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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Sep 27. 2021

집시와 르네상스

안토니오 타부키의 르포르타주

이탈리아 작가 안토니오 타부키(1943-2012)는 아직은 그가 영향받고 세상에 널리 알린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보다 덜 알려졌다. 피사 인근에서 태어난 타부키는 만년에는 포르투갈 태생의 아내와 1년의 절반을 리스본에서 보냈을 만큼 포르투갈을 사랑했다. 국내에는 그의 대표작 『디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를 비롯해 『꿈의 꿈』, 『플라톤의 위염』과 같은 단편까지 꽤 많은 작품이 번역되었다. 내가 소개하는 『집시와 르네상스Gli Zingari e il Rinascimento』는 1999년 새천년을 앞두고 한 다국어 문예지가 각국 작가 열 명의 글을 묶어 낸 무크지에 실렸다.

만년의 타부키

타부키는 이 책에서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쫓겨난 집시들이 이탈리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취재한다. 타부키는 오래전 리스본에서 만난 폴란드계 유대인 친구 류바의 논문 작성을 돕다가 직접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파리에서 온 인류학자 류바는 남부 유럽 난민의 실상에 대한 논문을 출판할 예정이었다. 류바는 타부키가 피렌체 신문에 기고한 집시 관련 글을 읽고 옛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이든의 집시풍 론도

타부키는 피렌체를 처음 찾은 류바를 도시의 전경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도시 전경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렌체에 가본 사람이라면 전망 좋은 몇 장소가 생각날 것이다. 두오모라 불리는 성당 돔이나 베키오 궁전 꼭대기를 떠올린다면 초보 관광객이다. 일단 몇 시간 줄을 서서 꼭대기에 올라가 봐야 앉을 곳도 없이 사람에 치였다가 내려와야 한다. 그보다는 미켈란젤로 광장이 탁 트인 공간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르네상스의 고도를 음미하기 좋다. 요즘에는 북쪽의 작은 마을 피에솔레가 한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이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기 싫을 만큼 낭만적인 해넘이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대부분은 이런 걸 보려고 피에솔레에 간다

타부키는 그보다 훨씬 현지인답게 벨로스과르도를 택했다. 지도에서 보면 미켈란젤로 언덕보다 좀더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타부키와 료바는 과거 어느 귀족의 저택이었지만 현재 호텔로 바뀐 아름다운 언덕으로 갔다. 그러나 호텔 직원은 투숙객이 아닌 외부인은 받지 않는다며 막아섰다. 현지인 체면을 보기 좋게 구긴 것이다.

사실 타부키는 관광 안내나 할 만큼 한가하긴커녕 매우 치열한 사람이다. 책을 중간쯤 보고서 나는 타부키가 친구를 벨로스과르도에 처음 데려간 이유를 알았다. 앞으로 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비참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아름다운 시선’이라는 뜻의 벨로스과르도에서는 아르노강 하류의 새 집시 정착촌과 그곳에서조차 뿌리가 뽑힌 사람들을 수용한 교도소가 보인다. 이렇게 『집시와 르네상스』는 인류 문화의 금자탑을 이룬 도시로 분칠한 피렌체의 가장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옛날 캠핑카

타부키는 피렌체의 완벽한 르네상스 이미지를 ‘위조지폐’와 같다고 묘사했다. 우리처럼 두리번두리번거리는 관광객 신세나 면하려고 피렌체의 눈부신 문화사를 들추는 사람에게는 꽤 충격적인 보고서이다. 나를 찾아온 외국 친구를 더럽고 지저분한 우범지대에 데려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타부키는 반대로 화려하고 밝은 도시일수록 어둠은 더욱 짙고 악취가 진동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타부키는 료바에게 본격적으로 전쟁 같은 집시의 삶을 소개한다. 유고나 알바니아에서 떠밀려온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라 알려진 토스카나의 심장 피렌체 변두리에 정착했다. 불법체류자가 가질 수 있는 일자리는 관광객에게 장미꽃을 팔거나 교차로에 멈춘 차 앞 유리를 닦고 돈을 요구하는 것 정도였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구걸했고, 대가족은 버려진 캠핑카 한두 대에 열 명씩 살기도 했다.

현지 신문 피렌체 투데이가 보도한 올마텔로 집시촌의 철거 당시. 켄 로치풍이다

타부키가 소개한 사례는 극적이다. 돈 산토로 신부는 집시들을 돕는 자원봉사단체를 세워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다. 생필품과 의료 지원은 물론 교육까지 책임졌다. 그는 집 없는 난민을 자기 아파트의 빈방에 묵게 했다. 불법체류자의 유입이 달가울 리 없는 당국은 꼬투리를 잡았다. 세입자인 신부가 다시 세를 주었으니 불법이라며 신부까지 내쫓은 것이다. 타부키가 여론을 일으켜 겨우 퇴거를 막았다.

조반니 과레스키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집시 소년 체림의 집 이야기는 더욱 끔찍하다. 체림의 형은 번듯한 피렌체 가정 처녀와 사랑에 빠졌다. 생모가 정신병을 앓고 아버지가 재혼한 탓에 외톨이가 된 아가씨였다. 둘 사이에 아기가 생기자 처녀는 친정 식구를 등지고 집시촌으로 들어왔다. 신랑 가족은 신혼부부를 위해 캠핑카를 하나 내줬다. 무덥던 그해 8월 당국은 수도요금이 밀렸다는 이유로 정착촌에 하나뿐인 수도꼭지를 용접해 막았다. 그렇게 며칠 사람들은 지옥을 경험했다. 

젤소미나는 재스민이라는 뜻이라고!

타부키의 민원 덕에 겨우 재앙이 끝나는가 싶었지만, 그로부터 도움이 필요한 집의 신원을 정확히 알아낸 당국은 영장을 가지고 가서 퇴거를 명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갓난애가 촛불을 쓰러트려 화재로 신혼집을 잃고 만다. 한계에 부딪힌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집을 나갔고, 머지않아 집시촌에서 겪은 무시무시한 범죄(물론 사실이 아닌)를 고발했다. 경찰은 아이 아빠를 구속했고, 두 달 동안 그는 속옷도 못 갈아입고 면회도 할 수 없는 감옥에 갇혔다. 그는 아직 형을 살고 있다.

단테와 브루넬레스키를 넘보는 엘턴 존의 선글래스 두오모

그러는 동안 바깥세상이 본 피렌체는 어떤 곳이었을까? 팝가수 앨턴 존의 안경을 전시하는가 하면, 할리우드 기대작 <에버 애프터: 신데렐라 이야기>의 무도회가 실제로 시내 궁전에서 재현되었다. 영화 스타와 패션계 거물이 총출동해 허영의 끝장을 보는 자리였다. 참가자의 이름과 브랜드의 열거만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하마터면 볼 뻔했다

천국과 지옥이 양 끝을 향해 질주하자 마침내 당국도 사태 진정을 위해 최소한의 책임 방안을 마련한다. 그러나 수용소를 대신한 집단 거주 아파트의 열쇠 증정식은 누가 볼 새라 황급히 덮였다. 피렌체 납세자의 대부분이 집시 정착촌 마련 문제에 심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실상에 질린 류바는 자신의 취재를 접고 떠났다. 류바의 논문이 어떻게 작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낭송을 듣자니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의 제이미 리 커티스가 생각난다

타부키는 피렌체에 남아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집시와 르네상스, 양쪽의 열기를 식히려는 듯 애꿎은 가을비가 내린다. 그는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시 「소나무 숲속의 비」를 떠올린다. 20세기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학창시절 누구나 외워야 했던 탐미주의 작가의 범신론적인 시이다. 타부키는 허영의 무도회가 잠시 그쳤을 뿐, 곧 다시 시작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 사이 그는 무도회 주최 측의 막간극을 구경한다. 북쪽 밀라노에서 모셔온 피렌체 비엔날레의 조직 위원장이 현지의 뒤떨어지는 문화 감각을 비판하며 사임했다. 시장도 질 새라 피렌체의 잠재력을 못 끌어낸 비엔날레 집행부의 능력을 탓했다. 콜로세움 관객은 엄지를 내릴 순간만 기다렸다.

타부키의 취재와 그 후기는 문화의 소명과 생명력에 대해 독자에게 단호한 판단을 요구한다. 그의 잣대처럼 예술과 작가의 됨됨이를 분리해서는 안 될까? 곧, 르네상스를 일군 피렌체 대가들의 작품성만큼이나 다시금 그들의 취향과 도덕성을 계량해야 할까? 인격으로 말하자면 보통 이상의 점수를 줄 음악가가 몇이나 될까? 많은 작가가 괴팍하거나 나약하거나 심지어 악한 삶을 살다 가기 일쑤였다. 거꾸로 존경할 만한 성품으로 형제애를 직접 실천했지만, 신통치 않은 이류 작품을 남기는 데 그쳤던 예술가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1등만 기억하는...

타부키는 끝으로 다시 한번 단눈치오의 「소나무 숲속의 비」를 읊는다. “허풍선이 범신론”이라고 경멸하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타협의 손을 내미는 것처럼 들린다. 집시와 르네상스의 세계가 공존하듯이 예술가의 허물(심지어 그 자신이 아닌 후대의 오독까지)을 탓하며 작품을 묻어버릴 수는 없지 않냐는 체념처럼 들리는 것은 내 착각일까? 공산주의자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마지막 영화 <무고한 존재L’innocente>의 원작은 바로 그 파시즘의 정신적 지주 단눈치오의 소설이다. 영화를 촬영한 벨로스과르도의 한 빌라는 현재 엔리코 카루소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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