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탈리아 기행 (3) -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아이다>
노블레스 2023년 12월호 게재
베로나의 이틀째 아침 나는 가까운 만토바로 향했다. 만토바는 작지만, 자랑거리가 많다. <에이네이스>를 쓴 로마의 시인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트로이 멸망 뒤에 유민을 이끌고 탈출한 아이네아스가 카르타고를 떠나 이탈리아에 도착해 건국하는 이야기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와 더불어 3대 서사시로 꼽히는 이 고전의 작가는 <신곡>에서 단테를 안내하는 길잡이로 등장한다.
르네상스 다성음악을 마감하고 바로크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곡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는 만토바 영주 밑에서 일할 때 오페라 <오르페오>를 썼다. 오페라 장르의 첫 모습인 이 곡은 1609년 만토바 궁정에서 초연되었다. 서곡의 휘황한 팡파르는 언제 들어도 거의 주술적이다.
이후 몬테베르디는 만토바를 떠나 베네치아로 갔지만, 거꾸로 베네치아의 안토니오 비발디는 만토바의 합스부르크 총독으로부터 기막힌 프로젝트를 의뢰받는다. 네 계절의 변화를 담을 협주곡이 이때 탄생한다. <오르페오>와 <사계>라면 거의 바로크 시대 전체를 지탱할 만한 영감의 산물이다.
만토바의 초석을 다진 군주 프란체스코 곤차가와 그의 아내 이사벨라 데스테는 르네상스 예술의 중요한 후원자였다. 이들의 초청으로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가 만토바에 왔다. 그가 이사벨라를 위해 그린 스투디올로 그림들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지만 만토바 궁전 내 ‘신부의 방’에 그린 프레스코까지 프랑스가 떼어가지는 못했다. 내가 오랫동안 보아온 <르네상스 이탈리아 궁정과 그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책의 표지 그림이 바로 이 작품의 일부이다.
1500년에 태어난 페데리코 2세는 라파엘로의 제자 줄리오 로마노를 만토바로 초대한다. 궁전 내 ‘트로이아 방’에 그린 그의 벽화는 만토바를 북부의 로마로 만들고자 했던 의뢰인의 포부가 담겨 있다. 로마노가 설계한 팔라초 테(Palazzo Te)는 수많은 유럽 궁전의 모델임을 뽐낸다. 샹보르와 쉬농소, 퐁텐블로, 햄프턴 코트 따위이다.
만토바의 영주는 가상의 세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니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인공이 그렇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라고 노래하는 영주의 광대가 리골레토이며, 만토바 관광 안내소가 ‘리골레토의 집’에 자리한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뒤로하고 베로나로 돌아왔다. 폐막 전날 공연작은 기대하던 베르디의 <아이다>이다. 100년 전인 1913년 조반니 체나텔로가 고향의 로마 유적에서 축제를 열기로 하고 무대에 올린 바로 그 작품이다. 특히 이번 <아이다>는 전통적인 이집트 스타일의 연출이 아닌 스테파노 포다의 현대적인 무대이다. 이날 여주인공은 마리아 호세 시리였는데, 이미 같은 연출에 안나 네트렙코가 출연해 주목받았다. 두 사람 모두 이 시대 최고의 프리마돈나이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베로나 축제로서는 일종의 시험대였다.
전통적으로 흑인인 아이다나 오텔로의 배역은 얼굴과 몸에 검은 칠을 해왔다. 21세기 들어 이는 뿌리 깊은 인종 비하라는 비판을 받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2015년부터 모든 공연에서 인종 분장을 폐지한다고 공표했다. 2019년 베로나에서 아이다를 맡은 성악가 가운데 한 사람인 미국의 백인 소프라노 타마라 윌슨은 두 번째 무대에서 화장을 옅게 바꿨고, 세 번째 무대에선 자진 하차했다. 그때 전통적인 흑인 분장으로 대신 아이다가 된 사람이 우루과이 소프라노 마리아 호세 시리였다. 유럽 주요 무대에서 맹활약 중인 그녀는 2006년부터 베로나에 살며 축제의 여주인공 역할을 섭렵하는 중이다.
코로나로 한 차례 쉬어간 베로나 축제가 다시 한번 아이다로 홍역을 치른 것은 작년의 일이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안나 네트렙코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벌인 전쟁 중 푸틴에 대한 비판을 요구받고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은 탓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선 유럽 여러 나라는 그녀의 이런 태도를 문제 삼지 않고 계속 중용했다. 베로나에서도 그녀는 흥행 보증 카드였다. 그런 네트렙코가 아이다의 전통적인 흑인 분장을 옹호한 것이다. 그녀가 SNS에 올린 분장 사진은 다른 성악가를 자극했다.
미국 흑인 소프라노 에인절 블루는 지난 몇 년 동안 무섭게 성장한 신예이다. 미국을 넘어 유럽의 초특급 무대가 앞다퉈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런데 블루는 네트렙코의 사진을 보고 베로나 축제에 유감을 표하며 예정된 <라 트라비아타> 출연을 취소했다. 많은 미국 가수가 이에 동조했음은 물론이다. 베로나 축제는 전통을 고수했을 뿐이며, 2023년부터 새로운 <아이다> 연출을 무대에 올릴 것이라며 논란의 확산을 피해 갔다.
짧은 역사 속에 다인종 국가를 이룬 미국에서 인종 비하는 용납할 수 없는 적폐이다. 어쩌면 미국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이를테면 로마 제국 때부터) 이 문제를 다뤄왔던 유럽에서는 그 못지않게 전통을 어떻게 할 유지하고 발전시킬지가 존립을 좌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100년 된 베로나 축제는 사방에서 도전과 맞서왔다. 록밴드나 아이돌 그룹의 초대형 무대가 수만 군중을 끌어모으는 시대에 베로나는 그 흔한 스피커나 대형 스크린 없이 오로지 전통적인 발성에 의존하는 성악가와 로마가 도시에 남긴 선물인 아레나의 경이로운 음향만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반면 베를린 발트뷔네, 빈 쇤부른 여름밤의 음악회,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와 같은 후발 야외무대는 시작부터 스피커를 쓰는 것을 당연시해 왔다.
이런 베로나에 성악가 분장을 놓고 가타부타하는 것은 지엽적인 문제로 비칠지 모른다. 아예 21세기 인기 뮤지컬을 레퍼토리에 포함하라고 요구하면 어떨까? 22세기에도 여전히 축제가 계속되고 그 뮤지컬이 살아남는다면 못 할 이유가 없다. 베로나의 <아이다>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수천 년 전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전쟁 통에 침략자인 이집트의 장군과 망국 에티오피아의 공주가 나눈 사랑 이야기가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곳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장이자 한복판에 고대의 허파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아닌가!
무거운 짐을 진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는 의상과 무대, 조명 모두 파격을 가져왔다. 이미 우리나라도 여러 차례 찾아와 국립 오페라와 작업한 스타 연출가이다. 비유하자면 포다의 무대는 영화 <듄>의 시각적인 인상을 <아이다>와 결합했다고 할까. 오히려 관(冠) 쓴 왕족과 민머리 제사장은 오히려 <듄> 따위의 판타지물이 이집트 벽화를 참고한 것임을 알아차리게 했다. 야광 창(槍)을 든 군대나 온통 검은 옷으로 무대와 섞여 존재감을 희석한 노예는 오늘날 군중에게 더는 낯설지 않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전 연출에서 피라미드나 스핑크스가 자리할 중앙에 세운 거대한 손이다. 인류가 유한한 존재인 한 벗어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손’의 형상화이다. 그것은 인간을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권력이자 시스템이자 운명이다. 포다는 이 손을 활용해 자신이 세속의 성당이라 믿는 극장의 공동체 제의적 역할을 충실히 재현했다.
평소 베로나 관객 상당수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팬이다. 내가 앉은 프레스석에서도 온통 독일말만 들린다. 그 가운데 널리 알려진 저널리스트이자 영향력 있는 유튜버가 연출에 대해 소리 높여 불평한다. “이건 라스베이거스이지 오페라가 아니야!” 나는 그가 베로나의 영향력을 간과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전통에 대해 그보다 고민하지 않았을까? 베로나는 바그너 성지인 독일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나 모차르트의 고향에서 열리는 잘츠부르크 축제와 경쟁함과 동시에 록밴드나 스크린 콘서트와 맞서야 하는 최전선에 있다. 훨씬 긴 기간 동안 열리며 동원하는 관객은 바이로이트나 잘츠부르크를 합친 것보다 많다.
많은 관객이 피라미드와 거대 신전의 무대를 기대하고 베로나에 왔다. 그러나 베로나는 손쉬운 볼거리가 아닌 새로운 도전으로 그들을 맞았다. 이참에 아이다도 블랙페이스가 아닌 판타지 주인공처럼 분장했다. <아이다>가 별을 향해 가는 단테의 여정과 같다고 말한 포다의 말처럼 ‘운명의 손’은 마지막으로 관객을 향해 위압적인 파괴가 아닌 평화와 희망의 손짓을 했다. 에인절 블루와 베로나가 화해하길 바란다.
<오르페오>와 <사계>를 낳은 만토바와, 어떤 작곡가도 초연된 곡도 당장 떠오르지 않는 베로나가 오늘날 각기 어떤 위상으로 바뀌었는지 실감하며 창작과 전통, 계승과 발전이라는 문제가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 새삼 곱씹었다. 내일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라 트라비아타>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