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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Oct 31. 2023

공유와 무소유

쿠마 무녀의 동굴에서

<MAN> 2023년 11월호 에세이 게재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이 수집가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에 써준 다음과 같은 발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알면 참으로 사랑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고, 보면 모으니, 그것은 그저 모으는 것이 아니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말은 좋은데 안다고 다 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꽃잎, 우표, 동전, 책, 음반, 운동화, 시계,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수집벽은 값어치나 덩치를 가리지 않는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파르네세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일찍이 16세기 교황 바오로 3세가 모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들은 후대에 수가 더욱 늘어났다. 

헤라클레스_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파르네세 컬렉션

18세기에 파르네세 가문의 대가 끊기면서 컬렉션을 물려받은 외손자 나폴리 왕은 보물을 로마에서 나폴리로 옮겼다.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자리한 ‘헤라클레스’나 ‘황소’는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렇게 컬렉션이 어떤 값을 치러도 도저히 살 수 없는 경지가 되면 그것은 만인(萬人)의 것이다.

파르네세의 황소_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영국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 조지프 맬러드 윌리엄 터너(1775-1851)는 전 작품을 나라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유롭게 보게 해 달라는 뜻이었다. 제당(製糖)으로 부를 일군 헨리 테이트가 자신의 컬렉션과 건축비를 기부해 테이트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나폴리 인근 바이아를 그린 터너의 그림과 실경. 아폴로에게 소원을 비는 시. 여기로부터 엘리엇의 <황무지>가 시작된다.

뒤에 터너의 그림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수집의 궁극은 기부와 공유이다. 자기만족을 넘어 더욱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줄 컬렉션일 때 그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여으도 공원

물론 안목이 아무리 높아도, 돈이 없다면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예 방법이 없지는 않다. 스스로 내 것이라 여기면 굳이 살 필요가 없다. 갈릴레이나 케플러, 어린 왕자처럼 별을 수집해 보는 건 어떨까? 아무도 가질 수 없다면 모두의 것이니 말이다.

음악하드 세부

말은 이렇게 해도 나는 나누기 싫다. 그래서 나만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공부’에 다 걸었다. 남은커녕 스스로 부끄러울 수준이지만 적어도 온전한 나만의 컬렉션이라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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