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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진 May 13. 2018

서른 둘, 독립

프롤로그

서른 둘, 독립했다. 결혼 때문도 타지에서의 직장생활 때문도 아니다. 가족이 있는 집을 떠나 차로 15분 거리, 직장에서 15분 거리에 집을 구했다. 서른 둘의 나이다. 어린 시절 난 27살쯤 되면 내가 오피스텔에 살줄 알았다. 그보다 5년 늦은 나이에 오피스텔로 들어왔다. 

내 방 한켠에 자리한 구박받던 디지털피아노 :D

독립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큰 이유는 세가지다.


첫번째, 엄마의 행복이다. 내 기억으로 직장 3년차까지 아침에 늦잠자는 딸내미 입에 밥숟갈을 들이밀며 아침밥을 먹이려 애쓰던 엄마. 그걸 또 넙죽 넙죽 받아먹었던 나. 엄마가 주는 사랑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살아온 날들. 엄마의 인생은 우리를 위해 있다고 말하는 엄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아야한다. 나도 나의 인생을 살아야한다. 그래서 독립했다. 각자 잘 살기 위해서. 각자 자신의 인생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 집을 떠나온 나는 예전보다 더 자주 가족 단톡방에 안부를 묻고, 엄마에게 따로 연락을 하고, 아빠 퇴근시간에 맞춰 안부전화를 건다. 떨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함께 해준 엄마. 마블플레이트와 용돈 2만원, 그리고 청포도.

두번째, 홀로서는 연습을 하고 싶어서였다. 나이만 서른 둘이지, 집을 계약하는 것도 은행에 빚을 지는 일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도 있다. 그치만 살아가면서 (결혼하지 않아도) 혼자 잘 살 수 있는지 사실 시험해보고 싶었다. 정말 혼자라도 괜찮은지. 정말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지. 사랑하는 이와 꼭 같이 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지. 그 많은 것들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세번째, 내 방이란 걸 가져본 건 인생에 단 두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니와 방을 같이 쓰거나, 동생에게 방을 내주고 거실에서 생활하거나. 집에 가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고3시절 내방이 있다 없어지니까 그 불안감이 더 심해졌다. 거실에서 생활하는게 서럽기도 했고. 그치만 누굴 탓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고 있었으니까. 

언니(@ecokja)가 선물해 준 스페인 론다에서 만취했지만 아닌 척 하는 나.

이제 독립 13일차. 오늘은 동생을 제외한 온 가족이 내 집으로 왔다. 가구를 재배치하고, 커튼을 달았다. 엄마는 온천수가 나오는 우리 동네를 참 좋아한다. 혼자서 목욕도 다녀왔다. 그러곤 밀면과 만두를 먹고, 어김없이 다이소를 들려 필요한 물건을 야금야금 샀다. 


매일 문앞에 택배들이 쌓이고 있다. 박스를 뜯고 치우고, 분리수거해 버리고. 집을 쓸고 닦고. 빨래를 분류해놓고,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닦고. 아직까진 이런 일들이 재밌다. 매일 해먹고 싶은 요리레시피를 저장해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다이어트 중이지만, 일주일에 한번은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어느 날 저녁. 감바스와 바게트, 청포도와 치즈 :-)

독립하며 달라진 건 환경이라지만, 더 잘 살아보겠단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이 제일 기쁘다. 서른 둘, 드디어 독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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