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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Jan 11. 2024

구름은 걷히고...

2024년 첫 음반 리뷰

ALPHA997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 전주곡 op.32 

라흐마니노프는 루체른 호숫가에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따 ‘빌라 세나르’라고 부르는 저택을 지었다(호로비츠 부부가 이어 살았다). 최근 박물관으로 공개된 이곳에서 게뉴샤스는 스타인웨이가 작곡가의 60세 생일 선물로 준 피아노로 그의 소나타 1번을 연주했다. 제자 콘스탄틴 이굼노프가 100마디가량 줄여 출판한 기존 판본이 아닌, 모스크바 음악 박물관에서 발견한 작곡가의 원본을 택한 게뉴샤스는 이 곡이 파우스트적인 규모와 짜임새, 드라마틱한 표현 면에서 직후에 쓴 피아노 협주곡 3번에 필적하는 걸작임을 강조한다. Op. 32에서 뽑은 네 전주곡은 완벽한 에필로그이다.

연주: 루카스 게뉴샤스 (피아노) Alpha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스위스 베기스에 카메라를 두고 왔는데...

ALPHA896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유령 변주곡 외 

오스트리아 태생의 아론 필잔은 카를 하인츠 켐머링과 최근 작고한 라르스 포크트의 제자이다. 그는 슈만이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작곡한 것과 같은 28세에 이 곡을 녹음했다. E. T. A. 호프만의 소설 주인공을 묘사한 이 곡에서 슈만은 이중자아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를 등장시킨다. 스스로 외향적인 플로레스탄에 가깝다고 말하는 필잔이지만 음악으로는 오이제비우스 쪽이 표현하기 편했다고. 필잔은 <크라이슬레리아나>의 광기와 현실 단절을 최만년의 <유령 변주곡>으로 연결한 데 이어, 슈만의 주제를 인용한 외르크 비트만(포크트의 친구이다)의 <후모레스케>를 소개한다.

연주: 아론 필잔 (피아노) Alpha 

두고 보겠네...

CVS107 헨델: <메시아> 전곡  

뜬금없이 엘 그레코

아르헨티나의 걸출한 소프라니스트(선천적 고음 가수) 프란코 파졸리의 지휘 데뷔 음반. 동향의 테너 파블로 벰슈가 첫 곡부터 미성을 뿜어내고 스위스 소프라노 마리 리스의 청정한 목소리는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한다. 헨델과 비발디가 장기인 이탈리아 알토 마르게리타 마리아 살라와 레 자르 플로리상 덕에 이름을 알린 미국 베이스 알렉스 로즌도 안정감과 호소력을 갖췄다. 무엇보다 베르사유 합주단과 바르셀로나 합창단이 파졸리에게 최상의 앙상블을 선사한다. 작센에서 더블린까지, 루터교에서 성공회까지 헨델과 그리스도의 일생이 베르사유에서 만나는 장관이다.

연주: 프란코 파졸리 (지휘),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카탈루냐 음악 궁전 실내 합창단

Chateau de Versailles

단순히 메시아 음반 하나 더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헨델에 기생하는 것밖에..

CKD721 모차르트: 미사 C단조 "대미사", CPE 바흐: 거룩하신 주님 

2023년 프롬나드 축제에서 이 곡들을 연주한 존 벗과 더니든 콘서트는 스코틀랜드의 퍼스로 돌아가 녹음을 완성했다. 모차르트는 소프라노였던 아내를 잘츠부르크의 아버지에게 소개하려고 대미사를 썼지만 미완으로 남겼다(존 벗은 2018년에 클레멘스 케메가 편집한 새 악보를 사용했다). 대미사는 후원자 고트프리트 판 스비텐 남작의 소장 자료에서 본 바흐의 B단조 미사에 대한 모차르트의 열띤 호응이다. 또 직전에 출판되어 역시 남작이 모차르트에게 보였음에 분명한 아들 바흐의 <거룩하신 주님>의 영향 또한 뚜렷하다. 더니든의 선곡과 해석의 방향은 이번에도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

연주: 루시 크로우 (소프라노), 더니든 콘서트, 존 벗 (지휘) Linn

에든버러가 이들의 본거지이다


BZ1049 마이어베어: 오페라 <악마 로베르> (하드커버 BOOK+ 전곡 3CD)   

주요 매체가 2022년 발군의 성과로 꼽은 마이어베어의 최고 걸작 <악마 로베르> 녹음의 결정판. 프랑스 오페라의 장인 민코프스키는 베를리오즈를 놀라게 하고 베르디와 바그너를 자극한 1831년의 초연 무대로 우리를 안내한다. 노르망디 공주가 악마에게 속아 낳은 아들 로베르(존 오스본)는 아버지 탓에 마성을 감추지 못한다. 로베르 앞에 아비가 다른 누이 알리스(아미나 에드리스)가 나타나 그를 올바로 인도한다. 로베르는 악마 베르트람(사실은 그의 아버지)에 속아 돈도 사랑도 잃지만, 알리스 덕에 결국 구원받는다. 시종일관 불가사의한 매력으로 사로잡는 마성의 오페라.

연주: 마르크 민코프스키 (지휘), 아키텐 보르도 국립 오케스트라

Bru Zane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디아파종 도르

세미 스테이지라도 자막판 영상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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