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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Sep 25. 2023

마음과 입과 행동과 삶으로

2023년 9월 음반리뷰

ALPHA927 베네치아의 밤 

16, 17세기 명실상부 유럽 문명의 중심 가운데 하나였던 베네치아는 특히 음악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뤘다. 드 캉블라는 산 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도시의 밤풍경을 세속적 종교적 축제의 음악으로 재구성했다. 산 마르코 바실리카 악장이던 몬테베르디와 그를 잇는 후배들, 곧 레그렌치, 그란디, 메룰라, 카발리, 폰타나 등의 음악 중 정수를 추린 것이다. 몬테베르디가 일찍이 ‘성모의 슬픔’을 ‘아리안나의 눈물’로 바꾼 것처럼 여기서도 세속 가사가 자연스레 종교적인 선율을 덧입는다. 성악과 기악의 투명한 어우러짐으로 성속이 하나되는 베네치아의 밤이 완벽하게 되살아난다.

연주: 앙상블 레 쉬르프리스, 루이 노엘 베스티옹 드 캉블라

Selva morale e spirituale: No. 13, Dixit dominus, SV 264

LPH041 바흐: 칸타타 6번, 99번 & 147번  '마음과 입과 생각과 행동으로' 

2023년, 장년의 바흐가 여생을 보낸 라이프치히에 도착한 지 3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헤레베헤의 헌정반. 1725년의 칸타타 6번은 <요한 수난곡>의 마지막 코랄을 연상케 하는 장중한 도입 코랄과 오르간 모음집 <쉬블러 코랄>로 편곡되는 아리아가 들어 있다. 1724년의 칸타타 99번은 협주곡풍의 코랄로 시작해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 독주가 반주하는 아리아가 바흐의 정수를 들려준다. ‘예수, 인류 소망의 기쁨’이란 코랄로, 바흐의 칸타타를 대표하는 147번은 라이프치히 첫 해에 작곡되었다. 헤레베헤와 그의 악단이 곧 ‘바흐 소망의 기쁨’임을 확인해 주는 선곡.

연주: 필리프 헤레베헤 (지휘), 콜레기움 보칼레 헨트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BWV 147, Pt. 1: VI. Choral. Wohl mir, daß ich Jesum habe

RIC453 바흐: 푸가의 기법 (시대악기 현악 사중주 버전)

오랫동안 <푸가의 기법>은 시력을 잃은 만년의 바흐가 미완성으로 남긴 문제작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실제 미완성이라는 짐작의 근거는 희박하며, 이미 20세기 초부터 꾸준히 의혹이 제기되었다. 최근 제기된  마지막 페이지의 미출간 또는 유실 가능성에 근거해, 이 앨범은 새로운 마무리를 더했다. B-A-C-H의 열린 결말이 있고, 잠시 뒤 이들은 첫 주제로 시작하는 닫힌 마무리를 연주한다. “끝은 시작이며 시작이 끝”이라는 명제의 실현이다. 현악 사중주 음역의 중복과 한계를 이들은 피콜로 바이올린과 피콜로 첼로의 사용으로 극복했으며, 필요에 따라 다섯 악기로 대위법을 완성한다.

연주: 레크레아시옹 현악 합주단

Die Kunst der Fuge, BWV 1080: XX. Fuga a 3 Soggetti

CVS080 몬테베르디: 오르페오 전곡

오페라의 기원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16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607년에 나온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가 가진, ‘현존하는 첫 오페라’라는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음악의 시인 ‘오르페오’라는 소재가 후대에 미친 파급 덕이다. 만토바의 곤차가 공작은 앞서 이 소재를 다룬 피렌체 궁정에 버금가는 중심이 되고자 몬테베르디에게 곡을 위촉했지만, 몬테베르디는 이를 통해 고대 비극의 진정한 후계자가 되었다. 조르디 사발이야말로 누구보다 지속적으로 <오르페오>의 가치를 탐구해온 음악가이며, 이 유려한 녹음은 우리 시대에 부활한 르네상스 정신의 최고봉이다.

연주: 마르크 모용, 루치아나 만치니, 레 콩세르 데 나시옹, 조르디 사발 (지휘)

Chateau de Versailles

CVS059 륄리: 미제레레 

<디에스 이레>에 이은 레 제포페와 스테판 퓌제의 베르사유 륄리 모테트 시리즈 두 번째 앨범. 전작과 마찬가지로 50인이 넘는, 대편성 5부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장엄한 울림을 선사한다. 전작이 태양왕의 등극과 오페라의 탄생을 예고했다면, 이번에는 피렌체에서 온 일개 악사가 루이 14세를 어떻게 신적인 존재로 바꿔놓았는지 보여준다. <유빌라테 데오, 1660>는 피렌체 조약과 국왕의 결혼으로 스페인과 돈독해진 관계를 찬양한다. 륄리의 대표작인 <미제레레, 1663>는 주요 왕실 행사마다 지속적으로 공연되면서, 왕의 악단이 천국의 악단이며, “짐은 곧 음악”임을 대변해 왔다.

연주: 레 제포페, 스테판 퓌제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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