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라벨
롤랑 마뉘엘은 프랑스 음악가이자 평론가였다.
그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하버드 대학 노턴 강연 <음악의 시학>의
대필 작가(고스트 라이터)였다.
에릭 사티의 소개로 모리스 라벨과 친해진 그는
라벨의 전기도 집필한다.
라벨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후방 운전병으로 참전했지만
병석에서 퇴역했다.
프랑스는 참전 군인과 후방의 여성을
모자 관계로 연결해 주는
사회 지원망을 운영했다.
부인은 군인을 위해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보냈고
휴가 중 숙식을 제공했다.
이를 ‘전시 대모’(Marraine de guerre)라 불렀다.
라벨의 전시 대모는 롤랑 마뉘엘의
모친인 드레퓌스 부인이었다.
라벨은 제대 뒤인 1918년 6월
드레퓌스 부인 집에 머물며
피아노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을 작곡했다.
여섯 곡은 각기 전사한 전우를 추모한다.
1. 전주곡 (자크 샤를로)
2. 푸가 (장 크뤼피)
3. 포를란 (가브리엘 들뤼크)
4. 리고동 (피에르와 파스칼 고댕)
5. 미뉴에트 (장 드레퓌스)
6. 토카타 (조세프 드 마를리아브)
쿠프랭과 라모의 프랑스 바로크에 대한 예찬이다.
초연 뒤 라벨은 푸가와 토카타를 제외한
네 곡을 관현악 편곡했다.
여기까지는 찾아보면 다 나온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롤랑 마뉘엘의 어머니가
드레퓌스 부인인데
왜 아들은 성을 따르지 않았는가이다.
부인의 원래 이름은
마리 테레즈 잔 스피스(1871-1958)였다.
라벨보다 불과 네 살 많다.
그녀는 페르낭 드레퓌스(드레퓌스 사건과 무관)와
결혼해 남편 성을 따랐다.
롤랑 마뉘엘의 원래 이름은
롤랑 알렉시스 마뉘엘 레비란다.
롤랑 마뉘엘은 필명이다.
드레퓌스이거나 레비이거나
유명한 유대인 성이다.
왜 레뷔 부인이 아니고,
왜 롤랑 마뉘엘 드레퓌스가 아닌지
AI도 모른다.
롤랑 마뉘엘은 업둥이인가?
혹시 라벨의 아들인가?
푸랑수아 쿠프랭의 무덤은
파리 지하 납골당(맨 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