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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Dec 07. 2019

독일 낭만주의의 여명

드레스덴 성모교회와 신구 회화관에서

드레스덴 브륄의 테라스에 자리한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의 동상


성 십자가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성모교회(Frauenkirche)가 있다. 엘베강 북쪽의 스카이라인을 주현절 교회가 떠받친다면, 남쪽은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성모교회가 윤곽을 만든다. 

성모교회와 마르틴 루터의 동상

드레스덴에서 가장 산뜻해 보이는 이 건물은 사실 2005년에 완전히 복원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13일 연합국의 융단 폭격을 받고도 무사해 시민에게 안식을 주었다. 그런 사암으로 된 성모교회 기둥은 열화 폭탄의 고열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돔까지 폭삭 무너지고 만다. 상실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동독 시절 40년 동안 폐허로 남았던 교회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은 독일 통일 이후 본격화되었다.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간 귄터 블로벨이라는 생물학자가 1999년 노벨 의학상을 받았는데, 그때 상금을 성모교회와 유대교당 재건에 쾌척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폭격으로 뼈대만 남은 영국 중부 코벤트리의 대성당

영국도 힘을 보탰다. 영국도 독일의 공습으로 코벤트리 대성당을 잃었다가 복원한 기억이 생생했다. 이들은 폭격의 잔해는 그대로 둔 채 새로운 교회를 지어 전쟁의 참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맹세로 삼았다. 1962년 새 교회 건물이 축성되었을 때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이 초연되었다. 참전국인 영국과 독일,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 성악가 테너 피터 피어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소프라노 갈리나 비슈넵스카야가 초대되었다. 소련 당국은 로스트로포비치의 아내 비슈넵스카야의 여행을 불허했기에 헤더 하퍼가 대신 불렀다. 비슈넵스카야는 뒤에 데카 녹음 때에야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데릭 자먼의 만든 <전쟁 레퀴엠>을 저작권자가 유튜브에 올렸다. 국내 출시 DVD는 초반 로런스 올리비에가 나오는 장면만 자막이 있다. 음악은 듣기만 하라는 만행!

이런 경험을 토대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촌인 켄트 공작이 주도해 드레스덴 성모교회의 재건을 도왔다. 돔 위에 세울 새로운 금도금 십자가 또한 영국에서 보냈는데, 이 작업에 참여한 세공사 앨런 스미스는 그의 아버지가 바로 드레스덴 공습에 참여했던 영국 비행사였다. 지난 세대의 과오를 보상하는 화해의 선물이었다.

저작권자가 예고편도 이렇게 열악한 화질로 올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2005년 축성된 교회의 첫 음악회는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드레스덴 오페라 합창단 르네 파페를 비롯한 네 독창자의 무대였다. 이때 연주한 베토벤의 <장엄미사>는 이듬해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했다. 매년 2월이면 열리는 드레스덴 폭격 희생자 추모 공연도 마찬가지이다. 2010년 슈만 탄생 200주년을 기념했던 음악회도 대니얼 하딩이 이곳에서 지휘했고 내가 국내 중계방송했다.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을 왜 엘베 강가에서...

성모교회는 북쪽 벽면의 원형을 최대한 복원에 사용했고, 불에 그을려 녹아내린 돔 십자가를 교회 내부에 두어 그 의미를 돌아보게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 때마다 교회에서 열리는 성탄음악회가 TV로 중계될 때 늘 그 십자가가 화면에 비친다. 공습 때보다 훨씬 뜨거운 음악이지만 십자가는 녹지 않고 더욱 큰 불을 밝힌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음악을 듣는 사람 모두의 마음을 뜨겁게 할 빛을 뿜어낸다.

검게 그을린 교회의 북벽과 내부에 안치한 녹아내린 십자가
조이스 디도나토가 부른 2013년 성탄음악회. 마스카니의 아베마리아(원곡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성모교회 옆 알베르티눔이라는 궁전 그 안에 ‘신거장 갤러리Galerie Neue Meister’가 있다. 요한 크리스티안 달(Johan Christian Dahl, 1788-1857)의 <달빛 비친 드레스덴>은 마치 성모교회가 겪을 뒷날의 고통을 예고했던 것처럼 스산하다. 

달이 그린 달

달의 친구였던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그런 낭만주의 화풍을 대표하며 이 미술관에도 프리드리히의 중요한 작품이 많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독립관. 내가 잠시 빌렸다

<달을 생각하는 두 남자>는 여러 연작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떠올리곤 한다. 오페라에서 악역의 이름이 카스파르이다. 그는 악마 자미엘의 꾐에 빠져 주인공 막스를 파멸로 몰아가려 한다. 그림 속에서 막스의 어깨에 손을 얹은 카스파르는 마법의 탄환으로 사냥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그 탄환이 결국 연인 아가테에게 날아갈 것을 모른 채 막스는 달빛에서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물론 내 상상이지만 이런 생각은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가질 만큼 보편적이다.

<마탄의 사수> 속 주인공들, 또는 혁명전야 바쿠닌과 바그너를 연상케 하는 그림

바로 프리드리히의 이미지를 가지고 만든 오페라 영화가 2010년에 나왔다. 극 중 아가테 역을 맡은 율리아네 반제는 프리드리히의 여러 그림 속 주인공이 되어 드레스덴 궁정극장의 음악감독이었던 베버가 보여주고자 한 독일의 이미지를 소화한다.

<마탄의 사수>, 영어 제목은 '사냥꾼의 신부'라 달았다
프리드리히의 그림과 영화를 담은 DVD 표지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노래는 역시 ‘그를 보기 전에 어찌 잠들 수 있을까Wie nahte mir der Schlummer’이다. 그녀가 창가에서 바라보는 달은 프리드리히의 그림 속 스산한 달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 사랑을 약속하며 태양에게 자리를 내어줄 달이다. 베버는 이 노래 한 곡에 화가가 담은 많은 이미지를 하나로 녹였다.

군둘라 야노비츠에 비해 저음인 율리아네 반제

브람스도 <독일 레퀴엠>을 초연하던 일련의 과정 중에 이 곡을 자신의 음악 사이에 삽입하기도 했다. 그만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노래였던 것이다. 미술관을 나오면 바로 괴테가 ‘유럽의 테라스’라고 불렀다는 브륄의 테라스이다. 그러나 지금 드레스덴은 ‘유럽의 공사장’으로 베를린과 앞뒤를 다툰다. 골리앗 크레인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이룬다고 해야 할까? 유네스코는 드레스덴 엘베 유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지만 새로 지은 다리가 역사와 자연의 유산에 누가 된다는 경고를 하며 3년 만에 지정을 철회했다. 개발과 보존의 의견이 팽팽하지만  드레스덴의 변화는 점점 가속화되는 느낌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이다.

공사장으로 변한 어이없는 브륄의 테라스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 가운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선생님은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 1880-1938)라는 건축가가 알프스 산맥을 개조하려 했던 계획을 이야기한다. 바우하우스 창시자 발터 그로피우스의 친구였던 타우트는 알프스가 무질서하다고 생각하고 폭파해서 경치를 더 장식적이고 깨끗하게 만들려고 했다. 타우트가 산맥을 육면체와 구형, 피라미드형으로 만들려 했다는 말에 학생들은 어이없어한다.

드레스덴의 명소가 된 멀티플렉스 영화관 우파 크리스탈 팔라스트, <글라스 파빌리온>을 지은 타우트가 보았더라면 감격했으리라!

물론 타우트의 생각은 지중해 수면을 낮추고, 사하라 사막에 물을 대는 일처럼 돈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학생들은 해안 간척이나 사막 개간은 선의의 목적이기 때문에 알프스를 기하학적으로 꾸미려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선생님은 가축을 길들이고, 숲을 가꾸고, 늪을 메우고, 배를 만들고, 과실수를 접붙이는 모든 행위가 자연에 개입하는 것이니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타우트의 생각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우리 대부분이 그가 구상한 건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유리로 건물을 짓는다는 생각을 처음 실행한 사람이 바로 타우트이다.

신 거장 갤러리와 상응하는 ‘옛 거장 회화관Gemäldegalerie Alte Meister’은 츠빙거 궁전 안에 있다. <시스티나 마돈나>를 그린 라파엘로를 비롯해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회화 시대까지 거장들의 걸작을 소장했다. <시스티나 마돈나>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식스투스 4세 교황)이 아니라 피아첸차의 산 시스토 교회(식스투스 2세 교황)에 있던 이력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림은 아우구스트 3세가 1754년에 구입해 피아첸차에서 드레스덴으로 오게 된다.

햇빛을 피해 겨우 찍은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마돈나>

당대의 예술사가 요한 요아힘 빙켈만은 작센 왕이 이 그림을 구입했다는 말을 듣고 말할 수 없는 걸작이 독일에 왔다고 흥분했다고 한다. 내 수준에서 보기에는, 삼각구도만큼이나 색상의 사용이 아름답다. 그리고 수줍은 듯이 보이는 성모 마리아에게 아이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 그림의 하단의 아기 천사들도 그런 천진한 생각을 하는 중 아닐까?

스위스 투도르 음반사가 낸 취리히 어린이 합창단의 음반이 국내에서는 산으로 갔다

2004년 알레스 음반사가 <아베 마리아> 음반을 낼 때 내가 해설과 가사 번역을 맡았는데, 그때 라파엘로의 두 천사 부분이 표지로 쓰였다. 음반 가운데 드레스덴의 음악가였던 쉬츠의 <주님을 찬양하라, 내 영혼아Lobe Den Herren, Meine Seele>가 보인다. 같은 노래를 드레스덴 음악가의 노래로 다시 듣는다. ‘크루치아너’였던 한스 크리스토프 라데만이 지휘한다.

강세황 닮은 하인리히 쉬츠의 유일한 초상화

전하는 바에 따르면 1849년 드레스덴에서 봉건주의에 저항하는 봉기가 일어났을 때 이를 주도한 미하일 바쿠닌이 이 그림을 떼어 도시로 진입하는 바리케이드에 걸라고 명했다고 한다. 프로이센의 진압군도 <시스티나의 마돈나>는 알아볼 것이라는 뜻이었다. 다행히 바쿠닌의 생각은 불발로 끝났다. 혁명은 뒷날을 기약했고 그림은 바쿠닌의 동료였던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가 설계한 원래의 방에 잘 모셨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동료였던 리하르트 바그너는 작센 궁정 음악가의 자리를 버리고 국외로 피신한다. <로엔그린>을 한창 작곡하던 중이었다. 이제 젬퍼와 바그너를 만나러 가자.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가 공연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로엔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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