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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Apr 06. 2019

80분간의 로잔 일주

장 콕토와 샤를 페르디낭 라뮈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 스위스(라틴어로 헬베티아이다). 초콜릿과 하이디의 나라. 동화 같은 스위스에서 역사상 많은 위인이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그들이 알프스에서 받은 값진 영향과 도움을 살펴보기 위해 2017년 연말연시 열흘 동안의 꿈속으로 돌아간다. 레망 호수의 놀라운 일출을 본 감동을 뒤로 하고 바젤로 향한다.


상해에서 본 <마술피리>를 로잔에서 다시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공연 없이 불 꺼진 극장을 아쉽게 한 바퀴 돌고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로잔은 아주 특이한 지형이다. 바로 앞에 유럽에서 가장 큰 레망 호수(영어로는 제네바 호수)를 끼고 있지만, 도시 안쪽은 세 개의 언덕이 등고선을 이루며 차례로 겹쳐 있다. 때문에 언덕과 언덕을 잇는 다리도 있고 로잔 지하철 로고도 세 개의 언덕을 상징한다.

세 언덕을 상징하는 로잔 지하철 로고

지붕이 있는 마르셰 계단을 한참 올라 노트르담 대성당에 도착했다. 로잔 구시가의 랜드마크이자 멀리 레망 호수까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밤이 깊어 문은 닫혔지만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장미창은 밖에서도 똑똑히 보인다. 바로 모리스 베자르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안무할 때 바닥의 문양으로 썼던 화해와 조화의 상징이다.

https://youtu.be/VGTfjMJK1yA (외부 링크만 허용)

로잔 대성당의 장미창
장미창을 형상화한 베자르 발레단의 무대

베자르 발레단의 이야기를 하나 더 하면 이 여정이 한층 더 운명적으로 보일 듯하다. <80분 간의 세계일주Le Tour du Monde en 80 minutes>! 말 그대로 1시간 20분에 지구촌 곳곳의 춤사위를 녹인 발레이다. 모험 소설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가 모델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필리어스 포그라는 영국 신사가 80일 동안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가 여부를 놓고 친구들과 내기를 벌이는 이야기이다. 프랑스인 하인 파스파르투만을 데리고 떠난 여행은 포그의 생각만큼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인도에서 사랑도 얻지만, 포그를 은행털이로 오인한 형사의 추적 때문에 일정은 계속 발목 잡힌다. 결국 런던에 돌아온 포그, 그는 하인이 계산한 일자를 보고 내기에 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자신들이 서에서 동으로 여행을 한 덕에 하루를 벌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된다.


장 콕토는 1936년에 쥘 베른의 여행을 직접 증명해 보일 여행을 떠난다. 마르셀 킬이라는 친구가 그의 ‘파스파르투’이다. 물론 반 세기가 지나는 동안 80일 동안의 세계여행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 굳이 증명할 필요 없는 가능한 루트가 되었다.


콕토는 파리에서 출발한다. 이탈리아 로마, 브린디시에서 배로 아테네로, 다시 지중해 건너 카이로, 여기서 아라비아 반도 끝의 아덴, 인도양 건너 뭄바이, 인도를 관통해 캘커타, 랑군, 쿠알라룸푸르, 말레이 반도 끝의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도쿄, 태평양 한가운데 호놀룰루, 샌프란시스코, 뉴욕,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이를 모델로 한 베자르의 ‘80분’은 다음과 같다.

출발 - 세네갈 - 사하라 - 이집트 - 그리스 - 베네치아 - 빈 - 파르지팔 - 인도 - 아레포(광장) - 중국 - 북극 - 샌프란시스코 - 안데스 - 브라질

출발의 운을 떼는 것은 역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다. 제3세계 국가에서는 민속음악과 전통 춤이 어우러지며 베네치아에서는 비발디가, 빈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와 모차르트가 당연하다. 여러 지명 가운데 성배의 기사 ‘파르지팔’이라는 바그너의 아이콘이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여기까지가 1부이다. 후반부에 재미있는 것은 북극인데 여기서 펭귄들이 열대 타히티 음악에 맞춰 춤춘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놀랍게도 우리 음악이 쓰인다. ‘Piri Dokjoo’라고 쓴 것을 보면 뜻도 모르고 그저 그 분위기를 차용했음을 알 수 있다.

빨간 옷의 이인무가 '피리 독주'이다

어쩌면 콕토가 스쳐 지나간 일제시대 한반도를 떠올리게 한다. <80분 동안의 세계일주>는 쥘 베른이나 콕토가 가지 않았지만 베자르가 경험한 안데스와 브라질의 음악과 춤으로 마무리된다.

절판

콕토는 여행의 경험을 《내 첫 여행Mon premier voyage》이라는 기행집으로 냈다. 부제는 당연히 ‘80일간의 세계일주’이다. 책의 서문은 이렇다.

친애하는 앙드레,

언젠가, 제가 너무 ‘긴장해서’ 글 쓸 때조차 여유를 잊어버린다고 책망했죠. 그러면서 제가 ‘되는대로 내버려 뒀을 때’ 보여준 능력의 예로, 제 글 ‘수탉과 어릿광대’의 한 부분을 인용했어요. 또 하나 권한 것이 해외여행이었죠.

애정을 담아 드리는 이 여행기를 보시면 더 이상 제가 내려놓을 줄 모른다고 불평하실 수 없을 거예요.

J. C.

문단의 선배인 지드에게 콕토가 보내는 애교 어린 헌사요, 어찌 보면 도발인 것이다. 지드는 아프리카 콩고 기행과 소련 방문을 통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자신을 질타했다. 좌충우돌하는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을 대표하는 콕토와는 긴장관계였던 것이다. 둘 모두 스트라빈스키와는 가까웠다. 우연하게도 지드가 콩고에 다녀왔을 무렵, 스트라빈스키가 콕토의 대본에 붙인 <오이디푸스왕>을 썼고, 지드의 소련 방문과 콕토의 세계일주 무렵에 스트라빈스키가 지드의 대본에 <페르세포네>를 붙였다. 콕토에게 모든 것을 흘러가게 두어야 한다고 했던 지드의 충고는 정작 <페르세포네>에서 어긋나고 만다. 그는 말과 음악 중 어느 쪽이 먼저인가를 놓고 스트라빈스키와 벌인 논쟁 끝에 서로 등을 돌린다. 그러나 <페르세포네>는 들으면 들을수록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리고 콕토는 정말 세계 여행 중에 놀라운 경험을 한다. 홍콩에서 상하이로 가던 일본 화물선 안에서 찰리 채플린과 만난 것이다. 1889년생 동갑 나기인 두 사람은 오래도록 서로의 존재를 알았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날 수도 있었지만, 콕토는 진정한 만남은 이렇게 운명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콕토는 자신의 테이블 근처에 있던 채플린 부부를 알아보고는 선장을 통해 만남을 청했다. 채플린은 굳이 이런 격식 차린 통지를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애거사 크리스티의 《나일 살인 사건》이나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는 것만큼 흥분되었다.

리처드 아텐버러 감독의 호화 캐스팅 영화 가운데 다이앤 레인

승객 리스트를 확인한 채플린이 부인과 단걸음에 뛰어와 콕토의 선실을 두드렸고, 잠옷 차림의 콕토가 옷을 고쳐 입고 다시 두 사람의 방으로 찾아갔다. 콕토와 채플린은 서로의 나라말을 몰랐지만 불어를 하는 채플린의 부인 폴렛 고다드는 굳이 두 사람 사이에 끼지 않았다.

채플린을 연기한 아이언맨과 고아 엘렌의 다이앤 레인
“내가 중간에서 말을 옮기다 보면 사소한 것들에 신경 쓰게 될 걸요. 내버려두면 진짜 중요한 것들을 알아들을 거예요.”

통역이 진정한 소통을 방해할 것이라는 고다드의 현명한 생각은 정말이었다.

현명한 폴렛 고다드, <모던 타임스>의 고아 엘렌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스트라빈스키가 <오이디푸스 왕>이라는 진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듣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제3의 라틴어를 택하지 않았던가! 콕토가 알아들은 채플린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맙소사! 페름 오페라의 전곡. 내레이션은 당연히 소련 말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꿈꾸는 계획 중의 하나가 십자가형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그것도 댄스홀 한가운데서 십자가 처형이 이뤄지는데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설정으로 말이다.


내가 ‘물랑 루주의 대심문관’이라고 불렀던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 채플린은 몇 년 뒤에 미국에서 만난 스트라빈스키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만일 콕토가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미국에 갔다면 세 사람이 합작한 <수퍼스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영화가 탄생했을까?

미운 오리 새끼.. 새끼 오리도 아니고.. 교육적이지 않다

이튿날 아침 일찍 혼자 호수로 나섰다. 로잔에서 바로 호수 건너는 프랑스의 에비앙이다. 생수로 유명한 그곳이니 만큼 이 호수가 얼마나 청정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스위스에서는 생수보다 수돗물이 더 안전하는 말이 있다. 부러운 환경이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백조가 노니는 레망 호수 저 너머로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한 해를 마감하는 날, 2017년의 마지막 해돋이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말고 어떤 음악도 이 광경에 어울리지 않으리라. 찰나의 순간을 놓칠세라 연신 셔터를 누르다가 아예 동영상 촬영으로 바꾸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장엄함이다. 아직 자고 있을 H를 두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폴론 등장

고즈넉한 새벽 공기가 이곳에서 작곡된 <결혼>의 느낌을 되새기게 했다. 이곳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하던 중 스트라빈스키는 스위스 작가 샤를 페르디낭 라뮈를 만났다. 로잔에서 태어난 라뮈도 프랑스에 머물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터였다. 라뮈는 <병사 이야기>의 대본을 썼다. <결혼>의 가사를 불어로 옮긴 것도 그의 일이다.


영화감독 필리프 베지아는 음악감독 미렐라 자르델리와 손잡고 <결혼, 스트라빈스키/라뮈>라는 작품을 찍었다. 라뮈와 스트라빈스키가 작업했던 호숫가에서 만난 음악가들이 <결혼>을 리허설하는 장면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라뮈가 1929년에 쓴 《스트라빈스키 회고》가 낭독되는 가운데 작업이 진행된다.

참 좋은데 말로 하긴 어렵고, 그냥 봐선 모를 것 같고...

호수 위 배에서 본 포도밭이 스트라빈스키의 악보와 나란하다. 리허설을 위한 스튜디오는 라뮈가 말한 대로 파란색으로 칠했다. 가수와 연주자가 각자의 박자를 연주하다가 결국에 일치시키는 장면은 니진스키가 무용수들에게 <봄의 제전>의 박자를 불러주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스트라빈스키의 악보와 포도밭 언덕이 수평을 이룬다

베지아는 이 모습을 더욱 실감 나게 하기 위해 장작 패는 일꾼들과 터빈으로 돌아가는 공장 기계 영상을 겹쳐 보여준다. 한 사람은 톱으로 통나무를 썰고, 그 옆에서는 도끼로 쪼갠다. 마지막 일꾼은 장작을 모아 하나로 묶는다. 실린더가 만들어내는 직선운동이 캠을 통해 회전운동으로 바뀌는 리드미컬한 영상이 <결혼>의 연주와 동기화를 이루는 것이다. 바로 찰리 채플린이 1936년에 <모던 타임스>에서 보여줄 공장 풍경이다. 라뮈가 지적한 그와 스트라빈스키의 좌표도 그 못지않게 리드미컬하다.

그는 북쪽 바닷가(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고, 난 남쪽 호숫가(로잔) 태생이다. 그는 궁전이 있고 왕, 아니 그보다 더한 차르가 사는 큰 도시에서, 나는 언제나 공화국이었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그는 궁정 가수의 아들로 날 때부터 음악가였지만, 나는 글쓰기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음악이나 시를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을 포도원 농부의 후손이었다. 그는 반은 가톨릭, 반은 정교회라는 점을 뿌듯해했고, 나는 개신교로 태어난 냉담자였다.

파란색 방에 둥글게 자리한 음악가들이 마치 진짜 결혼식의 혼주와 신랑 신부, 하객이 된 것처럼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샤갈은 자신의 그림이 배경이 되길 원한 것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도 좋다.


<결혼>의 대위법은 바흐의 메커니즘과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스트라빈스키에서 바흐와 같은 신성함은 발견할 수 없다. 왜일까? 아니, 내가 갈망하는 신성함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라뮈는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액면가인 200프랑 지폐에서 나를 바라본다. 1천 프랑 속의 인물은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권위자인 야콥 부르크하르트, 100프랑은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50프랑은 화가 조피 토이버 아르프, 20프랑은 작곡가 아르튀르 오네게르, 10프랑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이다. 모두 스위스 도처에서 자취를 찾을 수 있는, 이 강소 대국이 자랑하는 위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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