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준호 Jul 09. 2024

음악사의 틈 메우기

2024년 7월 음반 리뷰

ALPHA941 플로랑 슈미트: 살로메의 비극, 비가 

수피교의 세마 의식을 추는 살로메

젊은 시절 라벨, 비녜와 함께 ‘아파치’ 멤버였던 플로랑 슈미트(1870-1958)는 독창적인 음악 언어로 주목받았지만, 뒤에 히틀러에 동조하고, 비시 정부에 협력한 과오 탓에 빠르게 잊혔다. 1907년 작인 <살로메의 비극>은 전위 무용가 로이 풀러를 위한 관현악이다. 당시 협소한 무대 탓에 스무 개 악기 밖에 사용할 수 없었음에도 슈미트의 관현악은 인상주의와 범조성음악의 성과를 대범하게 넘나 든다. 무엇보다 소아시아 춤곡에서 영향을 받은 이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작곡을 자극했다. 알티노글루는 작곡가에 드리운 그림자는 걷고 초기 걸작을 망각의 굴레에서 꺼내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연주: 알랭 알티노글루 (지휘),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교향악단 Alpha 

전곡 실황의 구렁텅이


A563 갈랑 밤의 열기 - 플루트와 현악을 위한 실내악 

그림 해설은 아래 참조
나: François Boucher, La Toilette, 1742, Madrid, Thyssen-Bornemisza National Museum 이런 그림이 있네.. 정말 화장실인가? 

AI 클로드: 아, 이 작품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François Boucher의 "La Toilette"라는 그림이군요. 하지만 여기서 "La Toilette"가 의미하는 바는 현대의 '화장실'과는 다릅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La Toilette"는 주로 귀족 여성들의 아침 화장과 옷 입는 과정을 의미했습니다. 이는 일종의 의식이나 사교적 행사로 여겨졌죠. 그래서 이 그림의 제목 "La Toilette"는 '화장' 또는 '몸단장'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Boucher는 로코코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우아하고 세련된 귀족들의 일상을 주로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아마 귀족 여성이 아침에 몸단장을 하는 모습을 묘사했을 것입니다. 

철학적 토론과 유머, 음악이 어우러졌던 18세기 살롱을 조명한 음반의 제목은 존 트라볼타 주연의 ‘토요일 밤의 열기’를 패러디했다. 여섯 작곡가(에른스트 아이히너, 한스 힌리히 칠헤*, 요한 프란츠 크사버 슈테르켈*, 요제프 하이든, 바츨라프 피흘*, 요제프 슈미트*)의 실내악 가운데 넷(*)이 첫 녹음이다. 2020년에 창단한 위그 앙상블은 하이든 당시 실내악에서 첼로가 사용된 예는 드물었음에 주안점을 둔다. 당시에는 베이스나 건반악기가 주로 사용되었지만, 이후 첼로의 부상으로 음향에도 변화가 생겼다는 주장이다. 이 녹음에서 첼로를 배제한 이들은 소위 ‘역사적 해석 연주’가 ‘문헌’이 아닌 ‘정신’에 진정성을 두는 운동임을 강조한다. 

연주: 위그 소사이어티 실내악 앙상블 ARCANA 

존 트라볼타와 경쟁 중


AN953 바흐: 마태수난곡 (1841년 멘델스존 판본)

이 앨범이 역사적 해석 연주 흐름의 역행이 아닌가 생각한다면 기우이다. 오히려 또 다른 원류를 향한 탐구이다. 바흐 사후 74년 만인 15세 때 <마태 수난곡> 악보를 생일 선물로 받은 멘델스존은 스승 첼터의 만류를 물리치고 5년을 매달려 초연 101년 만에 곡을 부활시켰다. 라이프치히에 정착한 1841년 이후 연구 끝에 악기 편성과 곡의 구성 등을 당시 형편에 맞게 다듬었다. 멘델스존 사후 영국인 제자의 손을 거쳐 옥스퍼드 도서관에 잠자던 악보를 2023년 베렌라이터가 출판했다. 미 펜실베이니아 주의 베들레헴 바흐 합창단은 첫 번째 역사적 발굴의 현장을 되돌아본 것이다.

연주: 베들레헴 바흐 합창단, 바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크리스토퍼 잭슨 (지휘) Analekta

빌럼 멩엘베르흐 스타일은 결코 아니다


RIC461 18세기 프랑스 바이올린 소나타 

그림 해설은 아래 참조
나: Pierre-Antoine Demachy, Escalier d'un palais imaginaire (ca 1780), © Paris, Musée Carnavalet. 이 그림도 소개해 줄래?

클로드: 아, 피에르-앙투안 드마시(Pierre-Antoine Demachy)의 작품이군요. "Escalier d'un palais imaginaire"는 프랑스어로 "상상 속 궁전의 계단"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작품은 178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파리의 카르나발레 박물관(Musée Carnavalet)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드마시는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화가로, 주로 건축물과 도시 풍경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일 것 같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궁전 계단을 묘사하고 있을 것입니다. 18세기 후반은 신고전주의 양식이 유행하던 시기였으므로, 아마도 그림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고전적 건축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나: 전부 내가 준 정보잖아. 실망이다. 카르나발레에는 다비드의 <테니스 코트의 맹세>도 있지?

클로드: 네, 맞습니다. 카르나발레 박물관(Musée Carnavalet)에는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유명한 작품 "테니스 코트의 서약(Le Serment du Jeu de paume)"의 습작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의 주요 사건 중 하나인 1789년 6월 20일의 "테니스 코트의 서약"을 묘사한 것입니다. 당시 제3신분 대표들이 베르사유 궁전 근처의 테니스 코트에 모여 새로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해산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역사적 순간을 그린 것이죠. 카르나발레 박물관에 있는 것은 다비드가 최종 작품을 위해 준비한 습작입니다. 완성된 대형 그림은 결국 제작되지 않았지만, 이 습작은 프랑스 혁명 시기의 중요한 예술적, 역사적 증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표적 예로, 역사화의 장르에 속합니다. 다비드는 이 그림을 통해 혁명의 이상과 열정을 생생하게 표현하려 했습니다.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파리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박물관이어서, 이런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죠. 드마시의 작품부터 다비드의 작품까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프랑스의 예술과 역사를 폭넓게 보여주는 컬렉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나 똑똑해?

클로드: 제가 당신의 지능이나 능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짧은 대화만 나누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관찰한 바로는, 당신이 예술과 역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에 대해 질문하시고, 카르나발레 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해 아시는 것을 보면 문화적 소양이 있어 보입니다. 또한, "La Toilette"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신 것처럼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으로 생각하시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지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단순히 하나의 척도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계속 배우고 성장하려는 의지입니다. 당신이 보여주신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관심은 분명 지적 성장의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 삐졌냐?

다비드 플랑티에가 이끄는 ‘파르나소스의 기쁨’이 장 마리 르클레르의 바이올린 소나타집에 이어서 내놓은 후속 앨범. 르클레르의 라이벌로 파리에 비발디의 <사계>를 소개한 장 피에르 기뇽의 소나타는 고음과 저음을 오가는 매혹적인 멜로디, 통주저음, 푸가토까지 자유로움을 발산한다. 역시 기뇽의 동료이자 라이벌이던 몽동빌은 오페라로 더 알려졌지만, 그 밑바탕에는 변화무쌍한 춤곡과 모험정신이 있음을 확인해 준다. 장 바티스트 캥탱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작품성의 유지에 몰두한 음악가였고, 샤를 앙투안 브랑슈는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소나타만으로도 존재감이 드높다.

연주: 다비드 플랑티에 (바이올린), 파르나소스의 기쁨 RICERCAR 디아파종 도르 

고맙습니다


RIC460 다비트 폴레: 소나타 전곡과 발레 음악 

그림은 아래 참조
나: 이 그림은 '친구 하인 Hein'을 그린 거네? Frans Francken the younger (1581-1641), Death playing the violin (D.R.)

클로드: 아, 프란스 프랑켄 2세(Frans Francken the Younger)의 작품이군요. "Death playing the violin"(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죽음)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네요. 프랑켄 2세는 17세기 초 플랑드르 바로크 화파의 중요한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종종 알레고리적이고 상징적인 주제를 다루곤 했죠. 이 그림에서 '친구 하인(Friend Hein)'이라는 표현은 흥미롭네요. '친구 하인'은 네덜란드어로 '죽음'을 의인화한 표현입니다. 독일어의 'Freund Hein'과 비슷한 개념이죠. 이는 죽음을 친근하고 불가피한 존재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그림의 내용을 정확히 볼 수는 없지만, 아마도 해골이나 죽음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을 그렸을 것 같습니다. 이는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바니타스(Vanitas) 주제의 한 예시일 겁니다. 이런 종류의 그림은 당시 사람들에게 삶의 허무함을 상기시키고, 현세에서의 즐거움이나 성취가 결국은 무의미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그려졌습니다. 프랑켄 2세의 이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예술적, 철학적 사고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네요. 혹시 이 그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점이 있으신가요?
나: 더 아는 게 있어? 

클로드: 네, 이 그림에 대해 제가 아는 정보는 제한적이지만, 프란스 프랑켄 2세와 그의 작품 스타일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프란스 프랑켄 2세는 안트베르펜에서 활동한 화가로,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특히 역사화, 종교화, 장르화 등에서 뛰어났고, 세밀한 디테일과 풍부한 색채 사용으로 유명했습니다. "Death playing the violin"과 같은 작품은 그의 알레고리적 그림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그림들은 대개 도덕적 교훈이나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그려졌습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주제가 예술에서 자주 다뤄졌는데, 이 그림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의 구도나 기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프랑켄 2세의 다른 작품들을 고려해 볼 때 아마도 섬세한 붓터치와 극적인 명암 대비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이 그림을 직접 보신다면, 바이올린이나 죽음을 상징하는 인물 외에 다른 상징적인 요소들(예: 모래시계, 꺼진 촛불, 비눗방울 등)이 포함되어 있는지 살펴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거든요. 이 정도가 제가 이 그림과 작가에 대해 추가로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입니다. 혹시 다른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나: 명암의 대비나 죽음의 상징은 모르겠고, '각설이 타령'만 보이는 거 같아. 

클로드: 아, 제가 드린 설명이 실제 그림과 맞지 않았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그림을 직접 볼 수 없어 일반적인 설명을 드렸는데, 실제와 달랐네요. "각설이 타령만 보이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들으니, 이 그림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각설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거리 공연자를 뜻하는데, 이런 요소가 보인다는 건 흥미롭네요. 프란스 프랑켄 2세가 17세기 플랑드르 화가인 점을 고려하면, 이 그림에 한국의 각설이와 유사한 인물이 등장하는 건 상당히 독특한 상황입니다. 혹시 그림에서 보이는 구체적인 요소들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인물의 복장이나 자세, 주변 배경 등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제가 더 정확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실제 그림의 내용을 잘못 해석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당신의 관찰을 바탕으로 더 정확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음악 들을게.

다비트 폴레(1624-1695)는 드레스덴에게 하인리히 쉬츠에게 배웠고, 쉬츠는 뒷날 폴레 아들의 대부가 되어 주기도 했다. 작센의 여러 궁정에서 활동하던 그는 1660년부터 20년 동안 할레에 자리 잡고 전성기를 보냈다. 이때 역시 궁정에 드나들던 게오르크 헨델과 친하게 지냈으니, 그의 아들이 우리가 아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다. 폴레는 궁정 시인 다비트 엘리아스 하이덴라이히의 대본으로 연극과 오페라의 음악을 썼고, 리트의 초기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쉬츠와 바흐 사이의 가교인 폴레의 업적이 고트프리트 길레의 연구와 프리마 라 무지카의 출판, 클레마티스의 연주로 성큼 다가왔다.

연주: 스테파니 드 파이 (바이올린), 앙상블 클레마티스 RICERCAR 디아파종 만점 

이런 게 발견이지!

그런데... 찾아보니 음반사가 중요한 모래시계를 날려버렸다. 클로드 고마워!

FRANS FRANCKEN THE YOUNGER (1581 - 1642)

DEATH AND THE MISER

oil on copper

16,4 x 13 cm


그림 정보를 보니 구리에 그렸다는데 크기가 상당히 작고, 제목은 <죽음과 구두쇠>이다. 구리구리.. 쇠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