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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oprlej Jul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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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너무 쉽고, 선명했다.

누군가가 좋아지면,

이유도 없이 무턱대고 마음을 줬다.

그것이 언젠가 나를 다치게 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마음을 주고

정성을 다해 지키려고 노력했던 모든 것들은

끝엔 항상 나를 울게 했다.

난 대체 언제가 되면

나를 울게 하는 관계들에 지겨워지는 날이 올까.

그렇지 않은 척 해도

사실은 마음속이 계속 엉망이라,

자꾸만 사람을 찾는다.

이상하게

아무리 엉망진창이 돼도,

딱 책임지지 않을 만큼만 마음을 열고

상처 받지 않으려 발을 빼는 관계같은거.

난 못하겠다.

여전히 함부로 마음을 확신한다.


한 가지 어렸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던진 그 마음이,

나 혼자만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해받은 상대방까지

무거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자꾸만 나를 달래고, 다듬어도

의도치 않게 다듬어지지 않은

원래의 내가 나오는 순간이 있다.

나도 나를 어쩌지 못해

눌러왔던 어떤 것들이 터져 나오는 순간들.

모호하고 은연한 태도로,

현학적인 말들로

나를 흔들게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나의 솔직함으로

그를 조금 무겁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럼 좀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난 정말이지 이제

그런 어중간한 관계들이 너무 지치고,

비겁하고,

조금 후지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사실 선명한 마음 싫어하는 사람 없다.

다만, 감정을 강요했던 그 순간의 나를 반성할 뿐.

감정은 절대 강요해선 안된다.

강요한다고 강요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불안정하고 슬픈 거다.

정말로 그에게 손톱만큼의 짐도 지어주기 싫다.

모든 관계의 부서짐은

늘 내 욕심이 그 시작이었다는 것도 이제 안다.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지레 겁먹고 벽을 치거나

쓸데없는 센척도 말고,

무작정 마음부터 던지지도 말고,

천천히,

조금씩

그가 무거워하지 않을만큼의 속도로,

지니고 있던 내 마음 모조리 다 연소하고

돌아서면 후회 없이 털어버릴 수 있는 관계.


다 괜찮다.

솔직히 그까짓 게 다 뭐라고.

그까짓 말 한마디로

억지로 우리를 확실하게 만들어서 뭘 어쩌자고.

믿어서 대체 뭘 어쩌겠다고.

선명한 내 마음 하나만 있으면 된 거지.

어차피 이것도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자고 일어나면 습관처럼 서로를 찾는다.

안고 싶을 땐 안는다.

이유를 묻지 않는다.

어디서 뭘 하는지, 밥은 먹었는지,

저녁 메뉴는 무엇이었는지,

어젯밤엔 어떤 꿈을 꿨는지 같은 것들을 묻는다.

절대로 기대하지 않는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만 한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다.

이 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저 진심을 다해 너를 '좋아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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