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선택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선택을 내가 한 적이 없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어릴 적부터 자라오는 동안, 부모님의 결정은 늘 나의 길이 되었고 그 길을 따르는 일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것이 선택인지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도 되는지, 무엇을 미뤄야 하는지. 그 모든 것에는 늘 ‘어른들의 판단’이라는 이름의 안전한 답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답을 의심하지 않았고, 의심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데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인지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는 “내가 결정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많지 않다. 그저 그렇게 흘러갔고, 그렇게 되어버렸고, 그렇게 살아왔다. 요즘 나는 자주 과거의 장면들을 떠올린다.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만날 수 있었던 친구, 한 번쯤은 괜찮다고, 아니 사실은 괜찮지 않다고 말했어야 했던 순간들. 가기 싫었던 자리,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 앞에서 나는 늘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어른이 되는 일이라고,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남은 건 성숙함이 아니라 묘한 공허였다. “조금이라도 그때 그 친구를 만나러 갈걸.” “그 일은 정말 하기 싫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들은 밤이 되면 조용히 고개를 든다.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나는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그 선택들이 모두 틀렸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선택들 속에 나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부모님의 선택은 나를 보호해 주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 덕분에 얻은 안정도, 배움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이 후회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감정과는 조금 다르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가 너무 늦게 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데서 오는 아픔에 가깝다. 후회는 늘 뒤늦게 찾아온다. 그리고 그 후회가 가장 아픈 이유는 이미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모든 선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지우고 싶지도, 모든 선택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 선택들이 전부였다고 믿고 싶지 않을 뿐이다. 요즘의 나는 묘한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여전히 과거를 후회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앞으로의 선택만큼은 후회하지 않고 싶다는 강한 욕심을 안고 있다. 어쩌면 이건 보상심리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시간만큼, 앞으로의 시간을 더 진지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그래서 나는 더 노력하려 한다. 더 잘되기 위해서라기보다, 더 솔직해지기 위해서. 가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보고 싶으면 보러 가고, 내가 진짜 원하는 방향을 조금은 서툴러도 내 손으로 결정해 보기 위해서. 이제는 안다. 후회는 완벽하지 못했던 과거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내가 달라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는 것을. 예전의 나는 이런 후회조차 하지 못했다. 생각하지 않았고, 질문하지 않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후회를 나를 묶는 족쇄로 두고 싶지 않다. 이건 나를 멈추게 하는 감정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내가 선택하며 살겠다는 조용한 선언에 가깝다. 앞으로도 분명 후회는 생길 것이다. 또 망설일 것이고, 또 틀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의 후회는 “내가 선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남는 것이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후회조차 끌어안고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부모님의 선택이 아닌, 시대의 흐름도 아닌, 누군가의 기대도 아닌 내 이름으로 남는 선택을 하면서. 어쩌면 인생은 뒤늦게라도 자기 선택을 되찾는 사람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그 기회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도망치지 않고 내 쪽으로 한 발짝 다가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