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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Mar 26. 2019

제네바의 종소리는 누구를 위해 울리나

빅토리아 홀과 생 피에르 대성당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 스위스(라틴어로 헬베티아이다). 초콜릿과 하이디의 나라. 동화 같은 스위스에서 역사상 많은 위인이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그들이 알프스에서 받은 값진 영향과 도움을 살펴보기 위해 2017년 연말연시 열흘 동안의 꿈속으로 돌아간다. 종소리가 멀리멀리 퍼진다.


제네바의 빅토리아 홀과 제네바 극장은 우리가 머무는 동안 관심 가는 공연이 없었다. 빅토리아 홀도 내가 자주 방송했던 곳이다. 19세기 말 제네바 주재 영국 대사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헌정한 이 홀을 도시에 기부했다. 화재로 파괴되어 다시 지었지만 그 이름 그대로인 이 홀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이 아랍과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모아 만든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하지 않았던가! 아니 그보다 먼저 1995년 게오르크 숄티가 세계 평화 오케스트라(World Orchestra For Peace)를 이끌고 이 홀에서 연주했던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의 마지막 합창을 듣고 싶다. ‘아름다운 아내를 얻은 자들은 환호하라Wer ein holdes Weib errungen!’

<피델리오>는 못 찾았지만, 한날 연주한 프리드리히 실러의 희곡 <빌헬름 텔>에 붙인 로시니의 오페라 서곡은 있다. 스위스 건국의 영웅 이야기이다. 외로운 보안관

빅토리아 홀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L'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의 안방이다. 스트라빈스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친구 가운데 하나인 에르네스트 앙세르메(Ernest Ansermet)가 창단한 스위스 불어권 라디오 산하 오케스트라이다. 제네바에는 많은 국제기구가 상주하고 그 가운데에는 유럽방송연맹(EBU)도 있다. 내가 지난 11년 동안 진행한 <FM실황음악>의 음원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EBU이다.


마레크 야놉스키가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필하모닉과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연이어 지휘했음은 우연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두 악단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야놉스키 뒤로 몬테카를로에는 야콥 크라이츠베르크가 왔다가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지금은 일본 지휘자 가주키 야마다가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에 다른 나라 여왕의 이름을 붙인 음악당을 짓는다면 어찌 될까?

크라이츠베르크는 더 유명한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의 동생이다. 형에게 가리기 싫어서 어머니의 성을 쓴 그는 51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가 몬테카를로 필하모닉과 마지막으로 가진 연주를 방송했고, 그가 예정대로 서지 못했던 공연을 네메 예르비가 대신 지휘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네메 예르비가 바로 그 무렵 야놉스키의 뒤를 이어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2012년 구스타프 말러 <대지의 노래>. 바리톤은 토마스 햄슨, 테너는 캔디드 아니 폴 그로브스

예르비는 스위스 로망드 취임 연주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과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감동적으로 지휘했다. 언급한 지휘자 모두가 스트라빈스키 전문가들이다. 특히 크라이츠베르크는 몬테카를로 필하모닉 취임 직후 악단 자체 음반 레이블로 스트라빈스키의 대표 발레 네 곡의 실황 음반을 내놓을 정도로 이 작곡가에 애정을 가졌다. 그의 때 이른 죽음이 아쉽다. 


다음날 아침 다시 제네바의 러시아 정교회를 찾았다. 스위스답게 먼저 하나 없이 깨끗한 거리에 사람도 하나 없는 12월 30일이다. 공중도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것이 바로 유교에서 말하는 신독(愼獨)이자 군자(君子)의 자세이지 않은가. 남이 보지 않아도 몸가짐을 바로 하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다.

장 칼뱅이 종교개혁의 열변을 토했던 학교의 뜰

파리나 니스의 정교회보다 작았지만, 새하얀 외관에 정말 금박 입힌 양파 지붕의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너무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문도 닫혀 있었지만 주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아침이었다.

가까이에 제네바의 명물인 ‘종교개혁의 벽Mur des réformateurs’이 있다. 가톨릭의 부조리에 맞서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은 네 사람이 부조되어 있다. 장 칼뱅의 탄생 400주년과 그가 가르쳤던 제네바 대학 설립 350주년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처음 개혁을 시작했지만 가톨릭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마르틴 루터에 비해 칼뱅의 개혁 수위는 훨씬 높았다. 그 본산이 이곳 제네바였다.

개신교의 사천왕 같다

왼쪽부터 칼뱅에게 제네바행을 강권한 선구자 윌리엄 파렐, 그리고 칼뱅, 칼뱅에 이어 제네바 대학을 이끈 테오도르 베자, 마지막으로 칼뱅에게 배운 장로교 교리를 고국 스코틀랜드에 전파한 존 녹스의 상이 근엄하게 서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정교회에 나간 것은 국외 생활을 하면서부터이다. 오늘날에도 유럽 사람들이 교회에 갖는 생각은 자란 환경에 따라 복잡하고 제각각이다. 스트라빈스키도 정교회에서 영향을 받은 음악과 가톨릭 미사곡을 썼지만, 이것은 그가 원시 이교도의 제식을 모델로 만든 <봄의 제전>처럼 관람을 위한 것이지 실제 예배를 위한 것이거나 신앙심을 고취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네 교회 성인이 그를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내가 본 <봄의 제전> 가운데 가장 참신한 마크 모리스 버전

그러나 인근 성 피에르 대성당(Cathédrale Saint-Pierre de Genève) 또한 내력이 복잡하다. 원래 가톨릭 주교좌성당이던 것을 칼뱅이 장악하면서 개신교 교회가 된 것이다. 교회 안에는 칼뱅이 앉았던 의자가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약 700년에 걸쳐 짓고 확장한 탓에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 그리스 신전을 본뜬 신고전주의 양식이 공존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이른바 짬뽕 성당

앞뒤 옆면이 동시에 보이는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이나, 익숙한 고전을 낯설게 보이게 하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 다를 바가 없다. 마치 독일 관념주의 화가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의 그림 속에나 나올 법한 희한한 모습니다.

<강변의 고딕 대성당>. 구름 저편에 은하철도라도 놓아야 할 듯한 풍경

성 피에르 대성당의 종루에서는 제네바가 한눈에 보여 많은 사람이 오른다.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야 하기에 멀리 제네바의 명물인 ‘제트 분수Jet d'Eau’를 제대로 보는 것이 목적이라면 궂은 날씨에는 굳이 권하지 않겠다. 제트 분수라는 것이 사실 별 것 아니고, 호수면에서 물을 수직 분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상암동 앞 한강에서도 볼 수 있지 않던가?

한강과 다른 점은 저 물이 마셔도 안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루를 오른 의미는 작지 않았다. 더욱이 시간이 맞아 타종되는 순간이라면 더욱 장관일 것이다. 성 피에르 성당의 종은 몇 층에 걸쳐 겹겹이 포진해 있다. 아마도 이 교회에 더 관심이 있었을 사람은 스트라빈스키보다 그의 선배인 라흐마니노프였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스트라빈스키보다 훨씬 종교적이다. 많은 사람이 그의 피아노 음악에만 열광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종교 합창음악이다. 더욱이 피아노곡조차 종소리를 형상화한 것이 많다.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첫 타종을 들어보라. 


청중도 그의 협주곡 연주를 듣고 나면 언제나 앙코르로 “C샤프 마이너!”를 외쳤다. 종소리에 중독된 것이다. 

개릭 올슨 영감님. 거의 "닥치고 들어" 수준이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부활제Pâques’의 종소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그리고 이 음반이 제일 좋다. 도노호와 로스코

라흐마니노프 스스로 에드거 앨런 포의 시에 붙인 합창 교향곡 ‘종’을 얼마나 뿌듯해했던가!

역시 전곡을 들어야 할 것이나... 참는다

스트라빈스키 또한 발레 <결혼>를 종소리로 마무리한다. 넉 대의 피아노가 빚어내는 신비로운 종소리는 ‘틴티나불룸tintinnabulum’이라는, 종소리를 묘사한 라틴어에 가장 잘 어울린다. 제네바 종루의 시보를 들으며 내가 떠올린 곡들이다.

웽그렁 뎅그렁

그러나 진짜 제네바 종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은 리스트의 <순례의 해 제1년 스위스Années de pèlerinage I, S. 160 "Suisse"> 가운데 ‘제네바의 종Les cloches de Genève’을 들어야 한다. 이것이 오리지널이다. 이제 종루를 내려가도 좋다.

스위스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피에몬테시(Francesco Piemontesi)의 연주면 더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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