에 대해 예언하는 장면에서 후슬리를 타는데, 실제로는 하프가 대신 반주해준다. 후슬리 연주까지 할 수 있는 가수가 얼마나 있겠는가? 똑같은 이치로 침발롬이 아무리 이상적인 소리를 낸다 해도 그 악기로만 연주해야 한다면 들을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라츠의 침발롬 연주에 반해 <결혼>을 그 악기를 중심으로 쓰려했던 스트라빈스키는 결국 좀 더 보편적인 편성으로 뜻을 굽힌다. 그러나 바꾼 편성 역시 쉽지 않다. 넉 대의 피아노와 타악기가 동원되는 것이다. <결혼>이 태동한 막심 제네바 지점에서 H와 근사한 저녁을 먹으려던 내 계획은 일단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스트라빈스키 최고의 걸작을 독자에게 소개할 기회를 다시 며칠 뒤 브베의 호숫가로 넘긴다.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철수했다

H는 나를 먼저 마카롱 가게 라 뒤레로 이끈다. 뜻밖의 행선지에 좀 당황했지만, 이내 이 환상적인 가게에 어떤 음악이 어울릴지 생각한다. 과자로 만든 집이 나오는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도 떠오르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이곳에는 말 그대로 <환상적인 가게La Boutique fantasque>가 더 제격이다.

로시니/레스피기의 <환상적인 가게>. 대략 이런 것이다

<환상적인 가게>는 로시니가 만년에 모은 <노년의 과오>라는 음악집을 오토리노 레스피기가 관현악 편곡한 것이다. 야수파 화가 앙드레 드렝이 선배 툴루즈 로트렉풍으로 디자인한 무대는 마카롱이 아닌 장난감을 파는 가게이다. 그 내용은 안데르센의 <변함없는 양철 병정>과 비슷하다. 처음부터 다리가 하나뿐인 양철 병정 인형이 발레리나를 사랑하는 동화는 디즈니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입혀 만화로 만들었다. 눈과 혀를 즐겁게 한 가게를 나오니 밖은 완전히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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