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과 암브로시아나 도서관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잘 들어두어라.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대로 하면 그자는 제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만일 그를 놓아주면 총독님은 카이사르의 충신이 아닙니다.
누구든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카이사르의 적이 아닙니까’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가질 것인지 제비를 뽑아 결정하자’
다 이루었다!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하네!
슬픔의 밤
최후의 때가 되도다
유대의 왕, 힘으로 승리하니
싸움은 끝났다
다 이루었다!
1564년에 태어난 페데리코 보로메오는 어떤 시대에서든 탁월한 재능과, 매우 부유한 모든 수단과, 특권을 누리는 모든 이익과, 지속적인 하나의 목표를 더 좋은 것을 연구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 이용했던 보기 드문 사람들 축에 속했다. 그의 인생은 바위에서 깨끗하게 흘러나와 고여 있지도 결코 탁해지지도 않은 채 여러 토양으로 오랫동안 흘러내리는 동안 깨끗하게 강물로 합류되는 시냇물 같았다.
<약혼자들> 가운데, 김효정 역, 문학과 지성사 (이하 인용 동일)
페데리코는 대담하게 자본을 투자하여, 기초공사부터 많은 공을 들여 도서관을 건립했다. 도서관을 서적과 필사본으로 채우기 위해 - 연구하면서 이미 소장했던 책들을 기증한 것 외에도 - 사비를 지불해 더욱 학식이 높고 교양 있는 여덟 사람들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플랑드르 지방, 그리스, 리바노, 예루살렘에 파견하여 책을 모으도록 했다. 그리하여 3만 권의 책과 만 4천 권의 필사본을 모았다. 도서관의 부속 기구로 박사회가 있었다.
(중략)
전적으로 개인적인 비용으로 건립된 이 도서관에서 책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었고, 누구든 책을 요구하기만 하면 필요한 메모를 할 수 있도록 앉을자리와 종이, 펜, 잉크가 제공되었다. 반면 이탈리아의 다른 유명한 공공 도서관에서 책은 볼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책장 속에 닫혀 있었다. 도서관장들이 잠깐 동안 책을 보여주겠다고 친절하게 생각할 때에만 책장 밖으로 책이 나올 수 있었다. 공부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공부할 편리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