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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니엘 Caminero Aug 08. 2017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여행 이야기 - 1

세상 어디에나 있는 버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버스


여행의 매력은 특별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삶의 한 순간이나 단면도 매우 특별한 광경으로 치환해준다는 것에 있다. 마치 시야에, 감정에 필터를 덧댄 것처럼. 심지어 예기치 못한 사고나 당황스러운 실수도 훗날엔 그럭저럭 괜찮았던 경험으로 회상하게 된다. 누구나 자신의 여행이 특별한 기억으로 가득했다고 얘기할 수는 있지만, 그 찰나를 함께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결국 흔해빠진 여행담에 지나지 않는다. 여행이라는 게 다 그런 것 같다.

과거 나는 한 인터뷰에서 여행을 ‘기억을 구입하는 쇼핑’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낭만이라곤 찾기 어려운 냉정한 표현 같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삶에서 쌓인 ‘나쁜 기억’들을 오롯이 덮어주고, 또 다른 나쁜 기억이 치고 들어오기 전까지 그럭저럭 시간을 벌며 버텨줄 ‘좋은 기억’을 사놓기 위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적당한 값을 치르고 구입한 좋은 기억들을, 그렇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지 모를 나만의 여행 이야기를 늘어놓으려 한다. 다시 말해, 이 에세이는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여행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여행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간다.


여행 이야기의 첫 소재로 무엇을 집어 들까 고민하기가 무섭게 불현 듯 버스가 떠올랐다. 매우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다른 것들을 생각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버스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이지만, 큰 여행 밖에서 작은 여행 안으로 여행자의 몸을 옮겨주는 특별한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내 기억 속 첫 번째 버스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바릴로체를 향해 떠날 때 탔던 장거리 버스다. 얼마나 긴 ‘장거리’ 버스였냐면...거의 1,600km가 되는 거리를 달렸다. 시간은 꼬박 하루, 24시간이 걸렸다. 중간 중간 멈춰 있던 시간까지 더한다면 30시간에 가까웠던 것 같다. 처음 버스에 오를 때는 도대체 버스 안에서 어찌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두려움 가득한 막막함이 앞섰는데, 막상 타보니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시트는 180도로 젖혀지고, 서너 끼의 식사도 이어지고, 커피와 와인도 마시고, 영화도 몇 편 보고, 이웃 승객들과 잡담도 하고, 창밖의 절경을 벗 삼으니 그럭저럭 시간이 잘 갔다. 물론 어느 정도는 세월의 흐름이 긍정적으로 왜곡시킨 기억이라는 걸 인정한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버스 안에서 24시간을 보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게다가 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도 버스를 탔으니 6박7일의 여행 중 2박3일 가까운 시간을 버스에서 보낸 셈이었다.


그렇지만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아니 누웠던 우루과이 노부부와 제법 친해져 그들의 몬테비데오 집에 초대를 받았고, 몇 달 후에는 진짜로 방문하기도 했으니 좋은 인연을 이어준 것도 바로 그 장거리 버스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몬테비데오로 갈 때는 겨우 8시간 걸리는 중거리 버스를 탈 수 있어 좋았다.

이미 24시간짜리 버스를 두 번 타본 터라 상대적으로 수월한 이동으로 느껴졌던 것일지 모른다. 사실 600km 거리를 8시간여 달리는 버스도 괴로운 건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이 버스에서도 또 하나의 기억이 만들어진다. 그다지 좋지 않은 해프닝이었는데, 출입국 심사에서 다소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은 것이다.

당시 버스에는 30명이 좀 안 되는 승객이 있었고, 나를 제외한 모든 이가 백인 라티노였다. 나 혼자만 노란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아르헨티나-우루과이 국경을 지날 때 출입국 심사관은 나를 따로 불러내 몸과 짐을 수색했다. 10kg 정도 되는 더플 백을 바닥에다 뒤집어 까서 샅샅이 뒤지는 상황이 좀 당혹스러웠지만, 원래 다 이렇게 하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들은 오로지 나와 내 가방만을 탈탈 털었던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는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경험이 처음이었기에 그 정도로 엄밀하게 수색 검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크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냥 바닥에 엎어진 짐과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다시 가방에 옮겨 담는 게 불편하고 찝찝했을 뿐. 그런데 몇 시간 지나 만난 우루과이 노부부에게 그 얘기를 들려줬더니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며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다. 두 분은 우루과이 출입국사무소 직원을 대신해 사과하고 싶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들의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 일이 있었다. 지금은 5년 가까이 지난 일이라 그때의 상황들이 또렷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그냥 남미의 버스에서 그 정도의 일이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버스 안에만 있었던 것, 버스로 나라와 나라를 넘나들었던 일은 나름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아 있다. 우리도 언젠가 통일 된다면 북한(그때는 대한민국의 북쪽이겠지?!), 중국, 몽골, 러시아의 일부 지역까지는 버스로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물론 중년, 노년의 내가 다시 장거리 버스를 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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