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20일 월요일(로마-베로나-베네치아 여행 1일 차)
어제의 휴식 아닌 휴식을 뒤로하고 오늘부터 수요일인 22일까지는 베네치아로 이동해서 일정을 진행하기로 되어 있다. 역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 아침 일찍 2박 3일의 짐을 꾸려서 우리 가족은 파울라 수녀님이 차로 배웅해 주시는 후의를 받으며 테르미니역으로 가서 아침 7시 25분에 출발하는 베로나행 기차를 탔다. 몇 번 테르미니 역을 오가다 보니 다음에 로마에 오게 된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익숙함을 느끼게 된다. 막연하게 소매치기와 번잡함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왔었지만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 것 같다. 범죄라는 것은 우리나라에 있을 때에도 가능성이 늘 상존하는 것이며 그 확률과 강도 역시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긴장을 늦추어서도 안 되는 것이 여기는 그래도 인종과 언어가 뒤범벅이 된 국제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언어가 원활하게 소통이 되지 않는 관계로 일단 부정적인 사건을 겪게 될 경우 이를 해결하는 문제가 상당히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스스로 조심해서 연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10시 38분경에 베로나 역에 도착했는데 중간에 우리가 한번 간 적이 있는 피렌체는 물론이고 볼로냐를 거치는 경로였다. 베로나 역에 도착해서 짐 보관소에 무거운 짐은 비용을 지불하고 맡겨둔 후에 베로나 시내 관광에 나섰다. 버스를 타고 여름이면 연주회가 열린다는 유명한 명소인 베로나 아레나(원형 경기장)를 돌아보면서 약초 광장에서 흩어져 장을 보기도 하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줄리엣의 집 앞에서 월요일이라 개방하지 않는 이유로 마당에 가득한 사람들 사이로 줄리엣 동상에서 줄리엣의 가슴에 손을 대고 사진을 찍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하나의 장소가 하나의 서사와 결합하면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베로나의 두 신사’라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있지만 베로나는 그의 희곡을 통해서 활기를 얻게 된 곳이다. 또한 조금 있다가 우리가 방문할 베네치아 즉 베니스 역시 같은 작가의 ‘베니스의 상인’으로 불후의 기억을 갖게 되는 점을 생각했다. 바라건대 나 역시 그런 기억을 부여할 수 있는 글을 죽기 전에 쓸 수 있을 것인가.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도 떠오르는 그런 순간이다.
휴식을 취한 후에 KFC에서 화장실도 이용할 겸 점심 식사를 했다. 유럽에 오니 화장실과 관련한 생각이 특히 문화적 차이로 각인되고 있다. 여기서는 배설이라는 생리적 현상에도 비용을 치러야 한다. 우선 1유로나 1.2유로 정도의 비용을 내어야 볼 일을 볼 수가 있다. 기차 역사는 물론이고 터미널 등의 공공적 성격의 다중이용시설에서도 그러하다. 물론 식당을 이용하는 경우나 박물관 등의 비용을 지불하고 그 안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경우는 무료인데 따라서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신 경우에 필히 그 기회를 이용해서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 점은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이질감을 유발한다. 언젠가 지자체인 수원시에서 시작된 공공 화장실에 대한 혁명적인 변화 이후 우리나라는 공원이나 공공시설의 화장실은 물론이고 거리의 영업점에서도 유동 인구가 급할 경우 공공 서비스라는 인식 아래 화장실을 개방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어 있다. 심지어는 지자체가 해당 지역의 공적 화장실을 관리하고 관광지의 경우 마을 자체적으로 이를 관리 청소하고 휴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책임자를 명시하여 공개하고 있을 정도이며 사람이 들어서면 음악이 자동적으로 흘러나오는 등의 편의적 요소가 극대와 되어 아마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놀랄 부분이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닐까 한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재나 볼거리를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수적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욕구를 공공적인 서비스로 간주하여 제공하는 것은 국가나 사회의 공적 역할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넘어서 문화의 근본적인 성찰을 요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사회적 시설과 인프라에 대해 평소 비교할 기준이 없어 느끼지 못했던 훌륭한 점을 여럿 느끼고 돌아올 수 있었다. 화장실이 그렇고 의료적 환경의 접근성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대중교통의 편의성 등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겠다는 자각을 깊이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리의 좋은 점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낄 필요가 있다. 서양적인 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고 호텔이나 식당 이용과 관련된 부분도 그러하다. 외국에 한 번 나갔다 오니 졸지에 애국자가 되어 돌아온 느낌이다. 우리나라는 참 살기 좋은 나라다. 물론 어느 사회나 그늘이 없겠는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이 참 많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그동안 나는 우리 사회의 밝고 건강한 면에 대해 평가하는 데 있어 조금 인색했다는 반성을 한다.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베로나 역으로 이동해서 오후 4시경에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 본섬 바로 전 역인 메스트레 역에서 하차하였다. 이틀 동안 우리가 묵을 숙소는 공유 숙박 앱을 통해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예약해 두었다. 조금 집을 찾는데 헤매기도 했지만 무사히 열쇠를 찾아 숙소에 들어갔고 주인과 만나서 여행자 도시세를 지불하고 방을 배정했는데 슬리퍼를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아 우리 내외는 다소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방이 무려 다섯 개에 화장실이 3개여서 피렌체보다 더 크고 편리성이 있었으나 우리가 선택한 방은 잠금장치가 부서져서 문이 열리는 상태이고 화장실의 잠금장치도 문제가 있어서 집사람이 안에 갇히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주방이 넓어서 음식을 사다가 저녁과 아침을 해결할 수 있어서 여럿이 여행할 때는 공유 숙소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숙박비와 식비 절감에 매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시 체감할 수 있었다. 근처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서 저녁에는 돼지고기를 굽고 야채와 밥을 해서 잘 먹고 휴식을 취했다. 거의 1년을 두고 숙소를 물색하고 예약을 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준비한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숙소에 실제로 투숙해서 가족과 함께 여행을 진행하는 단계에 이르도록 무탈하게 진행되는 것에 대해서 처형의 언어 소통과 가이드 역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물론이고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도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인간의 일을 당신께서는 모두 알고 보고 계시니 그 앞에 우리는 감출 것도 없이 늘 서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