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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Jul 17. 2022

파치 음모의 재구성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메디치 가문>의 경우

대대로 양모 장사를 하고 은행업으로 덩치를 키운 메디치 집안은 조반니 비치에 이르러 피렌체 공화정의 유력 가문이 되었다. 그의 아들 코시모는 국부(國父)라 불리며 가문을 반석에 올렸다. 코시모 당대에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의 오랜 바람이던 두오모 돔을 완성했다. 코시모의 아들 피에로는 빼어난 자질을 지녔음에도 유전병인 통풍으로 병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로렌초를 파콰드 왕자와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나뿐이 아니다. 줄리아노는 미남이었다는데 화가가 실수한 듯

다행히 피에로는 현명한 아내 루크레치아 토르나부오니와 사이에 로렌초와 줄리아노라는 탁월한 형제를 두었다. ‘위대한 자Il Magnifico’라 불린 맏아들 로렌초는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 시인 안젤로 폴리치아노와 친구였고,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후원했다. 마상 대회와 사냥은 메디치 젊은이들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무대였다. 마상 대회 주인공 로렌초와 줄리아노를 예찬하는 폴리치아노 시는 그대로 보티첼리 그림의 밑바탕이었다.

메디치 일가를 동방 방사 경배에 녹인 보티첼리가 화면 밖을 보고 있다

행복이 영원했다면, 결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1478년 피렌체의 봄은 잔인했다. 4월 26일 ‘파치 음모’는 로렌초 데 메디치의 동생 줄리아노를 앗아갔고, 절반의 성공에 그친 모반으로 주동자들이 참혹하게 처형되었다. 처음부터 메디치의 맞수 파치와 피사 주교 살비아티는 로렌초와 줄리아노 형제를 모두 죽여야 함을 잘 알았다. 먼저 교황의 조카이자 특사인 라파엘레 리아리오 추기경을 환영하려고 열린 메디치 연회에 줄리아노가 와병으로 불참하자, 신성모독을 감수하고 일요일 대성당 미사 중에 암살을 강행하는 무리수를 둔 것도 그 때문이다. 가문의 사랑을 받아온 줄리아노는 화를 피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즉사했지만, 그나마 시인 폴리치아노가 급습을 피한 로렌초를 성구실로 피신시키는 기지를 보인 덕에 메디치 가문은 기사회생했다.

19세기 화가 스테파노 우시가 그린 파치 음모

비록 로렌초를 죽이지 못했지만, 피사 주교 프란체스코 살비아티는 즉시 피렌체 행정부 장악을 꾀했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집법관 체사레 페트루치가 주교를 체포하면서 반전이 시작되었다. 메디치 가문을 지지하는 군중이 세를 불려 프란체스코 파치와 프란체스코 살비아티 주교를 비롯한 주동자들을 하나씩 끌어내 참혹하게 처단했다. 옷을 벗긴 채로 목을 매이거나 꼬챙이에 꽂힌 시신을 시뇨리아 광장에 매달았다. 식인 연쇄 살인마를 다룬 영화 <한니발>에는 파치 가문의 먼 후손인 형사가 범인을 쫓던 중 조상과 같은 방식으로 살해되는 장면이 나온다.

다윗과 헤라클레스 사이에 매달린 명배우 잔카를로 잔니니

당시 교황은 자신의 조카 지롤라모 리아리오와 밀라노 공작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의 어린 딸 카테리나를 결혼시켰다. 밀라노의 속령이던 이몰라를 조카에게 주고 동맹인 피렌체의 힘을 빼기 위한 묘수였다. 교황청이 이몰라를 밀라노로부터 구입하는 대금을 메디치의 라이벌 파치 가문이 대기로 했던 것이다. 대성당의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지롤라모 리아리오는 파치가 피렌체를 장악하면 이를 넘겨받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준비 중이었다. 모든 것을 묵인한 사람이 지롤라모의 외삼촌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시스티나 예배당을 짓게 한 교황 식스토 4세였다.

공모자가 모두 들어간 멜로초 다 포를리의 바티칸 도서관장 임명 그림. 바흐는 들러리

바그너가 자신의 신화를 짓기 위해 방대한 공부를 한 것처럼 루제로 레온카발로(1857-1919)도 동년배들과는 사뭇 다른 이력을 시작했다. 나폴리 음악원을 졸업한 뒤 그는 볼로냐 대학으로 가서 문학과 철학을 배웠다. 마침 볼로냐에서는 1871년 <로엔그린>에 이어 1876년 <리엔치>, 1877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같은 바그너의 오페라가 이탈리아 초연되었다. 열렬한 바그너 예찬자 조수에 카르두치(Giosuè Carducci) 교수에게 문학을 배우던 레온카발로도 자연히 영향을 받았다.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한 바그너는 레온카발로가 따라야 할 모범이었다.

도밍고가 서문을 쓴 레온카발로 전기

이 무렵 레온카발로는 ‘황혼Crepusculum’이라고 부를 3부작에 착수했다.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의 반지> 가운데 마지막 <신들의 황혼>에서 제목을 가져온 ‘황혼’은 <메디치 가문>,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체사레 보르자>로 이어질 역사 서사물이었다. 셋 가운데 유일하게 완성된 <메디치 가문>은 <팔리아치>가 대성공을 거둔 이듬해 1893년에 초연되었다. 그만큼 창작 역량이 절정에 달했을 때의 작품이지만, <메디치 가문>은 곧바로 잊혔다. 대중이 원한 것은 외세(바그너)에 물든 케케묵은 역사물보다는 단순 명료한 삶에 뿌리내린 ‘베리스모’(<팔리아치>)였던 것이다. 더욱이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 역할은 테너에게 가장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레온카발로의 오페라는 바그너풍의 사냥 나팔로 시작하는데, 좀 더 정확하게는 그가 젊은 시절 보내던 파리에서 레오 들리브의 발레 <실비아>를 본 영향이 아닌가 추측한다. 차이콥스키가 찬탄해 마지않았던 그 작품이다.

제1막: 피렌체 근처 언덕
로렌초 데 메디치는 동생 줄리아노, 시인 폴리치아노와 사냥을 나갔다. 그들은 정치와 사랑을 논한다. 그들이 사라지자 시모네타가 친구 피오레타와 등장한다. 시모네타는 피오레타에게 유희로 동물을 죽이는 것을 보면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몬테세코 백작이 들어온다. 그는 메디치 형제를 죽이려고 피렌체에 파견된 교황군 대장이다. 그는 저항하는 시모네타를 붙잡지만 사냥 일행이 돌아오자 사라진다. 시모네타의 비명 소리에 줄리아노가 막 잡으려던 사슴이 도망친 것이다. 시모네타와 줄리아노는 한눈에 반한다. 피오레타 또한 줄리아노에 대한 사랑을 불태운다.

서곡뿐만 아니라 줄리아노와 시모네타의 첫 만남에서 누구나 바그너의 ‘트리스탄 화음’을 들을 수 있다. 두 사람의 처지를 암시하는 것이다.

(1:35)에 트리스탄 코드가 처음 나온다

줄리아노의 요청대로 시모네타는 꽃을 건네면서, 내일까지 돌려달라고 약속을 요구한다. 베르디의 <라 트리비아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비올레타가 제르몽과 첫 만남에서 동백꽃을 건네며, “내일 그 꽃이 시들면 다시 찾아오세요”라고 한 말을 떠올릴 것이다. 줄리아노와 시모네타가 꿈길을 걷는 동안 음흉한 저음이 도사린다. 몬테세코는 먹잇감을 앞에 둔 사냥꾼이다. 이 또한 베르디가 <오텔로>에서 이아고라는 악의 화신으로 표현한 적이 있는 역할이다. 이런 위협을 모르는 두 연인에 피오레타까지 가세하면 바그너의 <지크프리트 목가>를 연상케 하는 선율이 1막을 마무리한다.

시모네타와 피오레타로 추정되는 그림들.

이렇게 실제로는 시차를 두고 줄리아노의 연인이던 시모네타 베스푸치와 피오레타 고리니가 동시에 줄리아노를 사랑하는 친구 사이로 나온다. 시모네타는 오랫동안 메디치 형제의 친구 보티첼리가 그린 걸작들의 주인공으로 여겨졌다.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 <비너스와 마르스>의 주역 또는 조역일 것이라는 추측은 상인 마르코 베스푸치(아메리카의 어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친척이다)의 아내이던 그녀와 줄리아노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설정에 훌륭한 배경이 되었다. 사실 시모네타는 폐병으로 파치 사건이 나기 2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레온카발로가 극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다.

제2막: 산타 트리니타 광장
파치, 반디니, 살비아티 주교, 몬테세코가 메디치 형제를 없앨 최선의 방법을 의논한다. 음악과 춤, 환호하는 군중에 둘러싸인 로렌초가 사랑과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폐병을 앓는 시모네타는 기꺼이 잔치에 끼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만류한다. 줄리아노의 신청으로 춤을 추던 그녀는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진다. 줄리아노는 피오레타에게 병세를 묻는다. 답하던 그녀는 자신의 헛된 사랑을 고백한다. 당황한 그를 세워둔 채로 그녀는 뛰어나간다.

제2막에서 레온카발로는 자신의 강점인 인문학 지식을 총동원한다. 로렌초가 군중에게 환영받는 장면에서 그는 폴리치아노를 ‘토스카나와 이탈리아 전역의 영광’이라 예찬하며 그의 시를 노래하자고 제안한다. 이리하여 ‘반가운 오월Ben venga maggio’이라는 아름다운 시가 르네상스로부터 날아와 베르디풍의 합창으로 불린다.

(1:05)부터 벤 벵가 마조
반가운 오월과
펄럭이는 곤팔론

반가운 봄은
모두를 사랑에 빠지게 하고
여러분 아가씨들도 차례로
구혼자들이 줄을 서지요
장미와 꽃으로
여러분을 아름답게 만들 오월

시원한 곳으로 와요
여리고 푸른 나무 아래
예쁜 분들 안심해요
다른 여인들도 많으니
새들과 짐승들도
사랑으로 불타는 오월

젊고 아름다운 분들은
가혹해선 안 돼요
나이는 젊어지지 않아요
풀잎이 그렇듯이
거절하지 말아요
오월의 연인일랑

모두 춤추고 노래하며
우리와 함께 해요
여러분의 연인을 보아요, 아름다운 분들
여러분을 놓고 마상 시합 벌이는 것을
매정한 여인일랑
오월의 꽃도 떨어뜨리리

반가운 오월과
펄럭이는 곤팔론

(레온카발로는 폴리치아노의 시 발췌했다: 전문은 https://it.wikisource.org/wiki/Ben_venga_maggio)


고무된 시모네타가 무도회의 여왕이 되고 군중이 예찬하는 음악을 보티첼리 그림의 완성이라고 봐도 좋다.

프리마베라, 봄
제3막: 베키오 다리, 밤
피오레타는 줄리아노의 은밀한 연인이 되어 아이까지 임신하지만, 친구 생각에 후회한다. 줄리아노를 그녀를 찾아와서도 내내 시모네타에 대해서만 묻는다. 그러는 사이 모반자들은 일요일 미사 중 성당에서 메디치 형제를 치기로 한다. 병상에서 일어나 밖에 나온 시모네타가 음모를 엿듣는다. 몬테세코가 그녀를 발견하고 암살 음모를 누설하지 못하도록 줄리아노와 피오레타의 관계를 말해준다. 시모네타는 설득되지 않았지만, 줄리아노에게 채 경고하기 전에 그의 팔에서 숨을 거둔다.

바그너와 베르디에 기댄 1막과 폴리치아노를 소환하는 2막에 이어, 3막에서 레온카발로는 다차원의 연출력을 요구한다. 줄리아노와 시모네타, 피오레타의 삼각관계에 암살을 공모하는 네 사람(몬테세코, 파치, 반디니, 살비아티)가 삼원으로 중계된다. 곧 줄리아노와 피오레타가 갈등하고 시모네타가 공모를 엿들으며, 그녀가 몬테세코에게 위협받고, 줄리아노의 품 안에 죽어가는 장면이 ‘칠중창’으로 불리는 것이다.

음... 만만치 않다!

다시 한번 베르디의 천재적인 <리골레토>를 떠올리게 한다. 사랑하는 만토바 공작의 타락상을 듣고 놀라지만, 그의 목숨을 구하려고 희생하는 질다는 시모네타와 동병상련인 것이다. 이제 운명의 날이다.

제4막: 산타 레파라타 성당 (두오모)
암살자들이 미사 중 신도들에게 파고들어 메디치 가문에 등을 돌리라고 부추긴다. 아멘 뒤에 울리는 종소리가 신호이다. 파치와 반디니가 줄리아노에게 달려들어 치명상을 입힌다. 성당의 거사를 불경하다고 생각하는 몬테세코는 로렌초를 공격하기를 거부한다. 두 사제가 대신 그의 역할을 맡지만 실패하고 폴리치아노가 로렌초를 성구실로 밀어 넣는다. 로렌초는 혼란을 틈타 군중의 연민을 불러오는 연설을 한다. 마지막 숨을 내쉬던 줄리아노는 형에게 임신한 피오레타를 부탁한다. 그것으로 그는 아들 줄리오를 인정하며, 줄리아노 사후 한 달 뒤 그가 태어난다. 45년 뒤 줄리오는 교황 클레멘스 7세가 된다.
원래 줄리아노는 19번 찔려 즉사한다

‘사도신경Credo’이 불리는 가운데 성당에서 벌어지는 음모는 이아고의 ‘크레도’를 떠올리게 하며, 동시에 레온카발로의 맞수 푸치니가 7년 뒤 <토스카> 1막에서 보여줄 ‘테 데움’을 예고한다. 역사가는 줄리아노가 ‘성찬의 전례’ 중에 피습당했다고 적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인 순간을 노렸다는 것이나, 레온카발로에게는 좀 더 길고 서사적인 가사가 필요했다. 그는 이아고가 ‘사도신경’을 악마의 신앙고백으로 만든 것처럼, 미사 통상문 가운데 가장 거룩하고 긴 ‘크레도’를 암살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그 사이 죄를 고해하는 피오레타의 절절한 기도는 <팔리아치>의 ‘의상을 입어라’가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들려준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피오레타가 기도하는 사이 암살의 음모가 조여든다

많은 걸작이 그렇듯이 레온카발로의 <메디치 가문>이 묻힌 까닭은 난해함(다른 말로 박식함) 때문이다. 폴리치아노, 카르두치, 윌리엄 로스코, 셰익스피어의 구절을 인용해 막을 시작하는 레온카발로의 문학적 재능은 당대 이탈리아 오페라 청중에게 과도한 공세였다. 초연 뒤에 잊힌 <메디치 가문>을 다시 빛 보게 한 사람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였다. 2007년 피렌체에서 이 곡을 녹음할 때 66세의 도밍고가 24세의 줄리아노를, 실제로는 그의 아들 뻘인 41세의 바리톤 카를로 알바레스가 29세의 형 로렌초를 맡았다. 동생의 주검 앞에서 로렌초는 외친다.

저들이 왕좌로 가는 내 길을 닦아 놓았습니다
복수합시다, 여러분! 내가 통치하겠습니다!

2, 30대 성악가가 오페라 무대에 서기란, 같은 나이의 메디치 형제가 피렌체를 이끌던 것보다 어려운 일일까? 메디치 당대 르네상스에 눈과 귀가 밝은 식자들이 나선다면 기꺼이 미천한 힘을 보태리라.



파치 음모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라우로 마르티네스의 책 원제목은 <April Blood>이다. 번역서 초판 때 전체를 썼다가 재판 때 얼굴만으로 축소한 그림은 조르조 바사리가 로렌초 사후 그린 초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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