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에서

by 차거운

지훈의 '봉황수'라는 시에서

배어나던 쓰디쓴 망국의 슬픔을 떠올리며

종묘를 걷는다


역사는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던

수영의 '거대한 뿌리'를 생각한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들

역사의 수레바퀴에 납작하게 밟혀 부스러진

그 당랑거철의 기억들


아직 절정의 순간은 오지 않았기에

신도를 따라 오래 걷는다


향나무 한 그루

오래된 꿈처럼 우뚝 서서

뜨거운 팔월의 오후를 견디고 있다


우리 가슴에 어떤 신줏단지를

품고 사느냐고

까치 한 마리 꽉 하고 묻는다


마음의 귀에 들려오는 종묘제례악 소리

아내여, 차나 한잔하고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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