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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Apr 21. 2019

몬테카를로에서 일확천금을 얻다

카드놀이와 말괄량이 길들이기

프랑스를 미술의 나라라고 부르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악은 어떠한가? 프랑스에게 음악은 어떤 것이었는지, 20세기에 이곳에 온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눈으로 살펴본다. 모나코에서 보낸 반나절은 그 어디에서보다 알찼다.


오페라 바로 뒤편에 모나코를 상징하는 다른 두 개의 랜드마크가 있다. 바로 파리 호텔과 카지노이다. 이 삼각축이 문화입국이자 향락왕국 모나코를 지탱하는 기둥인 것이다.


보수 중으로 외관이 가려진 파리 호텔을 보며 아쉬워할 때 두근거리는 정경이 펼쳐진다. 레드 카펫 위에 트럼프 카드가 펼쳐 있다. 그 앞 가게는 보석상 반 클리프 앤 아펠이다. 보통 사람이면 카지노에서 횡재해 보석으로 기분 낼 일을 떠올릴 것이다. 아니 내 기분도 거의 그와 같다. 이 정경만으로 스트라빈스키의 두 걸작을 소개할 수 있으니 이것은 마치 내가 올 줄 알고 마련한 세팅이 아닌가 싶었다.

몬테카를로 카지노 보석상 앞 카드 카펫

스트라빈스키는 1929년 니스에서 <카프리치오>를 작곡했다. 스위스 시절의 친구 에르네스트 앙세르메가 파리 살 플레옐에서 초연을 이끌었다. 피아노와 목관이 주도하는 아기자기한 협주 음악이다. 이 곡을 처음 안무한 사람은 댜길레프 사후 이곳 몬테카를로를 발레 뤼스의 재기 발판으로 삼았던 레오니드 마신이었다.


마신의 뒤를 이은 조지 발란신은 조지아 태생이다. 원래 게오르기 발란치바제라는 이름을 보면 이 나라 태생인 줄 더 명확히 알 수 있지만, 프랑스에 와서 발신(미국에선 밸런친)으로 줄였다. 편의상 발란신은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 시티 발레단을 창단해 이끌어 미국 발레의 아버지 격이 되었다. 그는 1967년 뉴욕에서 보석상 반 클리프 앤 아펠 앞을 지나다가 새 발레를 구상했다.

발란신의 발레 <보석> 가운데 스트라빈스키의 <카프리치오>에 붙인 '루비'

‘에메랄드’에는 포레, ‘루비’는 스트라빈스키, ‘다이아몬드’에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각각 사용한 <보석>이라는 발레가 이렇게 탄생했다. 반 클리프 앤 아펠은 보석 세공사인 알프레드 반 클레프와 보석상의 딸 에스텔 아펠의 결혼으로 탄생한 브랜드이다. 티파니가 오드리 헵번의 영화로 유명하지만, 반 클리프 아펠이 스토리텔링에 들이는 공은 훨씬 크다. 이 글을 쓰던 2018년 초에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디자이너 로버트 윌슨이 연출한 ‘반 클리프 앤 아펠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전시되었다. 윌슨이 만든 방주와 홍수의 배경 위에 반 클리프 앤 아펠의 동물 모양 보석 세팅이 빛을 발한다. 한 폭 떼어다가 샤갈의 구약 회화들 사이에 놓고 싶다.

로버트 윌슨이 연출한 ‘반 클리프 앤 아펠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
방주에 태울 한쌍의 동물들

반 클리프 앤 아펠 홈페이지에 따르면 발란신을 이 회사와 연결시켜 준 사람은 오데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나탄 밀스타인이었다. 동향의 후배 이고르 오이스트라흐와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했던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밀스타인의 차이콥스키 협주곡 음반 가운데 스트라빈스키의 '러시아 노래' (오페라 <마브라> 가운데. 바이올리니스트 사무엘 두슈킨을 위한 편곡)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의 세 보석에 맞춰 녹색, 붉은색, 흰색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이 발레의 성공은 보장된 것이다. 마린스키와 파리 오페라 발레의 공연 모두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루비의 마지막 군무가 일사불란하게 마무리될 때 가르니에 극장 객석에 앉은 여성들의 빛나는 눈빛은 티파니 매장 앞의 오드리 헵번이나 매한가지이다.

내부를 몽땅 크리스마스 포장한 카지노

아직 카지노 앞에서 내 가슴이 두근거린 이유의 절반밖에 소개하지 않았다. 레드카펫 위에 뿌린 카드가 두 번째 이유이다. 발란신과 같은 시기에 스트라빈스키도 미국으로 건너간다. 1937년에 작곡한 <카드게임> 또한 발란신이 위촉한 곡이다. <카드게임>은 스트라빈스키에게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작품이었다. 스트라빈스키는 부모 생전에 독일의 온천지로 휴가를 올 만큼 유복했다. 그에게는 바덴바덴 같은 상류층 집결지에서 본 카지노 풍경이 생생했다. 그래서 <카드게임>에는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이 인용되기도 한다. 카지노 휴양지에 벨칸토 오페라가 빠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멋진 음악을 춤으로 못 봤네

발레 <카드게임> 역시 세 막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세 번 모두 첫 부분은 똑같다. 입구에서 지배인이 손님을 맞는다. 트롬본이 부는 팡파르는 ‘이번 판에 한몫 잡으십시오’라고 호객하는 외침을 묘사한다. 지배인은 곧 <병사 이야기>의 악마나 발레단원들을 다그치는 댜길레프의 모습이기도 하다. 세 가지 색깔의 의상과 무대로 선보이는 <보석>처럼 <카드게임> 또한 무대와 의상 디자이너를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한다. 하트, 다이아몬드, 스페이드, 클로버에 잭, 퀸, 킹 그리고 끝으로 조커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맘껏 패놀음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까지 이 발레를 춤으로 보지 못했다. 내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숨은 원석인 것이다.


많은 음반이 있지만, 이반 피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근 실황은 영상물로 전체를 볼 수 있다. 헝가리 명장 피셔가 연미복을 입은 모습은 진짜 카지노 지배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카드게임> 이후 스트라빈스키의 삶은 깊은 어둠으로 빠져든다. 처제 류드밀라에 이어 프랑스 작곡가 중에 그에게 가장 호의적이었던 친구 모리스 라벨이 세상을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카드게임>의 공연을 놓고 곡을 쉽게 고쳐 연주하자는 친구 앙세르메와 다툰 끝에 의절하고 만다. 그리고 유럽은, 아니 전 세계가 포화 속으로 돌진한다. 결국 스트라빈스키는 그저 잠시 머물 뿐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에 평생 눌러앉았다.


카드를 늘어놓은 레드 카펫을 지나, 007이 본드걸과 애스턴 마틴 컨버터블에서 내릴 것만 같은 카지노 입구에 들어섰다. 로비는 설치 미술가 크리스토를 흉내 낸 것인지 온통 선물 포장되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위한 장식이다. 번거롭게 카메라와 짐을 맡겨야 하는 카지노에는 다음 기회에 미녀와 컨버터블을 타고 다시 오기로 하고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긴다.


아직 공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해가 바다 너머 기울기 시작하니 바홈처럼 발걸음이 빨라진 것이다. “게임은 계속됩니다”라는 <카드게임> 지배인의 마지막 외침이 뒷머리에 울린다. 마치 악마의 부추김과 같다. “The Show Must Go On!”

가장 로맨틱한 007 피어스 브로스넌

구불구불, 007 추격 장면에 어울리는 길을 한동안 내려가니 오늘 공연이 열릴 그리말디 포룸이 보인다. 그리말디는 바로 모나코 대공가의 성(性)이다. 통치 가문의 이름을 딴 현대식 컨벤션 센터 앞에는 그와 대비되는 일본식 정원이 자리한다. 작고한 그레이스 켈리 대공비는 일본 문화에 심취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는 19세기 말부터 문화에 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에 대해 한 자락 아는 것을 멋으로 알았다. 기모노를 입은 모네 부인이 포즈를 취한 그림과 고흐가 베낀 일본 목판화에 이어, 20세기에는 스시를 먹는다거나 다도를 익히는 것이 유행이 된 것이다.

클로드 모네가 아내 카미유를 모델로 그린 <일본 여인>. 고흐가 모사한 일본 민화

앞서 <오르페우스>의 무대를 디자인 한 이사무 노구치는 1958년에 이미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일본 정원을 만들었다. 1970년 오사카 만국 박람회의 일환으로 정원 박람회가 함께 열렸고, 이를 계기로 일본 정원에 대한 서양의 관심이 더욱 확대되었다. 파리를 드나들던 그레이스 켈리가 이 작은 공국에도 일본 정원을 갖고 싶어 했지만, 생전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 레니에 3세가 아내를 기리기 위해 1990년 박람회 우승자 벳푸 야스오에게 의뢰해 지금 자리에 일본 정원을 꾸몄다.

이국적인 나라에서 가장 이국적인 정경이다
우리말로는 모두 금붕어

신도(神道)를 구현한 일본풍의 정원 자리에 주변 자연과 조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한국 정원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도처에 아름다운 정원이 많이 들어서고 있지만, 특색 없이 조잡한 조경과 인위적인 장식을 늘어놓은 것을 보면 옛 조상들의 높은 안목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금붕어의 종류를 분류해 놓은 표까지, 일본풍은 서양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사무라이의 갑옷이 전시된 정자까지 보고 나니 박물관을 하나 통째로 본 느낌이다. 일본풍이 스트라빈스키에 미친 영향에 대해 내일 할 얘기가 많다.


어둑해진 정원을 나와 그리말디 포룸에 들어선다. 외형은 잉카의 피라미드와 같았고, 전시 및 컨벤션 공간은 바다를 면한 절벽에 지하로 만들었다. 아직 공연까지 2시간이나 남아서인지 사람이 하나도 없다. 마침 홀 안에는 ‘하늘에서 본 지구’라는 콘셉트로 유명한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해양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나는 오만 가지 일에서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잡아내 스트라빈스키와 그의 주변 인물에 연결할 수 있지만, 이 사진전만큼은 오롯이 그와 무관하게 소개하고 싶다. 사람들이 바다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경고하는 것이 이 전시회의 목적이다. 심해의 경이로운 아름다움부터 자원 남획, 끔찍한 오염의 폐해까지 작품마다 한참을 멈춰 서게 했다. 그 가운데 몇을 공유한다. 버려진 깡통 속의 열대어가 바다 전체의 표정을 대변한다.

ⓒ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Yann Arthus-Bertrand
펭귄 나라에 세계대전이 벌어진 모양이다 ⓒ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
전남 진도 다시마 말리는 풍경 ⓒ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

샴페인 한 잔에 간단한 일본식 도시락을 먹고 나니 그제사 피로가 몰려든다.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어느덧 공연장은 연미복과 이브닝드레스의 물결이다. 여행 중이라 편의상 노타이에 재킷만 걸쳤지만 별로 눈치 보일 정도는 아니다.


셰익스피어만큼 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는 다시없으리라. 그러나 대개의 낭만주의 음악가들은 그의 비극에 몰두했다. 희극이라면 《한여름 밤의 꿈》 정도가 음악으로 인기를 얻었다. 발란신도 멘델스존의 여러 음악을 엮어 안무한 적이 있다. 그다음으로 들 코미디가 《말괄량이 길들이기》이다.

이랬던 그녀가...

<로미오와 줄리엣>(1968)으로 유명한 프랑코 체피렐리 감독이 그보다 한 해 전에 만든 화제작이 <말괄량이 길들이기>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턴 부부가 실제 커플로 등장한 영화는 어릴 때 즐겨본 고전이었다. 영화 속 테일러가 어찌나 육감적이었는지 말괄량이의 패악질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1969년 존 크랭코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첫선 보였다. 크랭코는 국립발레단 단장 강수진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크랭코는 1973년에 비행기 사고로 때 이른 죽음을 맞았지만, 그의 헤로인인 마르시아 하이데가 뒤를 이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았고, 하이데 밑에서 강수진이 성장했던 것이다. 크랭코판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바로크 작곡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음악을 쿠어트 하인츠 슈톨체의 편곡으로 안무했다. 그러나 그 음악을 들어보면 곧바로, 스트라빈스키가 역시 바로크 작곡가 페르골레시의 음악을 편곡한 신고전주의 발레 <풀치넬라>가 모델임을 알 수 있다. 마침 크랭코의 발레가 2018년 봄에 한국에서도 공연되었다. 강수진 단장이 총 감독한 무대는 우리 발레의 세계적인 수준을 보여준 개가라 할 만했다. 모나코와 비교해도 부럽지 않을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맙소사, 털사에 마이너 야구단만 있는 게 아니었네. 털사는 <시애틀 잠 못..>에서 깡촌으로 언급되는 오클라호마 도시입니다

그러나 내가 모나코에서 본 것은 크랭코 버전이 아니었다. 댜길레프 발레단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자존심을 가진 발레단장 장 크리스토프 마요는 2014년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으로부터 신작을 위촉받는다. 20세기 소비에트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가지고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안무해달라는 것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패러디한 19세기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또한 쇼스타코비치가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부르주아 탐미주의를 오가는 오페라로 만들었다)처럼 이탈리아 파도바의 무대가 이제 러시아의 어느 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러시아이니까 예카테리나, 페트루키오는 표도로비치?

로런스 포스터가 지휘하는 몬테카를로 필하모닉이 쇼스타코비치의 숨은 선율들을 연주하자마자 마요의 활발한 춤과 만나 전에 없이 생동감 있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원작이나 체피렐리의 영화, 그리고 존 크랭코의 발레와 경쟁하는 모나코판 <말괄량이 길들이기>인 것이다.

쇼스타코비치의 가장 유명한 실내악 선율. 현악 사중주의 합주 편곡에 붙인 볼쇼이 발레단의 예고편
털사와 경쟁하는 국립 발레단의 저렴한 예고편. 목소리 기부라도 해드리고 싶다

공연 앞뒤로 흥미로운 광경이 눈길을 끌었다. 딱히 로열박스가 없는 현대식 공연장인데, 1층 중앙 좌석에 누군가 등장하자 일동이 기립해 박수를 보낸 것이다. 바로 현재 모나코를 이끌고 있는 대공 알베르 2세였다. 그는 레니에 3세와 그레이스 켈리의 아들이다. 공연 뒤에 붐비기 전에 서둘러 빠져나온 나는 바로 앞을 지나던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이민자 기사가 아닌 토박이 유쾌한 노인이다.


조용히 가려는데 모나코의 인상에 대해 먼저 묻는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인데 니스보다 더 따뜻하다고 하자, 지리적으로 니스가 바다로 트인 데 비해 모나코는 해안이 안쪽으로 들어앉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준다. 지도를 보니 바로 이해가 된다. 기사에게 대공에 대한 모나코 국민의 지지에 대해 물었다. 전임인 레니에 3세가 완고한 이미지이라 인기가 없었는데, 아들인 현 대공은 어머니 그레이스 켈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에게 따뜻하고 밝은 마음씨로 존경받는 지도자라고 했다.

커튼이 열리면 바다가 보일 것만 같은 모나코 그리말디 포룸

나라가 작다고 국민 모두의 뜻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현 대공이 나이가 들면 다시 아버지의 모습이 더 불거 나올 수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모나코와 같은 작은 나라가 프랑스에 흡수되지 않고 나름대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반가웠다. 기차역에 내려주고 친절하게 플랫폼까지 일러주는 택시기사가 바로 모나코의 얼굴이었다. 처음 걱정과 달리 늦은 시간에도 무사히 니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또 만나요, 모나코Au revoir, Mon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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