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19일 일요일(로마에서의 주일미사)
14일 저녁 로마에 도착한 이후 15일에서 16일간 이틀은 이탈리아 남부 투어를 하느라고 숙소를 떠나 있었고 또 17일, 18일 양일간에는 피렌체를 다녀오느라고 떠나 있었기에 가족들이 좀 피로감을 느낄 것도 같았고 주일미사를 보면서 하루를 조용히 쉴 수 있도록 여행 일정을 계획하였다. 그래서 오늘은 여행 중에 꼭 하리라 마음먹은 일 중의 하나인 지난 4월 부활시기에 세상에서의 순례를 마치고 하느님 품에 잠드신 전임 교종이신 프란치스코의 무덤이 있는 로마의 4대 성전 중의 하나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에 가서 가능하면 거기에서 미사를 드리고 싶다는 바람을 처형께 말씀드렸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주일미사를 거기에서 드릴 수 있으면 드리려고 숙소를 출발해서 성 파울라라는 881번 버스의 종점에서 내렸는데 이상하게 도로 통제가 되어 있어서 당황했다. 알아보니 마라톤 행사가 있어서 근처를 통제 중이라 버스들이 통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서 도보로 통제 지역을 벗어나서 이동하다가 처형이 예수회 성당에 들어가서 미사를 보자고 제안을 하셔서 모두들 그리로 들어갔다. 9시에 시작되는 미사 시간도 마침 되어서 교회에 다니는 둘째 셋째 처형 내외는 성당 뒤쪽에 앉아서 참관하는 것으로 하고 넷째 처형과 처조카 00이 그리고 우리 내외와 처형 이렇게 다섯 명은 앞쪽으로 가서 미사에 참석했다. 로마의 대성당들은 입장료를 받거나 무료입장이 가능한 곳이라 하더라도 미사가 있을 때는 관광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도 미사가 있어서 제한을 한다는 관계자의 안내에 우리가 미사 참석을 원한다고 하니 상당히 호의적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처형이 수녀복을 입고 있는 수도자라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의 따뜻한 대접을 받을 수가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미사의 강론과 경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하나이며 보편된 가톨릭 교회의 전례가 지닌 강력한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는 여행 4주간의 모든 현지 미사에서 반복적으로 느낀 감정이었다. 하느님은 갈라진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 주시는 세상의 근거임을 느끼게 된 그런 날들이었다. 처형이 이탈리아어로 진행된 강론 말씀을 요약해서 메신저로 보내주셔서 대강의 내용을 알 수는 있었다. 그런데 봉헌과 관련해서 몇 번을 지켜보니 현지 사람들은 봉헌을 거의 동전 한두 개 넣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유럽에서는 종교세를 국가 세금으로 걷는 독일과 같은 유사한 방식이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국내에서 하던 대로 5유로나 10유로 지폐를 봉헌금으로 냈는데 현금이 필요한 몇 안 되는 지출이었다. 다른 지출은 모두 트레블 월렛과 같은 카드로 충분히 해결할 수가 있었다. 꼭 한 번 택시비를 현금으로 달라는 기사가 있었다. 아마 포르투에서였던 것 같다.
미사 후에 돌아본 예수회 성당도 참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에 유명 관광자원이 산과 사찰이 함께 묶여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유럽의 대성당들의 오랜 역사와 아름다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그 자체가 삶과 신앙과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결정체로 보인다. 로마 곳곳이 바로 그런 대성당들로 가득하고 유럽의 모든 수도와 하다못해 작은 소도시까지 두오모라는 명칭으로 아름다운 성당이 가득하다. 사실 이번 여행은 평생 별러온 것이기도 하지만 ‘희망의 순례자’라는 희년의 순례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통 통제 등으로 인한 사정으로 이날 처음 계획했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방문은 다음으로 연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베네치아 광장과 조국의 제단(에마누엘레 2세 동상으로 상징되는)과 건물 내의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주변을 관람한 후 조금 걸어서 바로 근처에 있는 캄피돌리오 언덕에 올라가서 박물관 건물과 SPQR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동상 부근에서 잠시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역사의 현장에 드디어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셈이다. 로마 원로원과 민중에 의해 지탱되던 로마 공화정의 정신을 떠올리면서 그것이 제정으로 이어지는 로마의 장대하고도 굴곡 있는 역사의 속사정을 떠올려 보았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헤로도토스의 ‘역사’, 시저의 ‘갈리아 전기’, ‘내전기’, ‘플루타르크 영웅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호머의 ‘일리아드 오뒷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 등 그리스와 로마로 이어지는 고대 역사의 현장에 지금 나는 서 있는 것이다. 머리로만 짐작하던 역사의 흐름이 하나의 실체로서 다가올 때 그 지식은 현재와 이어져 있는 하나의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된다. 믿음도 그렇다.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순교 이후 이어지는 교회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야훼 신앙에서 자라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은 관념의 존재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사악의 하느님이며 베드로와 바오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모든 순교자와 교회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믿는 이들의 하느님이며 내 앞에 살아계신 하느님인 것이다. 저 멀리 있는 사변의 믿음이 아니라 생생하게 눈 뜨고 있는 심장의 믿음이고 그래야 할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나와 우리 일행은 조국의 제단 뒤편이 콜로세오로 이어지는 영역임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하고 하나의 통합적인 공간감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베네치아 광장 근처를 지나 전시회가 열리는 베네치아 궁전의 정원에서 아픈 다리를 쉬면서 휴식을 취한 후 걸어서 판테온을 지나 나보나 광장까지 가면서 보니 여기도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모여 있었다. 로마는 유명한 명소를 중심으로 사람이 몰려 있어 어디를 가나 사람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는 파도와 같았다. 산타 마리아 미네르바 성당을 지나치면서 보았고 곧이어 판테온을 지나 나보나 광장과 분수를 보았다. 사실 이동하면서 건물을 보기는 보지만 한 번 일별하면서 지나치는 수준의 경험으로는 인문지리적 배경 지식이 활성화되어 의미 있는 정서를 불러내기에는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다. 출애굽의 경험이 이스라엘의 원체험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과 부활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의 강력한 경험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제대로 체화된 하나의 기억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모든 경험을 녹여서 의미를 이루어내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나는 그러한 작업을 이 글을 통해서 하고 있는 셈이다. 판테온의 생김새와 아그리파라는 문자가 선명하게 뇌리에 각인되는 순간을 경험하고 물론 안에서 그 빛이 들어오는 쿠폴라의 원형이 되는 돔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사진의 자료가 구체적인 현실감을 갖고 다가올 수 있는 기초적인 경험치를 확보한 셈이었다. 지금 나는 판테온 앞에 열주들로 구성된 건물의 사진을 반추하듯 들여다보고 있다. 교회 건물로 활용됨으로써 석재 채굴장의 신세를 면한 건물 중의 하나라고 알고 있다. 건물이든 자연이든 책이든 모든 문화의 산물은 저마다의 운명을 지니게 마련이다.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의 운명도 그러하고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의 이력도 그러하지 않은가. 건물은 다만 묵묵히 세월 앞에 버티고 서서 시간의 파도가 아직 휩쓸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그저 인간의 눈앞에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나보나 광장에 도착하니 어느새 늦은 오후가 다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보고자 하는 욕구를 알고 있는 존경하올 처형 수녀님은 우리를 이끌고 하나라도 더 보여줄 생각에서인지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로 이동하셨다. 그리 오래지 않아 우리는 드디어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그 분수에 도착했다. 다시 로마에 올 욕심에 동전을 던지고 젤라토를 사 먹고 보니 어마어마한 동전의 양에 놀란다. 주기적으로 교회 자선기관에서 수거해서 자선 활동의 재원으로 활용한다고 하니 다시 로마에 돌아오는 주술적 효과를 내든 말든 동전을 던지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러니 로마로 여행을 가거든 동전들 많이 던지시기 바란다. 우리는 베드로 대성당이 보이는 테베레 강변의 성 천사성 근처로 이동했고 거기서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저녁식사 시간에 임박해서야 귀환했다. 미사에 참석하고 휴식을 하면서 한가롭게 보내려고 했던 계획에 비해 너무나 빡센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언제 다시 로마에 올 기회가 또 있겠는가. 그러니 여행이 담아내는 탐색의 강도는 나날이 세어질 뿐이로구나. 가족이 이렇게 함께 잠시 자신의 삶의 자리를 떠나 가족애를 느끼며 이국땅에서 여행을 같이하는 기회가 사실 또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저마다 개인적으로 다시 올 수는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규모와 구성원으로 같이 올 기회는 이번이 유일할 것이라는 예감을 한다. 모든 기회는 있을 때 잡아야 한다. 큰처형이 2014년에 돌아가신 이후로 마음에 늘 아쉬움이 남았던 부분이 바로 이런 종류의 함께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혼 이후로 내게는 장모님과 같이 살갑게 대해주신 큰처형께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품 안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시길 언제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