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을 보낸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 프란코 체피렐리
세대에 따라 기억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다르다. 얼마 전 한 수족관에서 만난 젊은 커플은 리어나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스가 연인으로 나온 바즈 루어먼의 <로미오 + 줄리엣>을 떠올렸다.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프로코피예프 음악의 히로인 강수진을 좋아할지 모른다. 나는 베를리오즈의 동명 교향곡에 모리스 베자르가 안무한 발레를 그 못지않게 좋아하지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세대라도 올리비아 허시와 레너드 화이팅이 주연한 고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다면 두 사람의 청순하고 꾸밈없는 모습이 아직도 빛을 잃지 않음에 탄복할 것이다.
올해는 그 영화를 만든 프란코 체피렐리(1923-2019)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만년의 체피렐리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피렌체 거주 외국인 공동체를 둘러싼 영화 <무솔리니와 차 한 잔>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특히 영국 여성들을 스코르피오니, 곧 전갈파라고 불렀다.
부모 잃은 소년 루카는 전갈파 일원 월러스 부인의 보살핌을 받는다. 전갈파의 좌장이자 옛 영국 대사 미망인 헤스터 여사는 남편 생전 이탈리아 통치자 무솔리니를 만난 기억대로 그가 전쟁 따위는 일으킬 리 없는 합리적인 지도자라 굳게 믿는다. 직접 찾아가 영국식 다과까지 대접받고 안심하지만, 검은 속내를 드러낸 무솔리니가 히틀러와 손잡자 적대국 시민권자는 이탈리아를 떠나야 했다. 결국 피란 시기를 놓친 전갈파는 외딴 수용소에 수감된다. 많은 고비를 넘긴 끝에 종전이 다가와 스코틀랜드 부대가 진주하자 전갈파도 풀려난다. 소년 루카는 전갈파 편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며 심지 굳은 젊은이로 성장한다.
명품 콤비 매기 스미스와 주디 덴치가 전갈파로 나오고, 가수 셰어는 허영심 많은 미국 이혼녀 역이다. 영국의 대배우 로런스 올리비에의 아내였던 조앤 플로라이트가 이탈리아 소년 루카를 보살피는 따뜻한 마음씨의 월러스 부인이다. 이 루카가 바로 체피렐리 감독의 유년 시절을 모델로 한 캐릭터이다.
체피렐리는 각기 배우자가 있는 패션 디자이너 어머니와 직물상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어머니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 가운데 일리아의 아리아 ‘살랑이는 서풍 Zeffiretti lusinghieri’을 좋아해 이름을 ‘체피레티’로 지으려 했지만, 출생 신고가 잘못되어 그대로 굳었다. 체피렐리는 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전갈파’의 보살핌으로 피렌체 아카데미아와 피렌체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레지스탕스에 자원입대했고 이후 스코틀랜드 군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체피렐리는 전후 올리비에가 주연 감독한 영화 <헨리 5세, 1945>를 보고 영화로 진로를 돌렸고, 미술 스텝으로 일하던 중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눈에 띄어 <흔들리는 대지, 1948>의 조감독이 되었다. 전갈파의 영향을 받은 그가 평생 셰익스피어를 영화로 만든 것은 당연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이 유명하고, 플라시도 도밍고를 주인공으로 셰익스피어/베르디 오페라 <오텔로>도 찍었다.
체피렐리는 동갑내기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출연한 오페라를 단골로 연출했다. 1999년 <무솔리니와 차 한잔>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갈무리한 뒤 2002년 마지막 영화 <칼라스 포에버>를 내놓아 평생지기였던 칼라스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축제는 역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체피렐리와 베로나에서 데뷔한 칼라스를 함께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