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온도

by 서령

밤은 언제나 거리를 가늠하게 만든다.

가까운 것이 더 희미하고,

먼 것이 오히려 선명하다.

어쩌면 관계도 그럴지 모른다.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만

우리는 서로를 가장 또렷하게 느낀다.


나는 가끔 불을 켰다가, 끈다.

그건 단순히 어둠을 밀어내는 행위가 아니다.

빛이 닿는 범위를 조정하는 일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


불을 켜면 사물은 정직해진다.

모서리는 각을 되찾고,

모든 색이 제 목소리를 높인다.

그때 세상은 명확해지고,

사람의 마음도 투명해 보인다.

하지만 오래 그 안에 머물면

나는 숨이 막힌다.

선명함에는 언제나 냉기가 깃들어 있다.

빛은 아름답지만, 따뜻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가끔 불을 끈다.

어둠은 경계를 무르게 만들고,

거리는 다시 부드러워진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이름을 잃은 존재들의 숨결이다.

그 안에서 나는 사람을 이해하지 않고,

그저 감각한다.

목소리의 결, 눈빛의 잔향,

닿지 않아도 느껴지는 온기 같은 것들.


가끔은 너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편이 낫다.

선명함은 진심보다 빠르게 의심을 낳고,

분석은 감정보다 먼저 닫힌다.

흐릿한 상태에서만

마음은 스스로의 모양을 기억한다.

빛이 닿지 않는 구석에서

무언가 조용히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서로를 오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순간들은

언제나 약간의 어둠이 섞여 있었다.

명확하지 않아서 다정했고,

정확하지 않아서 오래 남았다.


세상은 자꾸 밝음을 강요하지만

모든 관계는 약간의 그늘에서 숨을 쉰다.

너무 가까워지면 흐려지고,

너무 멀어지면 사라진다.

빛과 그림자가 맞닿는 그 지점,

그곳이 아마도 관계가 머무는 온도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불을 켜고 끈다.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거리를 유지하며 존재를 느끼는 법,

그건 아마 사랑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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