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빈 신년 음악회

크리스티안 틸레만

by 정준호
Carl Michael Ziehrer: Schönfeld-Marsch, op. 422* 쇤펠트 행진곡
Josef Strauß: Transactionen, Walzer, op. 184 (1993) 교류 왈츠
Josef Hellmesberger d. J.: Elfenreigen (2007) 요정의 춤
Johann Strauß Sohn: Express, Polka schnell, op. 311* 급행
Johann Strauß Sohn: Nordseebilder, Walzer, op. 390 (2005) 북해 그림
Eduard Strauß: Mit Extrapost, Polka schnell, op. 259 (2016) 빠른 편지

PAUSE / BREAK 휴식

Johann Strauß Sohn: Ouvertüre zur Operette „Der Zigeunerbaron“ (2009) 집시 남작 서곡Josef Strauß: Die Tänzerin, op. 277* 무희
Johann Strauß Sohn: Künstlerleben, Walzer, op. 316 (2006) 예술가의 생애
Johann Strauß Sohn: Die Bajadere, Polka schnell, op. 351 (2008) 바야데르
Eduard Strauß: Opern-Soirée, Polka française, op. 162* 오페라 야회
Johann Strauß Sohn: Eva-Walzer aus der Oper „Ritter Pásmán“* 기사 파즈만 가운데 에바의 왈츠
Johann Strauß Sohn: Csárdás aus der Oper „Ritter Pásmán“ (2011) 기사 파즈만 가운데 차르다슈
Johann Strauß Sohn: Egyptischer Marsch, op. 335 (2014) 이집트 행진곡
Josef Hellmesberger d. J.: Entr’acte Valse* 막간 왈츠
Johann Strauß Sohn: Lob der Frauen, Polka mazur, op. 310 (2006) 여인 예찬
Josef Strauß: Sphärenklänge, Walzer, op. 235 (2016) 우주의 음악

* 신년음악회 첫 연주


2019년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을 처음 지휘한다. 틸레만은 지난 2000년 이래 악단과 긴밀한 관계이다. 특히 2008년 필하모닉 무도회를 이끈 뒤로는 슈트라우스 일가의 음악에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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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로그램은 카를 미하엘 치러의 행진곡으로 시작한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포병 장군이었던 안톤 폰 쇤펠트의 이름을 딴 곡이다. 보병 제4연대 - 호흐 운트 도이치마이스터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 음악감독이던 치러는 합스부르크 제국 막바지에 활동했던 군악대장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악단과 대중을 위한 음악회도 열곤 했다.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1865년 여름 빈 황실 공원의 자선 공연을 위해 ‘교류 왈츠’를 썼다. 그 뒤로 그는 시급히 휴가를 떠났다. 이 곡의 제목은 직전 사육제를 위해 그가 쓴 ‘조약 왈츠’를 떠올리게 한다. 2019년 ‘교류’라는 제목은 오스트리아와 일본의 국교 수립 150주년을 위한 표어로 적절하다. 메이지 정부가 1868년 정권을 잡으면서 일본의 오랜 쇄국 정책이 막을 내리고 원대한 개혁을 시작한다. 메이지 유신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서양음악의 소개였다. 그것은 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음악을 뜻했다. 오스트리아 연주자들이 처음 일본에 간 것이 1888년의 일이다. 브루크너의 제자였던 루돌프 디트리히는 빈 음악 협회의 추천으로 막 설립된 도쿄 국립 음악원의 감독에 부임했다. 3년 뒤 첫 일본 학생 고다 노부가 빈 음악원에 입학했다. 빈 필하모닉은 파울 힌데미트의 지휘로 1956년 처음 일본을 찾았다. 그때 이래 서른여섯 번 이상 이 나라를 방문했고, 현지 청중으로부터 최고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환대를 받았다. <거래 왈츠>는 1983년과 1986년에 일본에서도 연주되었다. 1978년부터 빈 신년 음악회는 일본에도 방송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와 일본의 음악 교류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일본의 NHK 방송국이 처음 빈 신년 음악회를 방송한 것은 5월 19일이다. 1984년 1월 1일에는 모노로 방송되었고, 1987년부터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모두 스테레오로 전송된다. 디트리히를 일본에 보낸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요제프 헬메스베르거였다. ‘페피’ 헬메스베르거는 빈 음악계의 다양한 자리를 거쳤다. 궁정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와 빈 필하모닉의 바이올린 독주를 맡았고, 궁정 악장이자 말러의 후임으로 필하모닉 정기 연주회를 이끌었다. 또한 음악협회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수로도 재임했다. 군복무 중에는 그 또한 호흐 운트 도이치마이스터 연대의 군악대장을 맡았다. 그의 날아갈 듯한 <요정의 춤>은 1903년 궁정 오페라에서 일할 무렵 작곡되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빠른 폴카 <급행>은 1866년 보오전쟁에 이어 작곡되었다. 오스트리아 군대가 놀라운 속도로 패한 전쟁이었지만, 이 곡을 듣는 누구도 그 호전적인 배경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의 여파로 슈트라우스 형제들은 자신들의 빈 시즌을 늦가을에야 시작했다. 폴크스가르텐(국민 공원)에서 처음 연주된 <급행> 폴카는 근심걱정 없는 음들을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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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 말에 막 재혼한 슈트라우스는 푀르의 북프리슬란트 제도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다. 그곳에서 부부는 명사로 대접받았다. 그 예로 후줌의 시장은 슈트라우스의 새 아내 안겔리카를 위해 시를 쓰기도 했다. 1879년의 방문은 공들인 음악 그림과 같은 왈츠 <북해 그림>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는 그해 가을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이 곡을 초연했다. 기이하게도 인쇄된 악보 표지는 도입부와 첫 왈츠 주제가 묘사하는, 북해의 파도가 밀려드는 저지 해변이 아니라 우울한 피오르가 그려져 있다. 피오르는 널리 여행을 한 슈트라우스도 결코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북극 - 북해가 아닌 - 탐험은 그보다 불과 몇 년 전에 이뤄졌다. 그 결과 프란츠 요제프라는 북극 군도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의 빠른 폴카 <빠른 편지>는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의 활동 말기에 나온 곡이며, 말이 끄는 것으로는 가장 빠른 운송수단을 묘사한다. 그러나 1887년 초연 당시 이미 이 운송수단은 시대착오적이었다. 10여 년 동안 상대적으로 긴 여행 구간이 더 빠르고 안락한 열차로 대체되어 슈트라우스 형제들도 폭넓게 이용했다. 한편 1888년 베르타 벤츠는 만하임에서 포르츠하임까지 시운전을 통해 자동차의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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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집시 남작>은 1885년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되었다. 헝가리 희극 오페라의 오랜 전통을 뒤로 하고, 마침내 헝가리 테메슈의 바나트(Banat of Temeswar)와 오스트리아 빈이라는 다인종 접경을 무대로 한 오페레타가 탄생한 것이다. 이 두 지역은 화려한 서곡부터 잘 드러난다. 한쪽에서는 단조 조성에 당김음과 침발롬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왈츠 ‘마음과 생각이 나를 아름다운 빈으로 데려가네’(Nach dem schönen Wien / Zieht mich Herz und Sinn)가 흘러나온다. 현의 음색과 단조의 조성이 흥겹게 어우러진다. 무대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이라는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배경으로 전개된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단결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적, 튀르크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1867년 양국의 대타협 협정에도 불구하고 곡이 초연되던 당시에 이미 균열이 시작되었다.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프랑스풍 폴카 <무희>는 1867년 신세계를 위해 작곡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신세계는 아메리카 대륙이 아니라 상류층이 사는 히칭의 쇤브룬 궁전에서 멀지 않은 음악당을 말하는 것이었다. 당대 청중은 <무희>를 즐겼지만, 곡은 꾸준히 연주되지 못했다. 2019년에 빈 신년 음악회 사상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1867년 내내 오스트리아는 직전의 7주 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패한 여파에 휩싸여 있었다. 빈의 전통적인 무도회 중 많은 수가 취소되었다. 그럼에도 헤스페루스 예술가 조합은 디아나 홀에서 열 무도회를 위해 우아하고 덜 흥청거리는 곡을 위촉했다. <예술가의 생애>라는 제목의 이 곡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보다 사흘 뒤에 초연되었다. 슈트라우스는 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이 곡을 가져갔다. 이 행사는 군사적으로 위축된 합스부르크 제국이 국제 무대로 복귀하는 데 반가운 기회를 제공했다. 슈트라우스의 첫 아내 헨리에테는 파리의 콘서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향에 편지했다. “여기 사람들이 빈의 음악에 아주 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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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이런 음악에 너무 익숙했던 빈의 청중은 슈트라우스가 1871년 자신의 첫 오페레타 <인디고와 40인의 도적>을 초연했을 때 상대적으로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대본 탓도 컸다. 그의 빠른 폴카 <바야데르>는 발레의 코다와 2막, 3막의 모티프들로 만든 이 곡은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가 지휘하는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가 빈 국민 공원에서 초연했을 때 엄청난 열광을 불러왔다. 이 때 공연은 마이어베어의 그랜드 오페라 <위그노 교도>의 한 장면과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의 서곡을 함께 연주했다.


1877년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의 프랑스풍 폴카 <오페라의 야회>가 세계 초연되었을 때 <빈 신문>은 이렇게 적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가 그를 대신하러 무대에 올랐을 때도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두 번째이자 가장 기다려온 프로그램인 무도회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링 슈트라세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 2019년으로 150주년을 기념하는 건물이다 - 궁정 오페라 음악가들이 마련한 이 첫 무도회가 오늘날 빈 오페라 무도회의 시작이다. 황실 규정으로 청중은 음악을 듣기만 해야 했지만,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가 지휘할 때는 춤출 공간이 마련되었고,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가 궁정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대신했다. 빈 필하모닉은 2019년 신년 음악회에서 <오페라의 야회> 폴카를 처음 연주한다.

image_gallery © WienTourismus / Christian Stemper

반대로 1892년 1월 1일 요한 슈트라우스 자신의 지휘로 <기사 파즈만>을 초연하는 영광을 얻었던 것은 궁정 오페라 오케스트라이기도 했던 빈 필하모닉이었다. 이번에는 청중이 이의를 제기할 만한 뻔한 줄거리였을 뿐만 아니라 - 배우자 아닌 사람과 입맞춤하는 장면이 나온다 - 희가극에 응당 갖게 되는 기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 가운데 청중은 에바가 - 파즈만의 부인이자 무해한 입맞춤을 받는 주인공이다 - 부르는 2막 왈츠 노래에 특별한 호응을 보냈다. 궁정 오페라가 오페라를 초연한 지 이틀 뒤에 열린 군악대 연주회에서 에바의 왈츠가 다시 연주되었다. 지휘자 요제프 슐라르는 궁정 오페라에서 슈트라우스를 보좌했지만 그의 편곡은 작곡가의 인정을 받는 데 실패했다.


비록 <기사 파즈만>은 실패했지만, 슈트라우스의 ‘차르다슈’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이 리듬이 강조된 춤은 헝가리에서 시골 술집을 이르는 말(차르다)에서 왔지만 이웃나라들에서는 집시 전통음악을 이르는 말로도 통용되었다. 18세기 합스부르크 군대는 술집에서 주로 모병을 했다. ‘베르분코슈’는 모병의 춤을 일컫는다.


헝가리의 요소들이 슈트라우스 음악에서 종종 발견되지만, 그의 <이집트 행진곡>은 이집트와는 무관하다. 1869년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파블롭스크에서 작곡된 이 곡은 당시 유행했던 오리엔탈리즘을 보여준다. 처음 공연되고 며칠 뒤에 이 곡은 <코카서스 행진곡>이라는 새 이름으로 공연되었지만, 곧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모은 수에즈 운하가 1869년 11월에 개통되었기 때문이리라.


빈에서 많은 활동을 한 요제프 헬메스베르거 2세는 발레의 작곡가이자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그의 대본작가 레오폴트 크렌은 이렇게 말했다. “헬메스베르거는 음악을 쓰는 데 놀랄 만한 재주가 있습니다. 궁정 오페라의 빌헬름 얀 감독이 발레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한 곡이 더 필요하거나 할 때면 헬메스베르거는 불과 하루이틀만에 막간곡 하나를 가져옵니다.” 그의 <막간 왈츠>는 발레음악으로나 연주회 용으로 여러 차례 사용되었음에 분명하다. 이 곡은 1905년에 출판된 <점 위의 춤Tanz auf der Spitze>라는 제목의 발레 모음집에 포함되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마주르카풍 폴카 <여인 예찬>이 2019년 빈 신년 음악회를 또 다시 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로 되돌려 놓는다. 부수 공연에서 슈트라우스는 오스트리아 대사인 메테르니히 대공과 그의 아내 파울리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는 또한 벤야민 빌제와도 계약을 맺었다. 빌제는 1842년에 아버지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다가 이후 슐레지엔과 베를린에서 직접 악단을 이끌던 사람이었다. 베를린에 바탕을 둔 빌제의 악단으로부터 1882년 베를린 필하모닉이 창단했다. 1867년에 슈트라우스는 빌제와 그의 오케스트라를 나눠 지휘했는데, 그 가운데 <여인 예찬> 폴카가 들어 있었다. 초연은 같은 해 그보다 앞선 빈 카니발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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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첫 신년 음악회 공식 프로그램은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왈츠 <우주의 음악>으로 끝난다. 그럴 만한 것이 이 곡은 시작부터 바그너를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틸레만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의 전작을 모두 지휘한 두 번째 지휘자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탄호이저> 3막의 메아리와 같은 시작부분은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가 궁정 오페가가 무대에 올리기 훨씬 이전부터 바그너 오페라나 악극을 발췌해 콘서트에서 연주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1868년 의사 무도회를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 천체를 지구 중심으로 생각했던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넓은 의미에서 의사이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주의 음악>이라는 제목은 적절한 것이다. 지역신문 <프렘덴 블라트>에 따르면 의학에 종사했던 청중은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처음 듣고 바그너도, 천체도 아닌 사후 세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다섯 부분으로 된 밝고 빠른 왈츠는 만사에 결코 희망이 없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Silvia Kargl and Friedemann Pestel

번역: 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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