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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oprlej Jul 02. 2019

요리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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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의 마지막 날,

나는 어째서 구글 번역기에 이 문장을 검색한 걸까.


이 맘 때쯤,

요리에 빠져있었다.

매일같이 레시피를 찾아보며 이것저것 만들었는데,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느낌이

따뜻하고 즐거웠다.

혼자 먹으려고 준비할 땐 그렇게 귀찮았던 콩나물 다듬는 일도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맛있게 먹어주면,

이상하게 그걸로도 조금 배가 불렀다.


'요리' 라는 것은 사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

그 이상이다.

대충 찌개 하나를 끓이더라도 꽤 손이 많이 간다.

두부를 자르고, 파를 다듬고, 씻어내고,

거품을 걷어낸 뒤에 다시 간을 보고..

진이 다 빠진다.

그만큼 정성이다.


어렸을 때 엄마와 다투고 나면

나는 화가 났다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늘 그랬다.


"밥 안 먹어!"


그럼 엄마는 "먹기 싫음 먹지 마!" 그랬지.

그래 놓고는 허기가져서 빼꼼 방문을 열어보면,

밥상엔 으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놓여있던

내 밥그릇.

눈이 마주치면,

우리는 이내 웃고 만다.


요리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철없는 자식새끼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입 짧은 딸을 위해 고기를 굽고, 프라이를 하고,

신김치는 반드시 참기름에 볶아

밥상에 내어놓게 되는,

마음을 담은 행위인 것이다.


몸을 부대끼며 지낸 가족은 어머니뿐이었기에,

난 늘 많은 식구가 밥상에 앉아

조금은 정신없이 밥을 먹는 그런 식사를 동경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 놀러 갔었는데

친구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셨다.

식당을 운영하셨던 친구의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정말 기가 막히셨다.


그때 내 나이 열여덟.

고등학교에 자퇴서를 내고

나는 홀로 서울생활을 했다.

나 역시 여느 아이들과 같은

평범한 여학생이었기에,

약간은 늦은 나이에 심한 사춘기가 왔었다.

그때는 세상에서 친구가 제일이었다.

사랑하는 친구들만 있으면

다 괜찮았다.


위험하니까 혼자 다니지마.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여자 둘이서 복작거리며

건장한 남자 사람 하나 없이 십수년을 살다 보니,

엄마는 늘 불안증이 심하셨다.

걱정, 걱정, 걱정 늘 걱정...

숨이 막혔다.

엄마품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보같이 그게 나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고.


"서울생활 힘들지 않나. 니 맨날 밥 굶고 다니지. 왜 이래 말랐는데."


촌스러운 강원도 사투리로

무심히 한마디 툭- 던지시며,

수북이 쌓인 내 밥그릇 위에 올려주셨던 간장게장.

나는 그때의 그 간장게장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맛을 떠나서,

그냥 너무너무 따뜻했다.


중학생이 무슨 연애냐며 밥 먹는 내내 남동생을 구박하던 내 친구,

여자 친구에게 쓸 편지를 대신 써달라며 누나에게 애교를 떨던 통통하고 귀여웠던 남동생,

식사 내내 아무도 관심 없는 주식 얘기만 늘어놓으시던 아버님,

"주식은 무슨 팔자에도 없는 주식이야!" 하시며

자식들 밥그릇에 줄곧 게장 살을 발라 놓아주시던어머님.


친구가 부러웠다.


나의 엄마는 늘 바쁘셔야 했다.

누군가의 선생님이자,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자,

형제여야만 했기에.

늘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셨다.

어릴 때부터 나는 대부분 혼자서 밥을 먹어야 했고

가끔 엄마와 식사를 할 때에도,

마르고 연약한 여자 둘 뿐인 소박한 가족인지라,

그릇에 반찬을 푸짐하게 담아내는 일은 결코 없었다.


사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는데,

친구네 집 밥그릇에 밥이 넘칠 만큼,

반찬이 넘칠 만큼 담겨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나는 너무 푸근했다.

괜히 울컥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는가.

우연히 들어간 낡은 백반집에서

그릇 수북이 음식을 내오시는

주인 할머니에게 괜히 울컥할 때.


"참나. 별게 다 부럽네.

나는 니네 집이 훨씬 더 부럽다야.

고상하고 예쁜 시인 엄마에, 니네 집엔 서재도 있고,

예쁜 소품도 엄청 많잖아."


친구의 눈엔 그랬나 보다.

우리 집이.

네가 부러워하는 그 집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적막한지도 모르면서.



아직은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제 조금은 안다.

엄마는 어떤 '보통의 엄마' 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끔찍이도 나를 사랑해주셨다는 것.


이번 달의 마지막 주는 내 고향 강릉에 내려간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떻게 하면 꽃게탕을 맛있게 끓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엄마를 위해 꽃게탕을 요리할 것이다.

주방에서 가장 커다란 냄비를 찾아내서,

한 솥 가득 끓여낼 거다.


"뭘 이렇게 많이 끓였어~~ 누가 다 먹는다고~~~"

하며,

분명 나를 구박하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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