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를 세 번째로 읽었다. 산적한 책 중에 소설을 이렇게 여러 번 보는 일은 드물다. 처음에는 아카데미 상 아홉 개 부문 수상 영화의 감동에 젖어 장면을 글로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두 번째는 소설만이 가진 시각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모히칸 족의 최후』, 러디어드 키플링의 『킴』처럼 다른 시대, 다른 대륙의 이야기를 끌어들여 자신의 무대를 확장한 작가의 시야는 남달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세 번째로 실제 영국 환자의 탐험을 추적하며 나는 더욱 압도되고 말았다. 구글 지도를 통해 사막 지형을 살피고 소설의 무대인 지중해 일대와 인도의 펀자브, 영국의 서머싯, 캐나다 토론토를 오가며 시나트라와 로저스의 재즈를 듣는 동안 물 마실 시간도 아까웠다. 책을 덮으며 공허함과 충만함, 그러니까 클라리넷과 오보에가 합주하는 아다지오를 듣는 기분이 오래 지속되었다. 이런 책을 읽고 뭔가를 쓴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앞선다.
대략 이런 기분...
마이클 온다치의 원작 소설은 1992년,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다. 2018년, 상이 제정된 지 50년을 기념해 역대 수상작 중 최고를 가릴 때 꼭대기를 차지했다. 나는 이 소설이 맨부커상(이름이 바뀌었다)의 위상을 높였다고 생각한다. 소설과 영화 모두 대단한 걸작이다. 영화가 많은 부분을 각색했지만 제한된 시간 동안 시공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잘 편집했기에, 원작이 앞서 말한 ‘골든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데 적잖이 기여했다. 먼저 소설 등장인물의 면면을 통해 줄거리를 더듬어 본다.
라즐로 알마시:
알마시 백작은 아프리카에서 화상 입은 채 발견되어 이탈리아로 후송된 뒤 해나의 간호를 받는다. 신원 불명이던 그는 억양 때문에 영국인 환자로 취급받았다. 해나는 자신의 아버지가 화상으로 전사할 때 곁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알마시에게 더욱 극진하다. 알마시는 헝가리 국적을 부정함으로써 동료들에 대한 배신을 정당화한다. 그는 전쟁 전에 영국 지리학회 회원으로 영국 친구들과 사귀었다. 그러나 불가피한 상황에서 북아프리카의 지리 정보를 독일군에게 넘긴다. 알마시는 캐서린 클리프턴과 사랑하는 사이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녀와 그녀 남편 제프리 클리프턴을 죽음으로 이끈다. 캐서린은 알마시를 관능의 세상으로 이끈다. 그는 그녀가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는 소리를 듣고 사랑에 빠진다. 헤로도토스는 이 소설의 중요한 열쇠이다.
해나:
스무 살의 캐나다군 간호사. 그녀는 심성이 착하지만, 환자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들을 ‘버디’라고 부르지만 죽고 나면 즉시 잊는다. 애인인 캐나다 장교가 전사한 뒤로 그녀는 자기가 저주받아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전사 소식을 듣고 절망한 그녀는 영국인 환자에게 더욱 힘을 쏟는다. 상처를 닦아주고 책을 읽어주고 모르핀을 놔준다. 야전병원이 옮겨질 때 그녀는 떠나지 않고 환자와 뒤에 남는다. 그녀는 알마시의 순수한 영혼을 존경한다. 알마시와 더불어, 그녀는 빌라에 머무는 동안 킵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해나는 베르디를 좋아한다.
킵:
인도 시크교도 킵은 영국군에 자원입대해 서포크 백작에게 폭탄 제거 훈련을 받는다. 동료 인도인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백인 전우들의 차별적인 시선도 킵을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폭탄 제거 기술을 가르쳐주는 서포크 백작은 킵을 아끼고 킵은 그를 아버지처럼 여긴다. 어느 날 신식 폭탄을 제거하던 백작과 동료들이 사망하자, 킵은 더욱 내성적이 된다. 킵은 다른 부대로 배속되어 이탈리아로 온다. 그는 빌라에서 해나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악기는 독일군이 단골로 폭탄을 숨기는 장소이다. 킵은 빌라 주위에 머물며 폭탄들을 제거한다. 그와 해나는 연인으로 발전한다. 킵은 늘 배낭 속에 광석 수신기(쉽게 말해 전화 수화기라고 보면 된다)를 가지고 다니며 바깥세상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킵은 히로시마의 핵폭탄에 대해 알고는 충격을 받는다. 그는 서양 사람들이 같은 인종, 곧 독일에게는 그런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을 거라 고개를 저으며 빌라를 떠난다. 킵은 인도로 돌아가지만, 평생 해나를 잊지 않는다.
데이비드 카라바조:
특이한 이탈리아 성(姓)을 가진 카라바조는 캐나다 좀도둑이다. 연합군은 그를 스파이로 이용했다. 해나 아버지의 친구인 그는 피렌체에서 이탈리아군에게 엄지손가락을 잃었다. 그는 자신을 고문한 라누치오 토마소니라는 사람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다. 1606년 화가 미켈란젤로 카라바조가 결투에서 죽인 인물과 이름이 같다. 고문 후유증 탓에 카라바조는 감각을 잃었고, 훔치는 능력도 상실했다. 해나는 그에게 동정을 느끼고, 그도 때때로 친구의 딸에게 사랑을 느낀다. 카라바조와 알마시는 모두 모르핀에 중독되었다. 카라바조는 알마시가 영국 군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의 정체를 추궁한다.
캐서린 클리프턴: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캐서린은 어린 시절 친구인 제프리 클리프턴과 결혼한다. 결혼 다음 날 부부는 알마시의 사막 탐사팀에 합류한다. 그녀는 야영지에서 알마시가 필사한 헤로도토스를 읽고, 그 뒤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제프리가 눈치채기에 앞서 그녀는 알마시와 관계를 정리했지만, 양쪽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제프리는 알마시, 아내와 함께 모두 죽으려고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를 낸다.
제프리 클리프턴:
캐서린의 남편인 그는 북아프리카의 항공 지도를 완성하라는 영국 정부의 밀명을 받고 있다. 알마시 캠프에 들어온 것은 위장일 뿐이다. 그가 몰다 사고를 내는 최신식 비행기도 결혼 선물이 아닌 정부 소유이다. 그가 다른 멤버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난 사이 아내가 알마시와 만난다.
이상과 같이 영국, 헝가리, 캐나다, 인도에서 각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이집트와 수단, 리비아, 그리고 다시 이탈리아에서 조우하는 것이 소설의 얼개이다. 주인공은 사하라 사막에 있었다는 전설의 오아시스 ‘제르주라’를 찾는 탐험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30년대에 선사시대 벽화가 있는 동굴을 발견한 그와 동료들은 그곳이 비가 오면 물이 넘쳐흐르던 전설의 오아시스였다고 믿는다. 불모의 땅 위에 사방치기 판처럼 그은 국경이 교차한다. 오늘날 가장 문명이 발달한 북미 지역 국경과 주 경계도 똑같은 모습이다. 백인이 들어오기 훨씬 오래전부터 그곳은 다양한 언어를 쓰는 인디언 부족들의 터전이었다. 모히칸 족이 넘나들던 숲과 대상(隊商)이 물 흐르듯 지나다니는 모래 위에 국경은 무의미하다. 영국인 환자는 국경 없는 지도 제작자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아레초 대성당 벽화 관람은 원래 해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킵은 자신에게 스팸을 주며 호의를 보인 옥스퍼드 대학 고고학자에게 답례로 벽화를 가까이 보게 해 준다. 그들은 아레초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피에솔레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2시간 이상 떨어진 반대쪽 해안에서 왔다. 킵 또한 직접 그림 속 ‘시바 여왕’을 보면서 그녀 목에 손을 가져간다. 그는 지뢰를 해체할 때 땅의 촉감에서 여왕의 살갗을 떠올린다. 동서의 이을 수 없는 간극을 상징하는 시바 여왕의 목줄기는 캐서린의 쇄골절흔으로 이어진다. 쇄골절흔이란 어려운 해부학 용어를 쉽게 풀면 ‘빗장뼈가 잘린 흔적’이다. 알마시는 그것을 ‘보스포루스’라 부른다.
2년 동안 400명밖에 안 보다니! 정말 값진 것이군...
해부도를 보면 그것은 바로 소아시아와 발칸 반도를 잇는, 그리고 나누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같은 모습이다. 온다치는 헤로도투스의 『역사』에서 리디아(현 터키 서부)의 칸다울레스 왕 이야기를 가져온다. 칸다울레스는 아내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은 나머지 부하 귀게스에게 부인 몰래 알몸을 보게 한다. 이를 안 부인은 귀게스를 불러, 자신에게 수치심을 준 죄를 물어 죽음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남편을 죽이고 자신과 왕좌를 차지할 것인지 택하라고 명했다. 한순간 캐서린이 알마시에게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알마시가 캐서린을 두고 온 동굴을 다시 찾는 장면이다. 영화는 스파이로 오해받은 알마시가 독일군에 정보를 넘기고 동굴로 돌아오는 시간이 그저 연인을 살릴 ‘골든타임’을 놓친 정도로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3년 만이다. 보통 환경이었다면 시신의 부패가 극심했을 것이고, 사막의 특수한 환경이라도 미라가 되어가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나는 작가가 캐서린의 시신을 아카시아가 된 것으로 그렸다는 사실을 세 번째 읽고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앞서 두 번은 본 게 아닌 셈이다. 아카시아는 제르주라 오아시스 주위에 군락을 이룬 나무이다. 알마시는 연인의 시신을 비행기에 태우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바람은 캐서린의 팔, 아니 아카시아 가지를 셔츠에서 떼어낸다. 그녀는 무너진다. 이파리가 흩어지고 팔다리가 사라진다. 독일군의 대공포 때문이 아니라 낡은 비행기에서 기름이 새고 조종간에서 불꽃이 튀면서 몸에 불이 붙는다. 알마시는 비행기를 뒤집고 낙하산을 펴서 환하게 타오르며 땅에 내려온다.
사하라의 아카시아
마지막 순간 영국인은 동굴에 다시 찾아갔을 때 이야기를 되뇐다. 그는 3년 동안 동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핀다. 그는 캐서린에게서 사라진 것은 푸른 눈빛뿐이라고 말한다. 향초와 돌, 빛과 아카시아 재는 그녀의 육신을 불멸로 만들었다. 그녀는 그가 그토록 갖기 원하던 익명의 지도, 평생의 경험을 몸에 자국으로 기록한 지도가 된 것이다. 그는 그 지도를 달빛으로 쓴 공동의 책이 있는 동굴 밖 바람의 궁전으로 가져간다.
이집트 환자
스리랑카 태생 캐나다 작가가 쓴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후기 식민주의 문학의 탁월한 성과라고 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주류 서구 문학 전통에 비해도 돋보이는 시적 서정이야말로 이 소설의 개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네 번째로 읽을 것 같다. 그때는 이 글에 못다 쓴 라벤나의 죽은 기사 조각과 가비체의 바다의 별이신 성모 축제, 폴리치아노와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우정, 라호르 박물관의 잠자마 대포 이야기를 더할 것이다. 그러면 다섯 번째로 읽어야 할 다른 이유가 생길 것 같다. 내가 가진 역서와 원서는 수많은 메모를 덧댄 알마시의 『역사』처럼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