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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Mar 27. 2019

최전선만 고집하는 베자르 발레단

상해에서 미리 본 <마술피리>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 스위스(라틴어로 헬베티아이다). 초콜릿과 하이디의 나라. 동화 같은 스위스에서 역사상 많은 위인이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그들이 알프스에서 받은 값진 영향과 도움을 살펴보기 위해 2017년 연말연시 열흘 동안의 꿈속으로 돌아간다. 로잔의 보석 베자르 발레단을 상하이에서 미리 만났다.


로잔은 제네바에서 지척이었지만, 점심 먹고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고 나오니 흐린 날씨 탓에 벌써 어둠침침하다. 이제 내가 가장 먼저 어디로 갈지는 잘 알고 계시리라. 러시아 정교회 가까이에 로잔 음악의 랜드마크가 모두 있다. 오페라 발레 극장, 음악원, 메트로폴과 같은 곳이다.


로잔의 정교회는 뜻밖에 소박했다. 오히려 곁에 붙은 유대교당 시나고그가 더욱 돋보였다. 정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러시아계이거나 다른 동유럽 정교회 신자들일 것이다.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도 각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부유하지 않은 나라이고 이국 땅에 온 사람들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세상 이치에 밝은 경우가 많다. 세계 속의 이방인인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서로 마주했지만 형편이 다른 회당, 그러나 그들이 모시는 신은 서로 같지 않은가? 러시아 태생의 스트라빈스키와 유대인인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만년에 같은 캘리포니아 비벌리힐스에 살면서 친분을 맺지 않았던 생각이 났다. 나란한 로잔 정교회와 시나고그의 며칠 전 크리스마스 풍경은 어떠했을까? 또는 지난 유월절 모습은? 같은 시간 서울 조계종에는 올해도 “아기 예수 오신 날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을 것이다.

로잔의 러시아 정교회
바로 붙은 유대교당 시나고그

로잔 오페라 극장에 도착했을 때는 5시를 갓 넘겼지만 이미 밤이 내려앉았다. 어쩌면 이곳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될 뻔했다. 공연을 보았더라면 말이다. 모리스 베자르가 창단한 발레단이 이곳에 있다. 프랑스 마르세유 태생의 안무가 베자르는 조지 발란신에 이어 20세기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1960년에 브뤼셀에서 20세기 발레단(Ballet du XXe Siècle)을 창단했고, 1987년에 거점을 이곳 로잔으로 옮겨 아예 자신의 이름을 딴 베자르 발레 로잔(Béjart Ballet Lausanne, BBL)으로 재출범했다.


베자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또는 내가 파리 개선문에서 떠올랐던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를 모르는 사람도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라벨의 <볼레로>에 맞춘 무용 장면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붉은색 원형 제단 위에 독무를 추는 주인공이 있고, 그 주위에서 제식을 올리는 군무가 펼쳐진다. 나는 중학생들에게 이 음악을 보여준 적이 있다. 다 보고 난 한 학생이 묻는다. “무슨 내용이에요?”

무슨 내용인가? 무내용이다!

물론 나는 “라벨이 쓴 음악이 원제목은 ‘판당고’였고, 특정한 줄거리가 없는 ‘음악을 위한 음악’이며 ‘리듬의 향연’이다” 따위의 말로 치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운동장에 운동복 입은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고 나오는 동안 ‘삐’하는 소음을 틀어놓고 동양의 공(空) 사상을 운운했던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싶지는 않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시작 전부터 소문이 무성했던 굴렁쇠 이벤트를 직접 목격하고 말할 수없이 실망했고, 아직도 당시 TV를 보면 허탈했던 기분이 생생하다.

이 친구는 결국 어른이 되어 4륜차 광고에 나왔다
이 회사는 소치 올림픽 때도 기발한 마케팅을 했다. 현대차가 올림픽 공식 스폰서인데...
하지만 굴렁쇠는 이런 데 쓰는 것이다. 하차투리안의 스파르타쿠스와 사생결투 하는 소년

내가 기억하기로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에서 가장 쿨했던 것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고싸움과, 김소희 명인의 혼이 담긴 살풀이였다.


<볼레로>의 일부가 아니라 15분가량 되는 음악의 전체를 듣고 그 작은북 소리가 심장의 박동과 함께 되울림 하는 장관을 직접 느끼기 전에는 어떤 미사여구도 허울일 뿐이다. 내 조카가 세 살 때 <백조의 호수>를 보고는 충격에 멍하니 서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아무리 <백조의 호수>를 보여주어도 <겨울 왕국>을 못 당한다. 그러나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 차이콥스키와 스트라빈스키를 통해 어떻게 보여지는지 조카도 알 날이 올 것이다.


내가 머무는 연말에 로잔에는 발레 공연이 없었다. 그러나 계획을 짜던 지난가을, 베자르 발레단이 중국에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바로 상하이 예술제 홈페이지에 들어가 베자르 발레단의 모차르트 <마술피리>를 예매하려 했다. 그런데 어렵사리 찾은 예매 사이트에서는 휴대전화 인증을 거쳐야 표를 살 수 있었다. 상하이까지 가서 표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나는 공연 관계자들에게 이메일을 썼다. 이러저러해서 꼭 보고 싶으니 프레스 티켓을 주면 더 좋고 안 되면 구입하고 싶다고. 다행히 베자르 발레단에서 티켓을 주겠다는 답을 받았고, 뜻밖에 상하이 일정이 추가되었다.


사실 베자르 발레단 하나뿐이 아니었다. 스트라빈스키는 프랑스 시절 한동안을 지중해가 아닌 대서양 연안의 비아리츠에 살았다. 니스와 모나코가 있는 코트다쥐르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비스케만의 보르도와 비아리츠, 스페인의 빌바오에서 순례자의 행렬 덕분에 유명해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그리고 포르투갈의 포르토와 리스본에 이르는 대서양 연안 또한 온화한 기온과 멋진 풍광으로 휴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제정 말기의 흥청대는 러시아 귀족들이 이곳에 우글거렸던 것이 스트라빈스키를 비아리츠로 인도한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와 교제하기 전, 샤넬 또한 비아리츠에서 만난 러시아 황족 드미트리와 연인 사이였다.

비아리츠 말라댕 발레단의 영상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유명한 빌바오가 인근이지만, 비아리츠는 잘 알려진 곳은 아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의 황후인 외제니가 이곳에 머문 뒤로 유럽 왕실의 휴양지로 널리 알려졌다. 황제가 아내를 위해 지은 오텔 드 팔레(팰리스 호텔)의 고객으로 빅토리아 여왕도 빠지지 않는다. 나에게 비아리츠가 중요한 까닭은 스트라빈스키가 머물렀다는 것과 티에리 말랑댕의 발레단 때문이었다. 아마도 말랑댕 발레단의 모델이 베자르 발레일 것이다. 근래 나온 몇 편의 DVD는 나로 하여금 이 발레단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러나 길지 않은 여정 탓에 비아리츠까지 가는 것은 부담스러웠고, 기껏 가 봐야 공연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 또한 베자르 발레단과 같은 시기에 상하이에 온다는 것이다.


2017년 10월의 어느 토요일, 나는 뿌연 스모그에 덮인 상하이에 도착했다. 대개의 관광객이 그렇듯이 푸동 공항에서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열차를 기다렸던 시간보다 더 빨리 시내에 도착했다. 인민공원 옆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말랑댕 발레단의 <미녀와 야수>를 보기 위해 마제스틱 극장(美琪大戏院)으로 갔다.

막 찍어도 그럴 듯
진짜 경극을 해야 할 것 같다

상하이에서 연수했던 K형이 “거긴 경극을 주로 하는 극장인데 궁금하네”라며 좀 의아해했다. 온통 아름다운 등불로 야경을 뽐내는 상하이 중심가를 지나자 옛 단성사 같은 극장이 나타났다. 정말 경극에 어울리는 모습이었지만, 극장 안팎이 매우 붐빈다. 서울에서 온 특이한 애호가를 말랑댕 발레단 홍보 담당 로랑스 갈레가 맞았다. 다음에 정식으로 비아리츠에서 보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해준 친절한 프랑스 아가씨였다.


18세기 잔 마리 르프랭스 드 보몽 여사가 전하는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스트라빈스키의 친구 장 콕토의 영화(1946)로 널리 알려졌다. 콕토의 수족인 장 마레가 주연했고, 프랑스 6인조 작곡가 조르주 오리크가 음악을 맡았다. 1991년에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나오면서 원작과 콕토의 영화는 빛이 바랬는데, 1994년 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콕토의 흑백 영상에 음악을 입히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러고는 티에리 말랑댕이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가지고 발레 <미녀와 야수>를 안무한 것이다.

미녀의 집안이 부유하던 시절을 그린 첫 장면은 <예브게니 오네긴>의 무도회로 꾸며졌다. 이윽고 미녀 아버지의 상선이 침몰하여 곤경에 처하는 부분에서 ‘비창’의 첫 악장이 흐른다. 야수의 등장에 나오는 곡은 차이콥스키 작품 가운데 연주가 드문 환상서곡 <햄릿>. 야수가 햄릿과 같은 이중 자아를 지녔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교향곡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5번의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가 야수의 내면을 파고든다. 미녀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자 가족이 교향곡 5번의 ‘왈츠’ 악장으로 맞는다. 야수는 ‘비창’의 마지막 악장과 함께 홀로 죽어가지만 돌아온 미녀의 사랑이 그를 살려내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한다.

미녀와 야수의 하이라이트

2015년 베르사유 왕실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한 이래 말랑댕 발레단의 명성을 더욱 높인 공연이다. 무대 배경은 간결하다는 말도 과할 정도로 검은색 막과 황금색 덮개 그리고 몇몇 소품이 전부이다. 군무 의상도 금색 오버코트로 멋을 냈지만, 말랑댕 발레단이 다른 공연 때도 늘 입는 것을 재활용했다. 금색 의상은 검은색 배경과 어우러질 때 더욱 돋보인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그러나 디즈니 캐릭터와 노래에 익숙한 중국 관객에게 프랑스 오리지널 스토리와 차이콥스키의 음악 그리고 알 수 없는 몸짓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공연이 시작하고도 계속해서 늑장 관객이 입장했고, 더 이상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가 싶은 때부터 반대로 빠져나가는 행렬이 시작되었다.


차이콥스키의 발레가 아닌 교향악을 안무한 선례는 많다. 조지 발란신이 <보석들>의 ‘다이아몬드’에서 교향곡 3번을 안무했고, 마츠 에크와 스웨덴 왕립 발레는 <만프레트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 1번 따위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구성했다. 에크의 무대는 근래에 본 것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시도였다. 발란신이나 에크는 당대 제일의 안무가로 꼽혔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비아리츠나 말랑댕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이들을 지구 반대편으로 불러와 이런 무대를 마련한 상하이 아트 페스티벌의 안목이 부러웠다.


이튿날 오전에는 상하이 박물관을 갔다. 베이징, 시안의 박물관과 더불어 중국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보물창고이다. 나는 서울 사대문 안 궁궐과 용산의 국립박물관에 때때로 들러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자 애쓴다. 그러나 중국 문화의 압도적인 장관을 보면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우리 건축과 문화가 아무리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절품이라고 해도 중국의 스케일 앞에서는 변방의 양식일 뿐이다. 우리 문화유산은 그것이 왜 훌륭한가 설명을 들어야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중국 것은 그냥 보면 보물임을 알 수 있다. 내가 너무 천박한가?

가령 세종대왕이 박연에게 정비하라 일렀던 국악기 편종이 중국에서는 기원전 7세기에 이미 사용되었다. 이 악기로 라흐마니노프의 종소리를 연주할 수 있을까? 갖은 스토리를 채색한 본차이나에서는 안데르센의 <꾀꼬리> 이야기와 거기에 붙인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뮤직박스처럼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그와 대조적으로 마치 미니멀리스트 마크 로스코의 그림처럼 깊은 색감이 대조를 주는 물병이 탄복을 불러왔다. 핏빛 바탕과 서늘한 푸른 줄에 어울리는 음악은 차이콥스키가 아닐까? 천자도 아닌 지방 호족의 거실에 놓였던 것이라는 가구들은 빈 레오폴트 박물관의 유겐트슈틸 전시관이나 파리 막심 박물관 아르누보 인테리어의 원형이었다. 명나라 항아리에서 날아온 꾀꼬리가 청나라 병풍 속으로 잘 들어갔을까? 

마크 로스코의 <No. 61 (녹과 청색)>과 비교한 항아리
고려자기

이에 비해 단순소박함과 실용성이라는 미덕을 강조한 고려청자는, 정말 깊은 동정심(“절대 비하가 아니다”)을 갖지 않고는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오디오 가이드의 마지막 이야기가 화려한 중국 보물의 가치를 평가해 준다. “결국 이런 사치 때문에 매번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저녁에 공연을 보려면 오후에는 좀 쉬어야 했다. 다른 곳을 더 가기보다는 박물관에서 좋았던 유물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베자르 발레단의 공연은 상하이 컬처스퀘어(上海文化广场)에서 열렸다. 전날 마제스틱 극장이 화려한 주변 거리에 비해 좀 낡은 곳이었다면, 이번에는 반대였다. 극장 앞길은 남자도 혼자 걷는 것이 꺼려질 만큼 으슥했지만, 대조적으로 극장 안에 들어서자 <생명의 근원>이라는 제목의 화려한 벽화가 입을 떡 벌리게 했다.

밖에서 보기보다 훨씬 큰 특이한 건물이다

물론 더욱 감동적인 것은 베자르 발레였다. 사실 티켓 요청 이메일을 각각이 아니라 동보로 보냈는데, 베자르 발레단으로서는 자신들을 비아리츠 발레단과 나란히 언급한 데서 좀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로잔과 비아리츠는 경제력이나 이름값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비아리츠의 매력이 작은 지방 도시에서 기대하기 힘든 예술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라면, 베자르 발레는 현대 무용의 바로미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날 <미녀와 야수>도 좋았지만 베자르의 <마술피리>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카를 뵘이 지휘한 모차르트의 서곡이 흘러나오자마자 나는 오열할 것만 같았다. 오래전 처음 <마술피리>를 들었을 때부터 상하이에 오기까지 이 곡과 얽힌 사연이 한꺼번에 솟구쳐 올랐기 때문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실은 마차가 극장을 빠져나갈 때 새잡이 파파게노의 노래가 시작된다. 진정 놀라운 영상과 음악의 동기화이다.


모리스 베자르의 안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제식ritual’이다. 제식의 3부작을 이루는 작품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다. 다른 두 작품은 영상물로 익히 보아 알던 차이고 <마술피리>는 이번에 처음 보는 것이라 더욱 설레었다.


상하이 공연에는 발레단의 주역이 모두 출연했다. 쥘리엥 파브루와 엘리사베트 로스는 어느덧 선임이다. 현인 자라스트로와 반대편인 밤의 여왕을 맡았다. 베자르는 당연히 악의 몰락 쪽이 아니라 두 세계를 화해시키는 쪽으로 극을 몰고 간다. 그 열쇠가 되는 선남선녀 파미나와 타미노는 발레단의 스타플레이어인 카테리나 샬키나와 가브리엘 아레나스 루이스가 추었다. 마지막으로 감초인 새잡이 파파게노 역할은 일본 무용수 마사요시 오누키에게 돌아갔다. 호텔로 돌아와 바로 신문사에 리뷰를 보냈고, 발레단에 다시 번역을 보내 고마움을 전했다.

파미나와 자라스트로 ⓒ BBL

지난 20일 시작한 중국 상하이 예술제는 초반 유럽 발레단이 눈길을 끌었다. 우선 비아리츠 말랑댕 발레단. 프랑스 대서양 연안의 휴양 도시 비아리츠는 별로 내세울 자랑이 없는 곳이다. 기껏해야 나폴레옹 3세의 황후 외제니의 별장이 있고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가 수년을 머문 곳 정도랄까. 무명 소도시를 주목하게 만든 이가 안무가 티에리 말랑댕이다. 적은 인원과 간결한 무대 장식으로도 늘 강렬한 인상을 주기로 이름났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으로 안무한 <미녀와 야수>라니!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의 2막 간주곡과 왈츠로 시작한 춤은 교향곡 5번과 6번 ‘비창’의 주요 악장을 관통했다. 할리우드 만화와 같은 줄거리를 따라가려면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계체조처럼 절도 있는 솔로, 가사 없는 이중창인 듀오, 역동적 짜임새로 된 일동의 춤이 무아지경을 불러왔다. 차이콥스키가 <백조의 호수> 초연 때 들었던 비판, 곧 “춤추기에 너무 교향곡 같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랑댕은 교향곡을 춤춰 보였다.


다음 날은 그보다 널리 알려진 스위스 로잔 베자르 발레단이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 피리>를 무대에 올렸다. 발레단 창단 30주년과 베자르 타계 10주기를 기려 고인이 1981년에 만든 안무를 재공연 한 것이다. 대표작인 <볼레로>, <봄의 제전>, <합창 교향곡>에서 보듯이 베자르는 ‘춤은 곧 제의(祭儀)’라는 점을 강조한다. 

<마술 피리>는 선남선녀의 통과의례를 형상화한 ‘노래 연극’(Singspiel)이라는 점에서 베자르의 뜻과 들어맞는다.

파파게노와 세 소년, 세 여인 ⓒ BBL

모차르트가 관여하지 않았으되 음악으론 이미 완벽하게 주문해 놓은 율동이 베자르를 통해 완성됐다. 말로 다하지 못할 전개는 변사를 겸한 메신저가 맡아 제사를 주관했다.


카를 뵘이 지휘한 전설적 녹음이 눈앞에 펼쳐졌다. 파파게노 역의 일본인 무용수 마사요시 오누키는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익살로 날개를 달았고, 파미나 역의 카테리나 샬키나는 오래전 이 발레단의 주역이던 수전 패럴 못잖게 시선을 사로잡았다. 로버타 페터스가 부르고 엘리사베트 로스가 춘 밤의 여왕은 백설공주의 계모처럼 서늘했고, 또 쥘리앙 파브루의 자라스트로는 발레단의 스타였으나 에이즈로 요절한 조르주 동의 힘찬 몸짓을 떠오르게 했다.

꼭 영상물로 발매되길 기대한다

간결한 단색 의상과 조명, 그리고 기하학적 동선은 모차르트가 뜻했던 프리메이슨의 모험을 상징했다. 동화와 제의를 결합하려는 베자르 미학은 인간과 신의 합일을 상징하는 피날레로 완성되었다. 스트라빈스키가 간파했듯 춤과 음악은 별개가 아니다. 단, 둘이 만날 때 어느 한쪽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 음악과 춤이 서로 상찬한 두 무대가 상하이 밤길을 아름답게 했다.


사실 베자르가 <마술피리>에 변사를 등장시킨 것은 스트라빈스키의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이다. 그의 많은 무용극이 이렇게 내레이터가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앞서 살펴본 <오이디푸스 왕>과 <페르세포네>이다. 그리고 이런 ‘극적인 내레이션’의 역사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는데 바로 이곳 스위스의 아들 장 자크 루소가 <피그말리온>으로 처음 시도했다. 이런 양식을 ‘멜로드라마’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대개 남녀 간의 뻔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극으로 의미가 축소되었지만, 사실 멜로드라마는 상당히 폭넓은 전개 양상을 보인다.


베토벤의 <피델리오> 가운데 죄수의 무덤 파는 장면과 베버가 쓴 <마탄의 사수> 가운데 ‘늑대 계곡’ 장면을 본격적인 멜로드라마의 등장으로 꼽는다. 19세기 들어 극부수음악, 또는 음악극의 만개로 연극과 음악의 결합은 보편적인 것이 된다. 어쩌면 그런 보편성이 오늘날 멜로드라마라는 용어가 갖는 의미의 핵심이다. ‘당연하다’는 것이다.


앙드레 지드가 대본을 쓴 <페르세포네>는 1933년 스트라빈스키의 나이 51세에 작곡되었다. 그가 유럽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다. 협력 과정에서 각자의 말과 음악에 대한 자존심 싸움으로 지드와 스트라빈스키는 등지게 된다.

페르세포네 전곡 영어 자막

유튜브에서 스트라빈스키의 <페르세포네>를 검색하면 제일 위에 가장 중요한 공연 전체가 올라온다.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 극장의 공연은 피터 셀라스가 연출하고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지휘했다. 셀라스가 에사 페카 살로넨과 작업한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보았듯이 스트라빈스키는 이 분야의 기획자들에게 최고로 매력적인 블루오션이다. 셀라스는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둔 <페르세포네>에 캄보디아 전통 무용을 더한다. 저승의 신에게 딸을 빼앗긴 엄마의 노래에 성악가와 똑같은 옷을 입은 무용수의 몸짓을 더해 슬픔을 배가하는 것이다. 


동남아의 연극 양식은 점점 더 서양 극장에 파고든다. 스트라빈스키의 <나이팅게일>을 수상 연극으로 표현한 엑상프로방스 축제가 대표적이다. 베트남을 비롯한 이 지역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가까워졌으리라.

무대 기술의 끝판왕

그리고 마침내 셀라스와 경쟁하는 <페르세포네>가 2018년 봄 미국 오리건과 시애틀에서 상연되었다. 마이클 커리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무대 연출가 가운데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사람이다. 1967년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커리는 불과 열아홉 살 때 오리건에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 연구소를 연 천재이다. 현재 태양의 서커스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왕립극장, 디즈니 영화사와 테마파크가 그에게 아이디어를 요청한다. 태양의 서커스의 로베르 르파주와 런던 왕립극장의 니컬러스 하이트너, 메트나 브로드웨이가 무대인 줄리 테이머 감독이 커리의 옷을 입고 자신의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언급한 감독들이 댜길레프라면 커리는 브누아나 피카소에 해당한다. 커리의 무기는 인형극이다. 그는 불과 25세에 테이머가 일본에서 가부키 스타일로 연출한 <오이디푸스 왕>의 가면을 디자인했다. 커리는 오래전 모믹스의 모제스 펜들턴이 레이크시드 동계올림픽을 연출했던 것처럼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디자인했다. 테이머와의 협력도 계속되어 뮤지컬 <라이언 킹>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마술피리>를 내놓았다. 디즈니는 커리에게 <네모를 찾아서>와 <겨울왕국>의 뮤지컬과 테마파크 연출을 맡겼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백호 인형이 나타났을 때 나는 바로 커리의 솜씨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종이호랑이며 인면조 따위 모두 수입 캐릭터

그런 커리가 자신의 안방인 오리건과 시애틀의 음악가들을 위해 최신 무대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커리의 <페르세포네>는 셀라스처럼 페르세포네를 변사와 가면 쓴 무용수, 이렇게 두 자아로 나누었다. 크레인에 올라탄 무용수가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가운데 이번에도 변사인 폴린 슈비에(셀라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소개했던 바로 그 미모의 프랑스 배우이다)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 앙드레 지드의 말을 화해시키고자 애쓴다. 아직 영상물로는 유튜브 예고편만을 볼 수 있지만, 커리가 공연 예술계에 가진 영향력으로 볼 때 이 드물게 공연되는 <페르세포네>가 미서부 일회 상연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커리는 <오이디푸스 왕>과 <페르세포네> 말고도 중요한 스트라빈스키 작업을 더 남겼다. 디즈니 <판타지아 2000>의 대미를 장식하는 ‘불새'에서 물의 요정 캐릭터를 만든 사람도, 또 앞서 본 엑상 프로방스의 수상 오페라 <나이팅게일> 인형을 디자인한 사람도 바로 커리이다.

<판타지아 2> 가운데 <불새>에 나오는 물의 요정
스트라빈스키의 <나이팅게일> 수상 공연. 엑상프로방스 축제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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