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옥 편
서촌 혹은 북촌을 걷다가
입 모양처럼 닫힌 사각의 한옥을 수없이 보았지
마치 오늘의 아파트처럼
그렇게 그리스 중무장 팔랑크스 밀집 대형처럼 모여 있는
오므린 입술 같은 집들의 무리
1930년대 식 도시 개발의 유산
오진암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무계정사 터의 한옥이
여전히 건강미를 뽐내며 처마 궁둥이를 하늘로 치켜들어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고 있더군
요정의 색기와 분기를 지우고
참한 규수처럼 안평대군의 추억을 치마폭에 감싸고 앉아
새초롬이 얌전을 떠는 모양이라니
역시 뚱땅거리며 술에 취해 흔들거리던
성북동 대원각이 백석의 애인 자야 할머니의 손을 떠나
부처님의 원력이 실린 길상사로 다시 태어나
고요히 갱생의 숨을 쉬고 있듯이
집에도 품격이 있다는 걸
오늘에야 알게 되네 집도 환골탈태하여
훨훨 날 수 있다는 걸
집에도 생명이 있고 품격이 있고 추억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