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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니엘 Caminero Aug 17. 2017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여행 이야기 - 3

No Passport? No Travel!

여권(挔券, passport)... 외국을 여행하는 국민에게 정부가 발급하는 증명서류. 여행자의 국적·신분을 증명하고, 해외여행을 허가하며, 외국 관헌의 보호를 부탁하는 문서.

별다른 생각 없이 공항에 갈 때마다 끔찍이도 챙겼던 여권이란 녀석의 이름 뜻이 궁금해 굳이 사전을 한 번 뒤져봤다. 이게 없으면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을 할 수 없음에도 사실 특별한 호기심 같은 게 일지는 않았다. 여권의 한국어 정의는 굉장히 건조하고 사무적이지만, 한자어로 풀어 쓰면 나름대로 운치 있는 이름이 된다. 나그네 ‘여(挔)’자에, 문서 ‘권(券)’자를 써 여권이다. ‘나그네의 문서’, ‘나그네가 지녀야 하는 종이’인 셈이다.

한자어의 본뜻과는 다른 풀이지만, 여권은 ‘여행자의 권리’라고 해석해도 큰 오역은 아닐 것이다. 해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하는 여권지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여권은 세계적으로도 꽤 힘을 발휘하는 권리이자 문서다. 2017년 여권지수로, 한국 여권은 세계 2위 수준의 힘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지수는 별도의 입국 비자 없이 여권만으로 입국할 수 있는 국가의 수, 입국하자마자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는 국가의 수 등으로 점수를 매긴 것이다. 한국 여권을 소지하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나라가 무려 157개나 되는데, 이는 일본, 홍콩, 타이완 등 주요 아시아 국가에 앞서 있는 것이다. 한국과 함께 공동 2위에 오른 나라는 스웨덴이고, 1위를 차지한 나라는 독일과 싱가포르다.


몇 해 전, 유럽의 한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다 가나에서 온 청년과 잠시 얘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나는 먼저 가나의 축구 선수 마이클 에시앙 얘기를 꺼내며 친한 척을 했고, 그는 친절하게도 박지성을 언급하며 대화를 이어가줬다. 박지성과 에시앙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에 입단해 활약했고, 역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몸담았던 구단을 떠났다... 아~ 축구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여권 얘기를 하려고 그 기억을 꺼낸 것이다. 그때 그 가나 청년은 내 여권을 꽤 많이 부러워했다.

“아마 내 입국심사가 더 오래 걸릴 거야. 내가 갖고 있는 가나 여권보다 네가 갖고 있는 사우스 코리아 여권이 훨씬 더 좋은 여권이니까.”
“그래? 정말? 난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그래도 가나 여권 디자인이 훨씬 더 멋있어 보인다.”
“그럼, 우리 여권 바꿀래?”
“허허......”

정도의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당시의 난 내 나라 여권에도, 타국의 여권에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며 가나의 여권지수를 체크해보니 세계 63위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여권과 가나의 여권이 그렇게 큰 차이가 날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는데, 그건 2위의 여권을 쓰는 입장에서 체감할 수 없었던 것일 뿐, 60위 밖의 여권을 가진 사람은 확실히 그 차이를 느끼며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여권은 역시 여행자의 ‘문서’라기보다 여행자의 ‘권리’로 해석하는 편이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혹시 여행을, 바다를 건너는 행위를, 문밖을 나서는 선택을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계 2위 수준의 여권을 믿고 나라 밖의 풍경을 직접 만나보기를 권한다. 언제까지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인가? 이불 안처럼 포근하지는 않을지라도,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서는 순간 훨씬 더 큰 즐거움을 만날 수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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