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복음 2장 29-32절
정의롭고 독실한 시므온은 예배당에서, 태어난 지 40일째 되는 예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29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 주십니다.
30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31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32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이 구절은 첫대목 “Nunc dimittis”를 따서 부른다. 바흐와 라흐마니노프, 아르보 페르트의 곡이 유명하다. 생각해보니 그리 유명한 건 아닌 거 같고, 끝내주게 좋다!
궁금한 것!
시메온은 왜 아기 예수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을까?
기왕이면 그가 세상을 구하는 것까지 보고 싶지 않았을까?
이어서 생각해 본다.
공자 말씀에,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Nunc dimittis”와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왜?
아침에 도를 깨쳤는데, 저녁까지 살아야 하나?
그냥 아침에 죽으면 안 될까?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나?
발가벗고 유레카라도 외쳐야 하나?
그러다가 아침에 깨친 것이 도가 아님을 깨달으면 어쩌지?
다시 키츠의 시가 떠오른다.
When I have fears that I may cease to be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될까 두려울 때
Before my pen has glean'd my teeming brain,
내 펜이 넘쳐나는 내 뇌를 수확하기 전에,
Before high-piled books, in charact'ry,
문자로 가득한 높은 책들이
Hold like rich garners the full-ripen'd grain;
풍성한 곡식을 담은 부유한 창고처럼 보이기 전에;
When I behold, upon the night's starr'd face,
밤하늘의 별이 빛나는 얼굴 위에
Huge cloudy symbols of a high romance,
거대한 구름 속에 담긴 높은 낭만의 상징들을 볼 때,
And think that I may never live to trace
그리고 그 그림자들을
Their shadows, with the magic hand of chance;
우연의 마법의 손으로 추적하지 못할까 생각할 때;
And when I feel, fair creature of an hour!
그리고 내가 느낄 때, 한 순간의 아름다운 존재여!
That I shall never look upon thee more,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Never have relish in the faery power
반사되지 않는 사랑의 요정 같은 힘을
Of unreflecting love!—then on the shore
다시는 맛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그러면 넓은 세상의
Of the wide world I stand alone, and think,
해변에 홀로 서서, 생각하네,
Till Love and Fame to nothingness do sink.
사랑과 명성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질 때까지.
음악이나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