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 바트요

- 흐르는 집

by 차거운

딱딱한 건물이 이리도 유연하게 액화되어

흐를 수도 있다는 것을 카사 바트요에서 깨닫는다

돌과 철과 물성을 지닌 재료들이

동결의 마법에서 벗어나 흐느적이며 일어서는 것 같아

마음을 졸이며 바라본다 베네치아 가면무도회의 숨은 표정도 같고

타일로 화장한 외벽의 아라베스크적 무늬가 화사하여

사람으로 치면 곱게 단장한 여인과도 같으니

건물 앞에서 이렇게 설레고 두근거리는 내 심장이여

삶의 공간이 일하는 공간이 회의하는 공간이

이렇게 우리를 설레게 할 수 있다면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휘어지고 패인 곡선과 철의 질감이

삶은 참으로 풍요로운 것이라고

묵묵히 증언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 말이다

누군가는 해골 같다고 하고

그래서 바니타스 정물화가 입체화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창으로 비친 세상은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옷장처럼

안과 밖을 꿈으로 녹여서 흐르는 빛으로

공간이 휘고 중력이 흔들리고

세상이 문득 사라진다 그 사라진 자리에

구름이 흐른다 시간도

카사 바트요에 들어간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세계로 떠났다

우리에겐 그런 상상의 문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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