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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니엘 Caminero Aug 12. 2017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여행 이야기 - 2

축제; 여행지에서 만나는 깜짝 선물


때로 여행에 대한 애잔한 감정은 시간이 다소 흐른 다음에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여행 중에는 꿈꾸던 그 곳에 와 있다는 흥분에 간직해왔던 애틋한 마음이 살짝 매몰되기도 하고, 여행 직후에는 다시 돌아온 일상과 짧은 환상과도 같았던 그곳의 기억이 맞물려 버거운 마음을 떨쳐내기 어렵다. 넉넉히 시간을 흘려보낸 나는 지금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선물 같은 축제의 기억을 되새겨 본다.

나는 축제나 페스티벌에 열광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쯤 영화제나 뮤직 페스티벌을 찾긴 하지만, 그것은 영화나 음악을 좀 더 특별하고 생생히 즐기기 위함에 지나지 않는다. 전적으로 ‘소비’에 해당하는 축제를 즐겨왔을 뿐, 순수한 의미에서 축제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은 거의 없었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축제에 대한 흥분이나 기대감으로 여행을 떠나본 적도 없다. 축제를 현장에서 즐기고 싶어 여행 간다는 사람을 보며 부러워했던 적은 있지만, 그건 축제 따위에 맞춰 여행 스케줄을 잡을 수도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탐났던 거다.

하지만 내가 여행 중인 나라나 도시에서 어떤 축제나 이벤트가 열린다면 굳이 그걸 외면하지는 않았다. 여행을 하다 누군가로부터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에 대해 들으면 언제나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길지 않은 여행 시간을 굳이 굳이 쪼개야 하는 상황이 달갑지 않은 축제라면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지만, 웬만큼 이색적인 경우라면 늘 현장을 기웃거렸다. 여행자로서 현지의 축제에 합류할 수 있다는 건 '행운에 가까운 혜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여자친구와 일본 규슈를 여행했을 때도 우연히 마을 축제를 즐길 일이 있었다. 아는 거라곤 하나비 뿐이지만, 일본의 여름에는 지역마다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적였다. 숙소가 있던 후쿠오카와 1~2시간 거리의 근교 소도시의 여름 축제를 검색한 끝에 가라쓰라는 작은 마을에서 지역 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이미 한참은 늦은 시간에 현장에 다다랐지만, 그 생생한 기운은 충분히 잘 느낄 수 있었다.

늦게 도착한 덕분에 축제의 절정을 바로 마주한 느낌이었다. 조그만 꼬마들부터 여든은 족히 되어 보이는 어르신들까지 동네사람들이 모두 나와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축제의 유래, 의미와 목적 따위 알 수도 없었고, 딱히 알 필요도 없었겠지만, 어떠한 정보를 떠나 이국의 시골 마을에서 고풍스러운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는 사실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좋았다기보다 축제 속에서 너무나 즐거워하는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좋았다.

몇 년 전, 마카오를 여행할 때는 두 가지 축제를 관람한 적이 있다. 빛의 축제와 라틴 시티 페스티벌이었다. 빛의 축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라틴 시티 페스티벌은 내가 2년 가까이 생활했던 남미의 축제를 떠오르게 해 몸과 마음이 들썩였다. 사실 남미에선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제대로 축제를 즐기지 못했다. 갑자기 일이 생기거나 몸이 아프거나 돈이 다 떨어져 이런저런 이유로 코앞에서 축제를 놓치는 일이 많았다. 그런 연유로 여행 중 우연히 만나게 되는 축제를 선물처럼 여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리랜스 에디터로 일하며 호주 퀸즈랜드 팸투어에 참여했을 때는 축구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호주에서 아시아 최고의 축구대회 2015 AFC 아시안컵이 열리고 있었기에 나는 얼마 되지 않는 자유 시간을 나누고 쪼개 2경기(한국-호주 / 일본-이라크)나 관전했다. 유럽의 유로나 남미의 코파 아메리카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아시아 강호들의 맞대결이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해 꽤나 만족스러웠다.

여행 중 만나는 스포츠 이벤트 역시 축제와 다름없다. 그러한 축제에서는 어느 정도 승부와 무관하게 경기 자체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넓은 땅덩어리, 스타플레이어의 부재, 떨어지는 경기력 등으로 매번 흥행에 어려움을 겪었던 아시안컵이지만, 2015 호주 대회를 통해 향후 흥행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점쳐볼 수 있어 축구팬으로서 한결 더 기분 좋았다.

한 겨울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즐겼던 축구 축제는 처음으로 아기 코알라를 안아본 경험, 질긴 캥거루 육포를 먹어본 경험과는 또 다른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런 선물을 받아본 나이기에,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방문하는 나라와 도시에서 열리는 축제에 대해 알아보길 권한다. 여행이 타국의 일상 하나하나를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행위라면(심지어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마저도...), 여행 중 즐기는 타국의 축제는 그 이상의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임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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