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에서

- 추사를 생각하며

by 차거운

봉은사 일주문의 외로운 모습

소박 받은 여자처럼

이 절에서 저 절로 옮겨 다니다

늙어 다시 조강지처의 자리로 복귀한 모습 같아라


시끌벅적한 강남 대로 한복판

봉은사는 참 잘도 숨어 있었네그려

이제 처음으로 여길 찾아왔더니

저잣거리에 숨어 흔적 없이 사는 시은과 같은 삶


봉은사 장경판전의 현판을 올려다보면

칠십일과 병중작이라

추사의 아픔은 장경의 영험에 실려 오래 살아남으리

쓰고 또 쓰고

읽고 또 읽어

북한산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나

황초령 비석 그 돌에 새겨진 사연을 되살려 내던 이


삶이란 지나가는 나그네의 가벼운 발걸음이건만

그 흔적은 이럭저럭 남아 머물다가 희미하게 사라질 것이지만


두보의 노환이 오래 기억되듯

추사의 환후도 그렇게 오래 남으리


문득 세상이 앓는 기척이 예후처럼 다가오고

쌍화차 한 모금으로 달래는 천식의 기침 소리

일주문을 넘어 산문을 나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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