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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메라타 rin Jul 24. 2022

길 위의 뉴요커

뉴욕이 생각날 때마다 찾아본 다큐멘터리.


한대수의 에세이 '나는 매일 뉴욕 간다'에서 그는 뉴요커가 되기 위한 조건, 세 가지에 대해 말한다.

첫 번째는 10년 이상 거주하면서 100년의 고독을 맛본 경험. 두 번째는 한두 번의 이혼의 경험. 세 번째는 월세를 못내 집에서 쫓겨나 본 경험. 거기에 만약 홈리스까지 경험을 해보았다면 진정한 뉴요커라고.


'나는 홈리스 빼고 다해봤다. 나의 상처가 1st. 에비뉴에서 10th. 에비뉴까지 박혀 있다. 그렇다 나는 뉴요커다!'


어떤 측면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런 그가 단 한 가지 경험하지 못했던 홈리스라는 삶을 경험한 또 다른 모습의 거리의 뉴요커들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70~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갔던 한국인들 중 뉴욕의 홈리스로 전락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이야기다. 알코올, 마약, 도박 중독에 빠져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놓아버렸던 그들. 돈이 없으면 길에서 박스 깔고 살면 된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 그래서 걱정이 없고, 겁나는 게 없다는 누군가의 삶.


뉴욕 퀸즈 플러싱의 한 지하실에 한인 홈리스들이 살고 있었다. 이곳은 그들의 자활을 돕는 '사랑의 집'이라는 곳이다. 비가 오면 천장에 비가 세고, 플라스틱 통에 빗물이 똑똑 떨어지지만 그들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장소이다.


"잘 먹는 게 좋은 거야. 우리는 홈리스거든."
"사랑의 집은 갈 곳이 없어서 길거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거나 길거리에 살았던 분들이 가족을 이루고 사는 곳입니다. 진짜 가족처럼요."


반복되는 실수와 잘못된 선택의 기로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과연 공동체를 이루고 뉴욕이라는 치열한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강수

그는 엄마는 한국인, 아버지는 폴란드계 미국인의

혼혈이다.

'16살 때부터 술을 시작했는데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한 두세 달 계속 마셔요.

그러면 직장 얻은 거 다 잃고 삶은 개판이 되는 거죠.'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선착장 근처, 실외에서 페리 티켓을 파는데

말끔한 유니폼을 입고 관광 온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끌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던지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표 한 장을 파는 것이 만만치 않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중국 여성과

사랑에 빠져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

‘사랑의 집’에 모두가 모여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의 부인은

'우리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한다.


이강수 씨는 다시는 술에 손대지 않겠다 한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샌디 리

개구쟁이, 말썽꾸러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공원을 청소하고 주정뱅이 홈리스들에게 큰소리로

주의를 주며 경찰에게 공원을 상황을 전달하는

관리반장 역할을 도맡아 하는 여성이다.

그녀의 고향은 안동, 7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매일같이 자신을 때리는 오빠를 피해 집을 나왔다고 한다.

결국 14살 때 기지촌으로 흘러들어가

매춘부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어린 나이에 느꼈을 공포감 가득했던 경험을

덤덤하게 얘기하는 그녀였다.

2년 뒤 한국으로 파병 온 미군과 사랑에 빠져

16살 때 미국으로 오게 되었고 세 번의 결혼을 한다.

첫 번째 남편은 LA가 고향.

두 번째 남편은 몬테나.

세 번째 남편은 뉴욕.

샌디는 세 번째 남편을 만나 뉴욕에 정착하게 된다.

남편과는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는데 왜 그때

그 행복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을까.

당시 그녀는 심각한 마약중독에 빠져 있었다.

마음고생했던 남편은 결국 암이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별 후 그녀는 마약, 도박중독에

더 깊이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홈리스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를 돌보지도 못해 엄마로서의 자격도 없으며

벌레만도 못한 인생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본인이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을

지금에 와서야 느낀다는 그녀.


자신을 진흙탕으로 계속해서

몰고 갔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가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사랑의 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이우청

안양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자신의 동기들과 선배 연예인들의 이야기하며

추억을 회상하는 이도 있었다.

한국에서 빚보증을 잘못서서

미국으로 도망치다시피 이주했던 그는

시민권자인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불법체류자에서 벗어나 아이를 낳고

가게를 차려 꽤나 많은 돈을 벌었지만

결혼 생활이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혼 후 가게는 쪼개지고 부인과 아이와도

헤어지게 되어 방황하다 여기까지 왔다고.

촬영 한 날 기준으로 10년 전 딸의 학교

기숙사 앞에서 한 번의 만남이 있었다고 한다.

그 기숙사는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였다.

아빠 없이 잘 자라준 딸 앞에

그 이후 다시 나타날 용기가 없다고 했다.

지갑 안에 유치원 때 모습의 딸 사진을 지니고

다니며 그때를 회상하는 얼굴에는 후회만이 가득했다.

'사랑의 집' 한켠에 걸어놓은 샌드백과 한 몸이 되어

복싱 연습하는 장면이 유난히 많이 보여졌다.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훈련이자

남은 인생을 어떻게든 잘 버티고 살아보려는 마음을

끊임없이 단련하는 그를 보았다.



전모세

도박에 빠져 가족과 모든 재산을 잃었다.

라스베이거스 다음으로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 큰 카지노 도시 애틀랜틱시티에

12 카지노가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수의

한인들이 이 카지노 때문에

거지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부모, 자식, 친구들에게 소외되며,

모두 고립된 상태의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진짜 가족같이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자기 처지 같아서.

'나는 이 사람들을 도와주는 위치에 있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서 테이블에 앉아

블랙잭을 외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노름을 다시 하면 인생은 끝이다. 만약 홈리스 사역을

안 한다면 나는 바로 도박장으로 간다니까!

나 같은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피디에게 힘껏 소리치는 그는

'사랑의 집'을 운영하는 전모세 목사이다.

6년 전부터 매일같이 공원을 돌아다니며

먹을 음식과 물을 홈리스들에게 나누어 주며

그 사역을 함께하는 부인과 나태해진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주고, 계속해서 돌본다.

방식이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의 방식대로 맡겨진 사역에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내기 위해.



박종태, 황대숙

사랑의 집에서 만나 인연이 되어

결혼 한지 6개월이 된 신혼부부였다.

'사랑의 집' 바로 옆 아파트에 신혼방을

얻고 매일 아침 이곳으로 출근했다.

60세가 되기 전에 치매 증상이 생겨

자신이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

어쩌다니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며

그런 자신을 괴로워하는 여인과

남은 삶을 그 여인과 함께하겠다는

남자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냈다.

성경을 필사하는 장면에서 보고도 쓰지 못하는

부인을 보며 답답해하는 남편의 모습이 나온다.

답답한 마음에 욕도 퍼부어낸다.

부인을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내뱉고

눈빛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불안한 증세를 보인다.


불안함에 요동치는 심장 위 가슴에 한 손을 올리는

장면을 보며 그녀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다큐에서 가장 아픈 장면이었다.

그녀는 이곳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 아니었다.

치매는 그 사람의 선택에 의한 잘못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녀를 돌보는 역할이 남편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의 집'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그녀의 편에 있었다.





 잘못된 선하나를 넘고 한번 삐끗해서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향했을 사람들. 그 잘못된 선택의 책임을 뒤로한 채 의식 없이 반복되는 행동들이 쌓여 중독이란 덫에 걸려 나오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진 채 타국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나가며 더 고독하고 외로웠을 사람들이다. 지독한 외로움의 단절이 지속되고 결국은 거리의 홈리스  삶으로 흘러가버린 길 위의 그 뉴요커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너온 한국인들은 완벽한 자본주의로 이뤄진 미국 사회의 유혹 가득한 쾌락에 순진하게 빠져들어 한순간에 몰락하는 삶을 살게 된다.

어쩌면 가장 뉴욕의 현실과 가까운 이들의 삶.

우리는 그들의 삶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KBS 스페셜 다큐멘터리 888화 '길 위의 뉴요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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