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를라티의 첫 번째 유딧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3)

by 정준호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는 1660년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교육받았다. 스웨덴을 떠나 로마에 정착한 인문주의자 크리스티나 여왕의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보이던 그는 1684년 나폴리 부왕(副王, viceroy)의 궁정악장으로 임명되었다. 토박이 작곡가들에게 견제받던 그는 1702년 나폴리를 떠났다. 피렌체 페르디난도 대공 곁에 잠시 머물던 스카를라티는 다시 익숙한 로마에 돌아갔다. 1708년 나폴리의 정권이 교체될 때 복직을 신청한 스카를라티는 새로 등장한 나폴리악파의 후배들과 경쟁하며 만년을 보냈고, 1725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DSC05364.JPG 스카를라티가 묻힌 나폴리의 몬테산토 산타마리아 교회

스카를라티는 첫 나폴리 임기 중에도 자주 로마를 찾아 그곳 음악계의 중심에 섰다. 그 가운데 1693년과 1697년에 작곡한 오라토리오 <유딧 La Giuditta>이 있다. 각각 베네데토 팜필리 추기경과 피에트로 오토보니 추기경이 대본을 쓴 두 오라토리오는 원본과 개정본의 관계가 아니라 주제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곡이다. 두 판본의 악보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기에 당대에 매우 인기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두 번째 <유딧>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악보가 발견되어 ‘케임브리지 판본’이라 불린다.

20251002_doria2b.jpg 팜필리 추기경이 만든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로마의 휴일> 마지막 장면이 여기서 촬영되었다.

먼저 1693년 <유딧>은 풍전등화인 베툴리아에서 시작한다. 원래 성서에서 부족 원로 오지아는 포위 끝에 닷새가 지나도 하느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항복하겠다고 백성들에게 다짐한다. 유딧은 감히 하느님에게 기한을 두느냐며 꾸짖는다. 그러나 오라토리오에서는 유딧이 거꾸로 닷새를 제안한다. 그 안에 직접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적어도 도시의 항복을 늦추어 태양이 다섯 번 뜨고 지는 것을 볼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만약 행복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저를 죽음으로 단죄하십시오.”

이로써 거추장스러운 신앙논쟁 없이 대본이 간략해졌다. 성경도 홀로페르네스를 네부카드네자르가 다스라는 바빌로니아 장수가 아니라 아시리아 장수라고 일부러 왜곡했으니 애초에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아니다.

호기로운 홀로페르네스의 등장

홀로페르네스는 트럼펫 소리 당당한 ‘전쟁 교향곡 Sinfonia bellica’과 함께 등장한다. 관현악은 다카포(Da capo)로 반복되어 장차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펼쳐 보일 찬란한 개선의 장면들을 예고한다. 아시리아 진영에서는 아키오르(Achior)라는 인물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암몬족(현재 요르단 수도 암만 태생)의 지도자인 그는 홀로페르네스의 용병대장이었다. 홀로페르네스가 그에게 이스라엘에 관해 묻자 아키오르는 평소 알던 대로 얘기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충실하면 그들을 이길 수 없지만, 만약 그들이 죄를 지었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이 말에 매우 화를 내며 그를 베툴리아로 쫓아냈다. 아키오르를 이스라엘과 함께 몰살시키리라 장담한다. 아키오르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홀로페르네스에게 한 조언이 사실은 뒤에 유딧이 할 것과 똑같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홀로페르네스는 수하들 앞에서 공공연히 패배를 운운했던 아키오르는 내쳤지만, 똑같은 얘기를 유딧이 할 때는 반대로 해석했다. 유딧은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뜻을 저버렸기에 홀로페르네스가 이길 것이라며 자만심을 부추겼다. 심지어 그는 유딧의 미모에 정신이 무장 해제된 상황이었다.

960px-Judith_at_the_Banquet_of_Holofernes_%28previously_known_as_Artemisia%29%2C_by_Rembrandt%2C_from_Prado_in_Google_Earth.jpg 렘브란트는 드물게 참수 장면이 아닌 연회 직전의 장면을 그렸다. 프라노 미술관

반면 아키오르는 이스라엘 성안으로 들어갈 때 성 밖으로 나오는 유딧과 엇갈린다. 그는 과부의 옷을 벗고 아름답게 치장한 그녀를 보고 계책을 간파한다. 유딧의 승리를 확신한 아키오르는 기한이 다가와 불안해하는 오지아와 사제를 안심시킨다. 우유부단하던 오지아는 그때야 희망에 가득 찬 아리아로 충만한 용기를 노래한다.

“기쁨이 나를 죽이지 않는 한, 두려움은 힘을 얻지 못합니다. 내 별이 너무나 밝고 아름답게 빛나고 웃으니, 슬픔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홀로페르네스와 유딧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찾으려는 동상이몽을 이중창으로 표현한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를 절대 거짓 유혹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오른손으로 이룰 것을 거듭 확인하지만, 눈먼 홀로페르네스의 귀에 그것은 욕망의 완성으로 들릴 뿐이다. 이제 수많은 화가가 묘사한 결연한 심판의 순간이다. 그러나 스카를라티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로 이어지는 유딧의 노래에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는다. 연약한 여자로서 험악한 일을 감행해야 하는 주저함의 노래 뒤에 1분 남짓한 짧은 레치타티보로 잠든 적장의 머리를 베고는 서둘러 적진을 빠져나온다.

2025-12-26 12 17 24.png 아브라함 블뢰메르트,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보이는 유딧,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박물관
“하지만 왜 더 늦추는가, 이제 깊은 잠에 빠진 저 불경한 적에게 죽음을 주는 것을? 오 조국이여, 오 하늘이여, 충실한 마음의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보소서, 저주받은 몸통에서 머리를 잘랐습니다. 친애하는 유모, 그대의 천으로 이것을 덮고, 두려운 밤을 뚫고 베툴리아 성벽으로 가져가자. 내 그대 걸음을 확실히 호위하리니.”

유딧의 승리를 모르는 베툴리아 진영은 아키오르에게 속아 시간만 허비했다고 비난하고, 오지아는 패배를 자인하는 탄식의 노래를 부른다. 전곡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안녕히, 사랑하는 자유여. 잔인한 노예살이 속에서 내 삶을 보내리라. 하지만 하늘이 변하여 내가 쓰러질 때, 내 발걸음을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게 하리라.”

억울한 아키오르는 오지아의 박약한 신앙을 탓한다. 오지아는 다시 한번 인상 깊은 노래로 아키오르를 탓한다.

“이 마음이 그대에 대한 분노로 불타오른다. 잔인한 위증자여, 거짓말쟁이여, 어찌 하늘을 거짓말하게 하면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느냐?”

그때 유딧의 승리를 알리는 소식이 도달한다. 아키오르는 어서 자신을 벌하라고 다그치고 오지아는 비로소 용서를 빈다. 유딧도 우유부단한 오지아를 꾸짖으며 그럼에도 하느님은 은총을 내리셨음을 상기시킨다. 오지아가 유딧을 바로 ‘그분’이라며 구원자로 칭송할 때 유딧이 말을 끊고 영광을 하늘에 돌린다. 이제 아름다운 피날레이다.

"폭풍과 싸우는 작은 배가"
유딧: 폭풍과 싸우는 작은 배가 사나운 바람에 흔들릴지라도, 다정한 별이 인도한다면 파도를 헤치고 해안에 닿으리.
합창: 참된 믿음이 영혼을 이토록 돕나니, 폭풍을 고요함으로 바꿀 줄 아는 이에게.
오지아: 하늘의 노여움에 인내가 꺾이려 할 때, 희망이 돌아오기도 전에 기쁨의 항구를 발견하리.
이런 것은 바흐에게나 기대했는데!
합창: 이는 오직 그 하느님의 업적, 짧은 순간에 눈물의 바다를 기쁨의 하늘로 바꾸시는 분!

스카를라티 첫 번째 <유딧>의 주인공은 유딧과 홀로페르네스라기보다는 베툴리아 진영의 오지아와 아키오르이다. 두 사람의 신앙논쟁은 어느 화가도 관심 두지 않았으며 그릴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스카를라티가 음악에 담아낸 것이 아닐까! 이제 그의 두 번째 <유딧>을 살펴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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